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피스> - '못난 미생들의 아픈 자화상'

‘장그래’는 비현실적이었다. 드라마 <미생>의 모든 사건과 캐릭터들이 더할 나위 없이 리얼했지만, 딱 하나. 주인공 장그래만큼은 아니었다. 대기업에 입사한 고졸 인턴이라는 것도,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노력형 천재라는 것도 좋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다름아닌 장그래의 초인적인 묵묵함이었다. 모든 부당함을 온몸으로 껴안고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 앞에서 한번의 정색 없이 차분하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해 내는 인턴사원이란, 어디까지나 드라마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반면, 영화 <오피스>가 그리는 인턴 이미례(고아성 분)는 회사 생활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빵빵한 스펙에 싹싹하고 예쁘기까지 한 동료 인턴에게 열등감을 느껴 그녀를 차갑게 대하고, 자신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선배들의 태도에 퇴근 후 집에 돌아가 나름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미례는, 여전히 못난 이 시대 ‘미생’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굴지의 식품기업 제일F&B 영업 2팀에서 근무하는 김병국 과장(배성우 분)은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어느날 밤, 돌연 자신의 노모와 아내, 아들을 살해한 뒤 행방불명된다. 다음날, 이 사건으로 회사는 발칵 뒤집히고, 수사를 위해 사무실을 찾은 광역수사대 형사 종훈(박성웅 분)은 영업 2팀 직원들에게서 단서를 얻으려 한다. 4명의 팀원들은 하나같이 김 과장의 살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인턴사원인 미례는 종훈에게 김 과장에 대한 석연찮은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 와중에, 사건 직후 김 과장이 회사 건물로 들어왔고, 이후 회사에서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팀원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엄습한다.

<오피스>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영화의 무대는 전적으로 사무실이고, 회사다. 초반부 김병국 과장이 집에 들어가는 장면을 제외하면(이조차 살인을 위해서다.), 영화는 내내 이야기를 끌어가는 영업 2팀 팀원 각자의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 사적 관계를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동료들이 함께하는 그 흔한 회식 장면조차 없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그리는 개인은 출근길의 지옥철로 시작해 밤늦은 시각의 야근으로 귀결되는, 철저히 사무적이고 기능적인 의미에서의 개인이다.

회사 조직 중에서도 특히 실적으로 평가받는 영업팀은 팀원들 간의 경쟁심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업무 효율을 증대시키기 마련이다. 극중 사라진 김 과장이 남긴 노트에서 회사를 ‘악수(惡獸)들이 우글대는 곳’ 으로 비유한 메모가 발견되는데, 이야말로 전쟁터 같은 영업 조직에 대한 가장 적확한 표현한다. 영화 속에서, 실적에 대한 압박은 부장 이하 팀원들에게 가장 커다란 스트레스 요소이자, 그들의 악마성을 이끌어내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실적을 위해 일하는 것과 더불어, 그들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연대한다. 대리 재일(오대환 분)과 부장 상규(김의성 분), 여사원 하영(이채은 분)과 대리 지선(류현경) 사이에서 보여지는 ‘라인’은 그렇게 얇지만 강건한 연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김 과장은 연대를 거부했고(혹은 연대에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내내 열심히 일만 했고, 결국 혼자가 된 것이다.

<오피스>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공포가 단지 미지의 살인자에게서 유래하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는 사무실에 남아있는 김 과장의 비참한 잔영과 함께,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사무실 공간을 숨막히고 음산하게 그린다.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의 고요한 사무실, 우중충한 형광등 조명, 날카롭게 들려오는 스테이플러, 키보드, 복사기 소리까지. 영화는 사무실의 모든 요소들을 활용해 웅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회사원으로서의 삶 자체가 하나의 비극이자 공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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