결혼적령기

남자든 여자든 서른이 가까워지면 두 말 할 것 없이 그것이 딱 결혼적령기라 그 어느 누가 말했던가?


잘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불퉁한 얼굴로 앉아 있는 그로 말하자면 딱히 이성에 별관심도 없고, 그렇다고 결혼이라는 제도엔 더더욱 관심 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였다.

그저 당분간 일에만 신경 쓰고 싶다는 것 정도? 그런 그를 사람들은 워커홀릭 중에서도 지독하다 불렀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말들에 별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번 추석까지 여자, 그것도 결혼할 여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동성애자도 아닌 무성애자라 치부하고 호적에서 파겠다는 부모님의 말씀만 아니었다면 정말이지 누가 봐도 잘생긴 그의 얼굴에 저런 심란한 먹구름은 끼지 않았을 것이다.


무성애자란 말이 나오자마자 앞에서 허리가 꺾이도록 웃고 있는 해준을 팰 기운도, 더 이상 노려볼 힘도 없었다. 주말에 부모님께 어찌나 시달렸는지 무엇인가를 던질 힘마저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앞에 있는 반쯤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차가운 걸 한 번에 마셔서 그런지 콧등이 저려와 절로 미간에 힘이 더 들어갔다. 해준이 손가락을 뻗어 그의 구겨진 미간을 꾹 눌렀다.


“인마, 잘생긴 얼굴에 주름 생길라. 펴라, 쫌. 부모님이 틀린 말 하신 것도 아닌데. 정 그러면 가짜 신부라도 데려가지 그러냐?”

“그건 뭔 개소리야?”

“그냥 적당히 연기해 줄 여자 하나 구하면 쉬운 일 아니냐? 솔직히 너, 성격은 완전 재수 없지만 허우대는 보다시피 멀쩡하잖냐. 아니지, 아니야. 대한민국 0.1%안에 들법한 외모지.”


해준이 피식 웃으며 마치 스캔하듯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피듯 주시했다.


딱히 못난 얼굴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잘난 얼굴이었다. 그 덕에 학교 다닐 때 꽤 편했다. 특히나 여 교수들의 편애는 상상을 초월했었다. 어쨌거나 그 사연을 풀어내자면 꽤 길지만…….


그의 외모는 여성들의 모성애를 쉽게 불러일으킨 달까? 딱히 체구가 작고 그런 건 아니지만 흰 피부에 큰 눈과 인상적으로 붉은 입술 때문에 그런 듯했다.


스스로의 생김새를 썩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손해 보고 살진 않았었다. 외려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이게 다 부모님의 유전자를 잘 물려받은 탓이었으니 거기에 대해서만큼은 불만이 없었다.


“가짜 신부 구하기가 어디 쉽나?”

그가 마치 포기했다는 투로 말하자 해준이 덥석 물었다.

“오, 너 정말 생각 있는 거냐? 이 강해준 님이 누구시냐? 찾아줄게.”

“널 어떻게 믿고?”

“이거 왜 이러셔. 나 고민 해결해주는 해결사야. 기다리게, 친구. 내 완벽한 조건의 여자를 찾아 올 터이니. 원하는 타입 있으면 말해봐. 되도록 적합한 인물로 모셔오겠어.”


해준은 지금 이게 무슨 게임이라도 되는 양 신나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길게 쓸어내렸다.


“타입 같은 거 없어.”

“야, 그래도 대충 외모 같은 거 있잖냐.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이 좋다는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감도 못 잡겠네. 너 설마 진짜 동성애자 아니냐? 너 설마, 혹시, 아니지? 나 좋아한 건 아니지? 아니야. 확인해 봐야겠어. 이리 와, 뽀뽀 한 번 해보자.”

“이 새끼가 미쳤나.”


겁도 없이 덤벼드는 해준을 보며 식겁한 표정으로 이마를 튕겨내었다. 맞은 이마가 금세 붉게 달아오르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해준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번 사건은 해준에게 큰 흥미를 일으키게 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것도 장난기 가득한 해준에게 딱 좋은 먹잇감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인생을 살며 고민이라곤 없어 보이던 그를 수렁에 빠뜨린 게 하필이면 결혼이라니.

