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의 숨겨진 규칙

시장을 분석하면 투자 방향이 보인다

짧은 시간 동안 겪은 호황 시장과 불황 시장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호황기 시장에 나타난 특징과 불황기 시장에 나타난 특징을 분석하면, 투자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취향에 맞고 마음에 드는 미술품을 턱턱 사들일 여유가 없는 보통 사람들은 한 작품 한 작품을 사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한 투자 전략은 반드시 필요하다.

1 ː 판매자 주도 시장 vs 구매자 주도 시장 Sellers Market vs Buyers Market

호황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미술품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상황이 기억날 것이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사면 돈이 되는지 뻔히 아는데도 작품을 구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1차 시장인 전시 화랑에서 작품을 사려고 대기 번호를 받고 기다리던 일, 결국 1차 시장에서 작품을 구할 수 없어 2차 시장인 유통화랑에서 같은 작가의 유사한 작품을 웃돈을 주고 구매하는 일, 유통화랑에서도 구하지 못해 결국 경매에서 공개 경합을 통해 웃돈에 웃돈을 주고 구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한 작가의 작품은 50호 기준으로 1차 시장에서 5000만 원, 2차 시장에서 1억 5000만~2억 5000만 원, 3차 시장에서 5억 원까지 거래되는 등 미술 시장은 바야흐로 행복한 혼란기였다. 1차 시장에서 작품을 구매할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최고 열 배의 수익률을 올린 것처럼 느껴졌을 테니 어찌 행복하지 않았겠는가. 이 시기는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공급을 담당하는 자, 즉 ‘판매자’가 선택권을 쥐고 구매자를 골라가며 판매하는 판매자 중심의 시장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행복한 혼란기를 보낸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시장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판매자는 길게는 2년 전부터 짧게는 몇 달 전에 판매했던 작품들을 재판매해야만 하는 책임과 부담을 안고 있지만 시장은 당시 가격을 거론하기도 힘들 만큼 차갑게 식어버렸다. 투자자들은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작품을 되팔고 싶어 하지만 구매자들은 아무리 낮은 가격을 제시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시장의 가격 결정권이 구매자에게 넘어간 ‘구매자 중심’의 시장으로 바뀐 것이다. 구매자는 시장에 나오는 급매물 작품들을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면서 신중하게 원하는 작품을 고를 수 있다. 불황기에 들어서면서 구매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그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구매자 중심’ 시장이 된 것이다.

2 ː 경매장 vs 갤러리 Auction vs Gallery

판매자가 원하는 가격을 부를 수 있었던 판매자 주도 시장은 불황기가 되자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을 부르는 구매자 주도 시장으로 바뀌었다. 더불어 호황기에는 경매시장이 미술 시장을 주도했지만, 불황에 접어들자 구매자들은 발걸음을 갤러리로 옮겼다. 불황기에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 중 하나는 호황기에는 경매 거래가가 가장 높지만, 불황기에는 경매 거래가가 가장 낮게 책정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컬렉터들은 발걸음을 갤러리로 옮겼다. 그렇다면 왜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가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던 컬렉터들의 작품 선택 기준이 달라진 걸까? 경매가 갤러리에 주도권을 뺏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구매자의 판단으로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 책정 시스템을 통해 책정된 가격이라고 생각했던 경매 낙찰가가, 불황기에 이르자 낙찰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도 거래가 되지 않는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초보 컬렉터들은 미술 시장에 진입할 때 거래 가격에 대한 정보를 경매 결과를 통해서 얻는다. 그들은 가격을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거래되는 갤러리 비즈니스에는 뭔가 함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격이 공개되는 시장, 얼마나 신뢰가 가고 투명해 보이겠는가. 하지만 이들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은 가격에 작품이 낙찰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당황스러워했다. 원하는 작품을 반드시 사고야 말겠다고 작정을 한 두 사람이 가격에 상관없이 경쟁을 한 결과가 과연 그 작품의 정당한 가격일까? 더 이상 작품이 나오지 않는 근대미술품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작품이 아니라면, 이렇게 거래된 가격은 단 한 번의 예외적인 가격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동시대 작가의 작품가가 일반적인 거래가를 훨씬 뛰어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면,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가격만 고려한다면, 호황기 경매시장은 작품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작품을 사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가능하다면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불황기에는 오히려 경매시장을 이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경매는 경합을 유도하고자 추정가를 낮게 잡지만, 불황기 시장에서는 실제로 경합이 거의 되지 않기 때문에 낮은 추정가 선에서 낙찰되는 일이 많은데, 불황기에 최대한 낮게 책정된 추정가에서, 게다가 낮은 추정가 선에서 낙찰받는다면, 가격 면에서는 큰 이익을 본 것이다. 미술 시장의 위험성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던 경매 시스템을 기피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모두가 외면하는 시점에서 예상치 못한 낮은 가격에 좋은 작품을 소장할 기회를 노려보는 것도 틈새 전략이다.

