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령의 은밀한 나들이

프롤로그

전각 안은 시끌벅적했다. 유향각의 전각 중 비교적 외진 곳이었지만 크기로 치자면 가장 큰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수십 개의 나무 의자들이 쭉 배치되어 있었고 그 위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값비싼 도포 차림의 중년 사내들이었으나 무채색 차림의 사내들도 많았다. 제법 긴장감이 흐르는 얼굴로 기다리는 이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느긋하게 허리를 뒤로 제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반물빛의 무복을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부채로 얼굴을 가린 사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왼쪽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사내와 마찬가지로 부채로 얼굴을 가린 한 선비가 있었다. 무복을 입은 자가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나직이 말했다.

“나는 윤 선비라 하오.”

부채로 얼굴을 가린 선비가 힐끔 말을 걸어오는 사내를 쳐다봤다. 대답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지 그가 더듬거리며 자신을 밝혔다.

“나, 나는 홍 선비라 하오.”

“댁도 혹 번란시(칸나) 꽃을 보러 온 것이오?”

윤 선비라는 자가 번란시에 대해 말하자 부채 너머 선비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

“그렇소. 허면 윤 선비도?”

윤 선비는 그렇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며 날렵한 눈매로 앞에 앉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훑었다. 익숙한 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윤 선비의 시선이 다시 홍 선비에게로 향했다.

“홍 선비는 박매(경매)가 처음인가 보군. 처음엔 뭐 다들 그리 얼굴을 숨기지.”

처음이라는 말에 부채 너머에 있는 선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렇소. 헌데 윤 선비는 처음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얼굴을 가리오?”

홍 선비가 물었지만 윤 선비는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묵묵히 주위를 둘러봤다.

멀리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들이 들려왔다. 곧바로 앞쪽 입구 문이 열리고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하수인으로 보이는 몇몇 사내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중 한 사내의 손엔 하얀 백자 화분에 담긴 난이 들려 있었다.

사내는 머리를 꾸벅 숙이더니 짤막한 인사를 했다. 이런저런 절차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곧장 박매가 시작되었다.

“자! 한 줄기에 두 송이의 꽃망울이 맺힌 신기한 난입니다. 삼십 냥부터 갑니다.”

“사십 냥!”

무채색 도포를 입은 중년의 사내가 먼저 손을 들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었기에 윤 선비와 홍 선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옆은 푸른색의 꽃망울이 달린 아름다운 난에 마음을 뺏긴 듯 두 사람은 한참이나 그윽한 눈빛으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흥정이 이어지고 난은 결국 100냥에 처음 손을 들었던 사내에게로 돌아갔다.

지켜보던 윤 선비가 소곤거리며 말했다.

“좌의정의 하수인이오. 그의 명을 받았으니 저자가 나서면 그냥 포기하는 것이 상책이지.”

홍 선비는 박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고관대작들이 그런 식으로 진귀한 꽃과 나무를 취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실제로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후로 몇몇 꽃이 더 나왔다. 황매화며 석류나무들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비싼 값에 팔려 나갔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번란시가 나왔다. 일순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명나라에서 들여온 진귀한 꽃인지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번란시는 명나라의 황실에서도 진귀한 꽃이라 하여 매우 소중히 다루는 것이었다. 번란시를 보던 윤 선비의 눈이 황홀하게 변해 갔다.

겉은 노란색이지만 안으로 갈수록 붉은빛이 번져 있는 번란시는 마치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켰다. 노랗고 붉은 번란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던 윤 선비의 시선이 천천히 화분으로 향했다. 순간 윤 선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황칠 화분이었다. 황칠은 황칠나무에서 추출한 것으로 노란빛을 띠는 매우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색감 자체가 황제의 색이라 하여 명나라에서도 끊임없이 조공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관리들의 수탈도 이어졌다. 이로 인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왕이 체취를 금한 나무였다.

곧바로 흥정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명나라에서도 진귀한 꽃인지라 백 냥부터 시작하겠소.”

진행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난을 취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백삼십 냥!”

어쩐 일인지 윤 선비가 번쩍 손을 들었다.

“이백 냥!”

이백 냥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윤 선비에게로 고정되었다. 홍 선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저자가 나서면 그냥 포기하는 것이 낫다면서 어찌 나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좌의정의 하수인이란 사내도 고개를 돌려 힐끔 윤 선비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외쳤다.

“이백삼십 냥!”

“오백 냥!”

윤 선비가 보란 듯이 일어나 앞으로 나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부채로 가린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자자! 더 없습니까?”

박매를 진행하는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을 취한 사내가 분기가 솟아오르는 듯 부르르 입술을 떨었지만 더 이상 나서지는 않았다. 그는 화가 난 듯 일어나 서둘러 문 쪽으로 나가 버렸다. 박매가 종료되자 사람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각을 떠나기 시작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는 히죽거리는 얼굴로 윤 선비를 바라보며 돈을 내기를 종용했다.

“어서 돈을 내시고 가져가십시오.”

“난 돈을 낼 수 없소.”

“뭐요?”

사내의 안색이 단숨에 붉게 달아올랐다.

“돈을 낼 수 없다 했소.”

“아니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사내의 격앙된 반응에도 윤 선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사내를 노려보며 엄히 외쳤다.

“이 황칠 화분은 나라에서 금한 것이 아니더냐?”

“아이고 부채 양반! 알만한 분이 왜 이러시나? 박매 한두 번 하시오? 아! 황칠 화분이 없을 때만 오셨나? 그럼 이참에 한번 들여가 보시오.”

“허허! 네 이놈! 국법에서 금하는 것을 어찌…….”

