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엄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속보가 휴대폰 문자로 들어온 것은 내가 평화비행기를 타고 강정마을에 내려갔을 때였다. 경찰이 구럼비 바위를 봉쇄해 법환포구에서 강정천까지 반토막난 올레7코스를 걸어 평화콘서트 운동장으로 들어선 9월 3일 토요일 늦은 오후 쯤이었는데 날이 무척 더워 행사장 천막 그늘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던 중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동안 가슴 아래쪽에 있던 불덩이가 순식간에 치솟아 눈두덩을 뜨끈하게 적시더니만 또 금세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온 몸이 딱딱하게 식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돌아가셨구나, 우리가 아들의 빚을 마침내 갚아낸 세상을 못 보시고. 50미터 앞에는 전투경찰이 대열을 지어 서 있고, 또 방금 전에는 공사장 땅을 밟았네 아니네 하며 또 한 동료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되는 걸 보고 난 직후였다. 이렇듯, '어머니'가 필요한 장소는 온 세상에 가득한데 그 '어머니', 제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필요한 모든 곳을 맨 앞에서 거닐다 끝내 한을 못 푸시고 아들 곁으로 가신 것이었다. '어머니', 일하는 이들이 눈물 흘리고 다치고 목숨을 잃는 곳마다 언제나 함께 계셨던 단 한 분 '어머니'의 이름은 누구나 짐작하시겠듯 이자, 소자, 선자를 쓰셨다. 지금은 대물림이 흔한 풍경이 아니다. 장인의 경우에나 작은 소상공인의 경우에, 아버지가 하는 작업을 아들이 계승하거나, 조부모부터 해온 장사를 손자나 후대가 이어받는 식으로 자연의 일반적인 순서에 따라 대물림을 상속한다. 그러나 간혹 그 반대로, 자식이 하던 일을 부모가 받아안아 업으로 삼는 경우도 있는데, 대개 이 경우는 자식이 그 뜻을 다 펼치기 전에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고에 기인하는 사례가 많다. 이 땅에서는 그 예외적인 경우가 현대사 전반에 걸쳐 상당히 자주 일어난 축에 속하는데, 그것은 우리네 역사가 4.3, 5.18, 6.10 등 민주주의 발달사의 이랑이 개인의 희생이라는 고랑을 절실하게 요구했던 때문이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누군가가 피를 흘린 덕분에, 우리는 이만큼 살게 됐다. 하지만 그 수혜자인 체제도, 정부도, 단체도, 개인도 그 피값을 희생자에게 제대로 셈을 치른 적은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모두가 가장 크게 빚진 한 가족을 꼽자면 전태일과 이소선, 이 모자가 아닐까 한다. '서울의 예수'라 불리는 전태일은 비천한 처지에 이른 동료들의 삶을 구하고자 제 몸을 불사른 그 고귀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와는 달리 그저 추앙받는 어머니를 가지지 못했다.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이 목숨을 버린 그 자리에서 아들의 꿈을 대물림하기로 결심했고,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를 창설해 그렇게 잃어버린 자식을 가진 부모들을 모아, 자식들이 싸우던 현장에 몸을 부렸다.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죽이라며 소리치는 피끓는 유가족들이 나타나면 독재시대의 경찰과 백골단도 몽둥이와 방패를 사렸고, 그 품에서 노동운동은 한숨을 돌리며, 새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이 세상의 수많은 공장과 사업장이 해고와 산재, 차별과 배태로 일하는 이들을 목 조르며 이윤을 쌓아가는 동안, 이소선 여사와 유가협 동료들은 자신과 같은 희생을 다시 없게 하기 위하여 분쟁이 일어나는 모든 장소에 있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 직선제가 이루어지고, 국민소득 2만불 시대가 오고, 선진국 편입의 척도라는 OECD에 가입했어도 이소선 여사와 유가협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은 결코 오지 않았을 뿐더러,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대다수 노동자가 계급적, 경제적으로 다시 하위 구분되는 구조적 차별을 당연시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21세기를 맞게 됐다. 그 와중에서 이소선 여사가 골병이 들었다는 풍문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당신의 골병은 결국 이 세상의 골병, 끊어낼 수 없는 이 자본주의라는 질병과 내 자신의 자발적 상업주의와 통해있던 건 아니었을까. 아들을 그리 허망하게 보내고서도, 제 한 몸 추스릴 새 없이 이 땅의 질곡을 상처와 주름으로 온 몸에 새겨넣으셨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영결식이 2011년 9월 7일 열렸다. 행렬은 '전태일 다리'로 불리는 청계천을 지나 아들이 묻혀있는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먼저 보낸 아들 전태일 열사가 미리 터를 잡고 어머니를 기다려온 장소, 비로소 모녀는 한 자리에서 가없이 함께 할 것이겠다. 민주사회장으로 치뤄진 장례와 영결식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는데, 그 눈물은 당연히 '어머니'와 '아들'을 향한 것이기도 했으나 끝내 그 무거운 짐을 모녀에게 지웠으면서도 희생의 댓가를 여전히 누락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과 우리 노동자의 신산한 삶에서 비롯된 참혹한 반성이기도 했다. 언젠가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 저 먼 곳에서 다시 이소선 여사와 전태일 열사를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우리 이 무겁고 죄스런 마음 없이 웃으며 옛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나. 아들 전태일에게서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에게 단 한 분의 '어머니'셨던 이소선 여사, 가장 살벌한 탄압과 시위의 현장 맨 앞에서 체제의 폭력을 고스란히 감당하셨던 가장 강인한 어머니, 그렇지만 다치고 병든 노동자들에게 말 그대로 더없이 따뜻하고 한없이 자비로웠던 진짜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떠나보낸다. 유가협이나 전태일의 수식어 없이도 가장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리워도 좋을 그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안녕, 엄마. 엄마. * 어머니 돌아가신지 4주기. 지난 일기를 꺼내왔다.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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