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번 버스

피곤에 쩐 월요일부터, 자정을 넘어 달리던 수유역 가는 버스. 멀리 앞쪽에 앉아있는 겨자색 가디건. 밝은 갈색에 질끈 묶은 꽁지 머리. 포인트는 핫핑크 컬러 미니 크로스 백. 흰색 깔끔한 가젤. 아, 뒷모습만으로도 이상형이다! 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아무도 모를 자존심에 혼자 고개를 돌린다. 종로 5가쯤 부터 계속되는 띠 띠 하차벨 소리, 절대 나는 창 밖만 쳐다볼거야! 하는데 눈은 왜 자꾸 하차 도어를 보게 되는지. 그렇게 방심을 하다가 살짝쿵 고개를 돌리는 옆모습에 심쿵 공격 당하고 코마 상태에 빠진다. 짧은 몇 정거장, 코마의 시간. 나는 이미 저 여자와 연애도, 가슴아픈 이별도 하다가 밝은 미래도 꿈꾸었다. 수유역, 강북구청 오피스. 그녀가 내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 도어 앞으로 다가온다. 눈이 마주쳤다. 이 앙칼진 애미나이. 수수하게 생겨서는! 나는 그렇게 예쁜 메두사의 돌인형이 되었다. 잘가요, 내 소중한 사랑. 행복했어요. 그래도 이것만 알아줘요. 나 네 정거장 남음. 그녀는 내렸다. 내리자마자 저 멀리 횡단보도를 건넌다. 뭐가 그리 급하더냐, 이 야속한 춘향아. 나는 마저 집에 오는동안, 와서 여름을 씻어내는동안, 침대천국에서, 폰을 잡는 이 동안에도. 생각날 줄 몰랐지, 당신이. 아, 저 변태는 아닙니다. 어쨌든, 진심으로 행복하세요. 산전수전 다 겪고 겁만 많아진 서른살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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