“정녕 이럴 것이오?”

사내의 목소리가 커지자 언제 왔는지 덩치가 큰 사내들이 몽둥이를 들고 윤 선비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아직 나가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문밖으로 빠져나가느라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홍 선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허면 벌금이라도 내고 가시던가. 박매를 이리 망쳐 놓았으니 우리도 남는 것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오?”

“네놈이 포청에 가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뭐요? 포청! 으음! 안 되겠군.”

사내가 몽둥이를 든 수하들에게 머릿짓을 하자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한꺼번에 윤 선비에게로 달려들었다. 윤 선비의 얼굴에 히죽 웃음이 일었다. 그는 얼굴을 가리던 부채를 접어 먼저 달려드는 사내의 몽둥이를 걷어 냈다. 그의 부채가 정확히 사내의 왼쪽 목덜미를 가격하자 사내가 칼이라도 맞은 양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 홍 선비는 백옥처럼 빛나는 윤 선비의 얼굴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검은 숯 같은 눈썹이며 조각처럼 수려한 콧잔등, 깊고 검은 눈동자가 마치 신선이 내려온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싸움은 길지 않았다. 윤 선비에게 달려드는 사내들은 저마다 부채로 어딘가를 맞고 나가떨어지기 바빴다. 그 와중에 길을 연 윤 선비가 재빨리 홍 선비에게로 달려가 손을 잡고 밖을 향해 달렸다. 졸지에 손이 잡힌 홍 선비는 어쩔 수 없이 윤 선비를 따라 도망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유향각을 빠져나간 윤 선비는 쉬지 않고 모퉁이를 돌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정자 앞에서 멈춰 섰다.

“헉헉!”

홍 선비는 숨이 차올라 헐떡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 배를 부여잡고 허리를 굽힌 홍 선비와는 반대로 윤 선비는 정자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더니 태평하게도 정자의 바닥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달음박질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보니 샌님이 따로 없군.”

“갑자기 데리고 나오니…… 그러는 것 아니요. 헉헉!”

“허! 아주 숨넘어가겠군. 거기 있었으면 홍 선비는 내 동패로 여겨져 몰매를 맞았을 것이오. 그리될까 봐 불쌍해 데리고 온 것이니 내게 고마워하시오.”

겨우 숨을 돌린 홍 선비가 부채로 다시 얼굴을 가리고 차분히 말했다.

“잘못은 윤 선비가 했는데 내가 왜 매를 맞소?”

“아니지. 잘못은 그놈들이 했지. 국법을 어기고 황칠 화분을 거래했으니…….”

“허면 포청으로 가야 할 것 아니요?”

“갈 것이오. 잠 좀 자고. 어차피 지금은 가도 이미 다 정리해서 도망쳤을 것이요. 유향각의 행수는 그런 것을 몰랐다며 딱 잡아뗄 것이고. 그러니 당장 갈 필요는 없소. 일단 지금은 너무 곤하니 잠이나 자야겠소. 혹 놈들이 쫓아오면 깨우시오.”

“나는 가 봐야 하오.”

“허면 가든지…….”

말을 마친 윤 선비는 정말 잠이라도 든 것인지 이내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겨우 숨을 고른 홍 선비가 묵묵히 윤 선비 쪽을 바라보았다.

정자의 맞은 편 숲 속에서 고요히 바람이 일었다. 달빛이 내려앉은 숲마다 빛이 너울거렸고 아직은 무성치 않은 숲 속에서 간간이 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간다고 했지만 막상 홍 선비는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얼마 후 홍 선비가 윤 선비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달빛만큼이나 새하얀 윤 선비의 얼굴이 은은한 꽃을 연상시켰다. 홍 선비는 아까 보았던 그의 얼굴을 생각하며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껴야 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잘생긴 사내는 처음이었다. 수려한 얼굴뿐 아니라 날렵한 몸놀림까지 마치 각인이라도 된 듯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쳤다.

홍 선비가 손을 뻗어 윤 선비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제풀에 놀란 홍 선비가 손을 멈칫거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이미 목표를 정한 손끝이 마음대로 제어될 리 없었다. 홍 선비의 손이 윤 선비의 오뚝한 콧날에 닿을 찰나였다.

“뭐하는 짓이오?”

어느새 홍 선비의 손이 윤 선비에게 잡혀 있었다. 놀라 굳어져 버린 손을 꼭 잡으며 윤 선비가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달빛에 의지해 윤 선비가 뚫어져라 홍 선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졸지에 손이 잡힌 채 뜨거운 시선을 받은 홍 선비의 심장이 요동치듯 떨려 왔다.

“혹시 원하는 것이…….”

“…….”

“독특한 취향이군.”

“무……슨?”

“지금 내게 반한 것 아니요? 나의 잘생긴 얼굴에.”

“……아, 아니요.”

“그럼 어찌 아직도 가지 않고 뚫어져라 내 얼굴을 보고 있소?”

“그, 그건 혹시 놈들이 올까 봐, 뭐 그랬소.”

“하하! 무슨 그런 거짓말을. 정말 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군.”

“그런 것 아니란 말이오.”

당황하는 홍 선비의 모습에 윤 선비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윤 선비가 훌쩍 몸을 날려 저만치 멀어졌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그땐 내 홍 선비를 한번 생각은 해 보겠소.”

“정말 그런 것 아니란 말이오.”

홍 선비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이미 윤 선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유유히 멀어져 갔다. 홍 선비가 갓끈을 벗으며 얼굴을 어루만졌다. 무언가 아쉬운 듯 윤 선비가 사라진 곳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난 여인이란 말이오.”

Sweetside 다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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