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ael과 함께하는 베트남 여행

Saigon Story -2- 사이공 미국 대사관 옥상에만 헬기에 타지 못한 4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뒤엉켜 울부짖고 있었다. 대사관 마당과 오락센터에도 족히 수 백이 넘는 사람들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고, 대사관 밖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말해뭐하랴 대사관과 이웃하고 있는 경찰서 담을 타고 넘어 온 사람만해도 천 명이 훌쩍 넘으니 말이다. 작전 수행을 맡았던 美 해병대의 마지막 해병이 헬기에 오르자, 아무런 미련도 없이 매달리던 사람들을 뿌리치고 헬기는 괭음을 울리며 사이공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마치 새떼처럼 사이공 하늘을 새까맣게 수 놓다 시피했던 80여 대의 '시누크' 헬기와 호위하던 '코브라' 헬기는 더 이상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미군 역사상 최대의 소개 작전 이었던, 작전명 "FREQUENT WIND" 는 작전 소요 예상 시간의 5배를 넘는 장장 19시간 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런데 왜 한치의 빈틈이 있어서는 안될 작전 소요시간이 한 두 시간도 아니고 이처럼 예상을 훨씬 넘어 5배 이상 지체 되었을까? 거기에는 엉성하기 이를데없는 소개 작전의 내막이 있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미국은 월남 패망 2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개 대상 인원들을 시내 각 '어셈블리 포인트'로 모이게 한다음, 자동차나 헬기로 떤선녓 공항으로 이송시켜 공항에서 수송기를 띄워 소개시키는 안, 그리고 공항에서 CH-47등 대형 헬기를 이용하여 사이공 인근에 정박중인 항공모함으로 수송할 계획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28일 밤 공항이 북베트남의 폭격으로 패쇄되어 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그레이엄 마틴 대사의 아집과 안일한 상황 판단도 한몫하게 된다. 그는 모든 정보로부터 눈과 귀를 닫은체 자신만의 독자적 판단으로 소개 작전의 진행을 게을리했다. 심지어 그는 CIA의 정보도 무시하기 일수였다. 대사관 밖에서는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도 대사관저로 자신의 애완견을 데리러 간다며 나왔다가 차를 움직이지 못해 되돌아가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더우기 미군의 작전시각 착오까지 겹치게 된다. 통상 미군의 작전개시 시각은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 시간인데 이 시각과 사이공 시간과의 환산 착오로 미군 조종사들은 미 항공모함 상에서 오후까지 대기중 이었으며, 작전 개시 후에도 미군조종사 복무규정(복무규정상 12시간 이상 계속 근무불가)을 이유로 함대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나중에 본국의 명령으로 허겁지겁 움직이게 된다. 더우기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 대사관 외교관들의 집결지였던 '에셈블리포인트 3'는 당일 북베트남의 포격이 있을 지점이라고 CIA에서 이미 파악한 지점일 정도 였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을 적진에 남겨둔 체 소개 작전을 서둘러 종료하고 도망치듯 철수하면서도 막상 경계 요원들이었던 미해병대 인력을 놓고 떠나버려 나중에 다시 돌아오는 일까지 있었다. 적진에 버려진 사람들 중에는 우리 외교관들과 95명 가까운 교민들도 있었다. KCIA소속 공사 이대용을 비롯 신상범 3등 서기관, 안희완영사, 경찰영사인 서병호 총경, 현역 군인 신분이던 김상우 등을 비롯한 8명의 외교관 이었다. 그 중에서 해군 대위 출신 김창근 3등 서기관과 몇 몇 교민들은 이대용 공사의 명을 받고 언어 장애인 행세를 하며 검문소를 통과해 배를 빌려타고 4일 후 싱가폴로의 탈출에 성공한다. 남겨진 교민들은 한국대사관에 프랑스 국기를 게양한체 프랑스인의 저택으로 위장하고 단체 생활을 하게된다. 한국대사관에서 단체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안희완 영사와 서병호 총경이 끌려가고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정보부 출신 이대용 공사가 끌려간 후, 순차적으로 교민들이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게되고 이윽고 1976년 5월7일 최종적으로 외교관 5명이 출국하게 된다. 결국, 이대용 공사, 안희완 영사,서병호 총경 등 3명만 적진에 남게되는 상황을 맞게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사이공에서 미국인과 성조기가 휘 날리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로써, 근 30년에 걸친 미국의 월남 개입은 미국 정부와 미국인에게 큰 패배감만 안겨 준체 끝을 맺었다. 2년 전인, 1973년 1월27일 체결 된, 휴전 협정에 따라, 그 해 봄, 美軍과 韓國軍이 철수 한지 불과 2년 만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막상한 군사력으로 무장한 월남에 비해, 누가 봐도 경제난으로 곧 쓰러 질 것 이라 예상했던, 공산 월맹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 것이다. 