이 나라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을 아버지로 둔 그에게도 결혼이란 건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 이태림 며느리로 들어올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가짜 신부 역할로.”

“이야, 너 정말 심각하게 고민한 모양이구나? 하긴, 대배우 이태림의 며느리자리는 정말 고달프지. 거기다 아직도 팬클럽이 있으신 너의 옆자리에 서는 여자는 진짜 공공의 적이 될 거야. 하지만 그런 유명한 아버지를 뒀으니 더 이상 너도 그렇게 물러설 수가 없겠다는 게 나의 결론. 그러니까 말해봐, 원하는 타입.”


그는 한참을 생각하듯 이제 고개까지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몇 번이나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참을성 없는 해준도 지금 그가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를 느낀 모양인지 평소답지 않게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외모 같은 건 아무 상관없어. 그냥 나와 뜻이 맞는지, 나하고 같은 목적인지, 그것만 같으면 돼. 물론 서로 충돌이 일어날 성격이 아니면 더 좋겠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건 무리고 욕심이지.”

“그냥 다 너의 조건에 부합하고, 무조건 여자면 된다는 거지?”

“그래, 그냥 여자면 돼. 생물학적으로 여자!”

“오우케이! 걱정하지 마. 너 나 모르냐? 진짜 원하는 거 있으면 다 찾아내잖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기 많고, 웃기는 친구이긴 하지만 해준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건 늘 다 찾아내었다.


해준은 남자답게 선이 굵직굵직하게 잘생긴데다 유머도 충만해서 늘 인기가 많았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는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기로 유명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대학 시절엔 해결사로 유명했었다. 남자 동기들이 찾아 달라는 사람은 모조리 다 찾아줬었으니까.

이럴 때보면 해준은 탐정이나, 해결사가 참 잘 어울렸을 것 같았다. 석션 기계를 잡고 있는 치과 의사가 아니라.


“아무튼 준비만 하고 있어라. 그만 가, 나 예약 환자 받아야 돼.”

놀 땐 꽤나 웃긴 성격이어도 일 할 때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해준을 보며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느 정도 해준에게 힌트를 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도 못하는 모양이다. 하여간 다른 땐 눈치도 엄청 빠르더니 꼭 중요한 일에는 얌체처럼 빠져나가곤 했다. 눈치 빠른 해준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어차피 오늘 하루는 공쳤다. 하늘에선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원장실을 나가려던 해준이 재빨리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그를 보다 무엇인가 생각난 듯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쳤다.

“우리 동생!”

“뭐?”

“시골 가서 땅 파고 있는 내 동생. 강해원!”


드디어 해준이 덥석 물었다. 하지만 그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갑자기 뭔 개소리야.”

“치대 재미없다고 때려치우고 다시 수능 봐서 의대 가더니,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기에 자기는 미천한 생물이라면서 때려치운 내 동생!”

“그래서 뭐 어쩌라고.”

“생각해봐. 우리 동생 나이가 서른하나다. 시집가야 하는데 못 가고 있잖아. 어차피 갈 마음도 없는데다 독신이 최고라고 외쳐대니 울 어머니 걔 때문에 혈압 올라가신단다. 딱 맞는 조건 아니냐?”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그의 얼굴에 생긴 주름이 펴질 줄 몰랐다. 해준은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차며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짠! 우리 동생!”


해준이 코앞으로 지갑을 가져다 대었다. 그는 무슨 짓이냐는 듯 신경질적으로 지갑을 낚아챘다. 사진을 보던 그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야, 생긴 거 상관없다면서. 그냥 생물학적으로 여자! XY염색체만 아니면 된다고 했잖아!”


여기선 한 번의 더 강한 연기가 필요하다.

도무지 안 되겠다는 얼굴로 그가 고개를 흔들었지만 해준은 막무가내였다.


“진짜 내가 해원이 잘 꼬드겨 낼 자신 있다니까.”

“문제는 해원이가 아니라 너희 부모님이거든?”

“우리 부모님이 왜?”


해준이 다그치듯 물었다.


“너희 부모님 속일 자신이 없다.”

“이야, 이 자식 보게. 넌 너희 부모님 안 속이려고 했냐? 거기다 너희 아버지는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러니까 너희 둘만 짝짜꿍이 맞으면 된다 이거지.”

잠시 입술을 깨물던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추진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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