미술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도 어느 순간 간과되는 요소가 있다. 그들은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다. ‘작가’가 없다면 작품도 없고, 작품이 없다면 시장도 없다. 시장의 주도권이 경매에서 갤러리로 넘어간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갤러리는 시장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작가’를 키우고 발굴하는 곳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직접 경매에 올리지 않는다. 경매사는 작가와 직접 거래하지 않고 소장자나 갤러리를 통해서 작가의 작품을 위탁받아왔다. 그렇지만 미술 시장이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면서 경매사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바로 공급받아 올리는 새로운 방식의 기획 경매를 진행했고, 이로 인해 검증 단계에 있거나 혹은 검증이 되지 않은 작가들 조차도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다. 작가의 미래나 작품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구매자들은 경매사의 안목을 믿고 구매하는 것이지만, 경매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범주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작가와 컬렉터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갤러리의 필요성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으며, 컬렉터는 낮은 가격에 사는 것보다 안전하게 사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움직이지 않는 불황 시장에서도 시장의 주도권은 확연하게 움직였다.

3 ː 현대 미술품 vs 근대 미술품 Contemporary Art vs Modern Painting

미술 시장의 호황은 결국 미술 시장으로 돈이 유입되었기 때문인데, 이 돈이 들어온 까닭은 선견지명이 있는 투자가들이 미술 시장이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돈이 유입되었다는 것은 구매 수요가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미술 시장은 수요가 많아졌다고 해서 공급량을 쏟아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리하여 생존 작가의 작품 중 제작된 지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은 작품은 경매에 올리지 않던 관례를 깨고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작품들이 경매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작고한 작가의 작품은 소장자를 설득해야만 겨우 빼내올 수 있지만, 왕성하게 물량을 쏟아내는 동시대 작가의 작품들은 계속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매를 통해 현대 미술이 빠르게 대중들에게 퍼져나갔고, 경매를 통해 책정된 높은 낙찰가가 바로바로 1차, 2차 시장에 반영되었다. 그렇게 현대 미술 작품들의 가격이 단기간에 빠르게 상승하면서 투자자들을 크게 만족시켜 주었다. 물론 이외에도 취향과 안목의 변화, 컬렉터의 연령층 변화 등 다른 원인도 많지만, 경제적인 논리로 접근한다면 수요와 공급의 원칙, 대체 투자처 발굴 등에 따라 현대 미술 작품들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설득력 있을 것이다. 또 중국 경제의 부흥과 맞아떨어진 중국 현대미술의 놀라운 성장도 한 가지 원인으로 들 수 있는데, 이는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경제적으로 급격히 성장한 나라의 미술품을 사는 현상으로 확대되었다.

작품성을 보고 미술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 전망만을 보고 미술품을 사는 전문적인 투자자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처럼 오로지 투자 차원에서만 미술품을 구매했던 투자자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이들이 선호했던 현대 미술 작품들의 거래는 멈추고, 신규 자본의 유입에 영향을 받지 않는 근대미술품 Modern Paintings 분야는 안정적으로 가격을 유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시장이 급격하게 불황에 접어들던 시점에서는 근대미술 작품들도 일시적으로 가격이 하락했지만, 동시대 작품들처럼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지거나 시장 자체가 사라질 위험성은 없다. 투자자들은 향후 가격이 어떻게 변동할지 예측할 수 없는 100점을 사느니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작품 한, 두점을 사겠다는 안전 지향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미술 시장의 법칙

작가 | 이호숙

출판 | 마로니에북스

발매 | 2013.10.05

책으로 꾸민 초록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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