물론, 유사시 즉각 개입하여 월남을 지원한다는 미국 대통령 '리챠드 닉슨'과, 실무 책임자 '헨리 키신저' 장관이 서명한 방위조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의 정권은 '닉슨'의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워터게이트 사건' 으로 인한 도중 하차로, 이미 '포드'로 넘어간 후였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는 베트남을 놓고 벌이는 지리한 찬 반 논란으로 조용한 날이 없었고, 이미 그동안 투입된 인력과 막대한 재원 낭비에 대한 비판과 책임론이 대두 되고 있었다. 결국, 월맹 공산군으로부터 월남을 지켜 준다는 2년 전의 '방위조약 '문서는 휴지 조각 에 불과했졌다. 미국이 약속하고 우방국이 약속의 이행을 보증하기 까지한 美 越 방위조약은, 결과적으로 월남 국민들을 지켜 준다는 것이 아니었다. 소개작전의 대상은 '美 國民'과, 그에 '關係된 越南人'과 , 그리고 越南의 '선택된 지도급 政治人', '고위 公職者' , '軍 將星' 들 이었다. 국민들은 총성과 포연 속에서 어쩔줄 몰라 안절 부절하며 길 바닦을 뛰어 다닐 때, 그들은 이미 작전 개시와 더불어 80여 대의 헬리콥터를 통해 '南지나해'에 정박 중인 미국 항공 모함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있게한 민초들을 버리고 미국 망명 길에 올랐다. 그들을 낳고, 키워주고, 出世 시켜 주었던 조국 월남과, 그들이 사랑을 키우고 가족과 거닐던 아름다운 도시 사이공은,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 주었던, 南 베트남 민초들과, 족히 100여개가 넘었던 반체제 통일단체 지지자와, 북베트남 공산당과, 북베트남 민족해방전선 인민혁명당 소속 공산당 지지자들만 남는, 남 베트남의 지도자가 도망쳐 버려 빈껍데기만 남는 무책임한 도시가 되어 갔다. 그러나 내막을 더 주의깊게 드려다 보면, 남베트남 지도부들의 탈출은 그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한 예를 들어보면. 같은해인 1975년 4월 8일. 대한민국의 부산항에서 출발한 한국 해군의 LST 810함과 815호 함이 21일 사이공 인근 붕따우 항에 도착하게 된다. 당시 주월 베트남 대사였던 해군참모총장 출신 김영관 대사의 상황 판단에 따라 우리 교민을 소개 시킬 목적으로 난민을 원조한다고 위장한체 월남에 입항한 것이다. 붕따우에서 입항허가를 기다리던 우리 LST함 두 척은 50km 떨어진 사이공 시내 사이공 New Port에 입항한다. 물론, 월남 정부에는 전쟁 난민 구호를 위한 구호물품 전달식 등을 통보하여 월남 정부에서는 우리 LST함 책임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도 한다. 이런 한편으로 김대사는 월남 정부와 막후 교섭을 벌인다. 당시 상당수가 비자없이 불법체류 상태이던 한국 교민들을 탈출시킬 방법은 예외적으로 월남 정부가 특혜를 베프는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월남 정부로부터 김대사는 뜻밖의 제안을 받게된다. 월남 정부는 김대사에게 월남 정부의 요인과 가족 500명 가량을 승선시켜 주면, 비자없이 출국 시켜준다는 내용 이었고, 김영관 대사는 이를 수락하고 실행에 옮겨 교민 소개 작전을 실행하게 된다. 1975년 4월 26일 밤의 일이다. 4월 27일 사이공 항을 북베트남 군의 포격을 받는다. 그러나, 월남에도 비겁한 지도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도망쳐버린 장군들과는 달리, 마지막 순간 까지 결사 항전하던, 월남군 제 4 군단장 '웬 꼬아' 중장, 제 2 군단장 '만 푸' 소장, 특별부대사령관 '반 토' 소장, 제 5 사단장 '레웬비' 준장, 제 7 사단장 '장 웨반 하이' 준장은 월맹 공산군과 맞서 싸우다,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장렬히 산화 한다. 국민을 지키지 못한 스스로에게 회한의 방아쇄를 당긴 것이다. 취임한지 몇일 안된 越南 대통령 "즈엉 반 민" 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현재 시간 이후 南베트남 軍은 사격을 중지하고 투항하라는 방송을 한다. 방송을 마친 " 즈엉 반 민" 대통령은 몇 명 남지 않은 각료들을 대동하고, 예의를 갖춘 정장 차림으로, 대통령 궁의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다. 예비역 대장에 재야 지도자 출신이었던 '민' 대통령은 남은 각료들과 함께 월맹군에게 정권을 넘겨주기 위한 '정권인수인계'를 할 요량 이었다. 비슷한 시각, 사이공에 진입한 북베트남 공산군 제2군단 소속 탱크 한대가 대통령 궁과 관저가 있던 '독립궁'의 닫힌 철문을 부수며 밀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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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해를 품은 상하의 도시, 호찌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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