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땅의 옹호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그랜 토리노>를 보고 나서, 씨네 21에 이런 평을 실은 적이 있다.

"그랜 토리노를 보고 나서, 저 완고한 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그저 찬미하는 일 외에는

이제 그의 영화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는 무력감을 벗어나기 힘들다"

김종철 선생의 글이나 녹색평론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허문영이 했던 말을 그대로 선생에게 바쳐도 되겠다 싶어진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허문영과는 달리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 무력감만은 아니다. 가난하게 더불어 살자, 지금의 시스템에 타협하지 말고 작지만 고지식한 공동체로 싸워가자는 그의 말에 우리가 화답, 공명할 수 있기 때문.

땅을 옹호한다는 것은, 농사, 소농을 옹호한다는 것. 소농을 옹호한다는 것은 소수의 자급식 영농, 소박하지만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는 뜻. 많이 가지는 데서 쾌락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데서, 함께 먹는 데서 행복을 얻는다는 뜻.

이의를 달 수 없는 책을 읽으면서, 그만 숙연해졌다. 아직 우리는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는 시대'에 마지막으로 속해 있는지도 모른다.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이 아직 우리 곁에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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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옹호하거나 옹호하려고 하는 가치들은 본질적으로 거의 예외없이 농경문화라는 근본 토양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 평등한 관계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욕구, 노동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의식, 개인적 자율성, 자치와 자립, 비폭력주의, 협동과 연대, 상호부조와 보살핌 등등, 아무리 인간정신이 경멸을 당하는 짐승스러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끝끝내 옹호하고자 하는 이러한 윤리적 덕목들은, 따지고 보면,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이후 형성되고 확립되어온 마을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트고 강화되어온 가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의 발언은 특히 경청할 만하다. 그는 일찍이 촌락공동체야말로 인류사회에서 가장 영속적인 가치들을 배태한 원천이었음을 되풀이하여 강조하였던 것이다.《기계의 신화》등 방대한 저술을 통해서 인류사에 있어서 기술적 진보가 갖는 의미를, 생태학적 관점에 근거하여, 집요하게, 또 깊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성찰하는 데 생애의 대부분을 바쳤던 멈포드가 만년에 이르러, 인간사회가 건전하게 돌아가려면 전체 인구의 적어도 80%가 농경 혹은 농경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어야 한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토로한 것도 마을문화의 핵심적인 의의에 대한 그 자신의 이러한 확신 때문이었다.

- 김종철, <땅의 옹호>, 녹색평론사, 2008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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