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실패의 기록 ~ 맥스무비 객원기자 체험기 (2)

6.

정확히 그들은 3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내 말만 듣고 결정 내리기는 조심스러워 했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답장을 보내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히 생각하기로 했다... 만 한국의 영화평론가 / 기자들 중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 많이 씁쓸해 졌다. 먼저 A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가 보낸 내용의 일부다.

'...삼성같은 회사도 있고 동네 수퍼같은 회사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 좋은 지는 각자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현재 영화잡지는 씨네 21과 맥스무비, 중앙일보에서 나오는 M 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동인지들이 있지만 여길 직장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겠네요.) 어느 쪽을 선택하시건 모두 회사라는 것은 동일하죠. 충분히 검토하시고 좋은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영화에 관한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은 생활이며 취미가 아니라는 점만을 염두에 두신다면 현명한 판단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쓴 작업때문에 세금을 내야하며, 매년 종합소득세를 내는 날부터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A의 답장을 받고 처음엔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여기서 뜬금없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왜 말 해. 회사에 대한 검토가 문제가 아니라 난 지금 위에서 언급한 회사 중 하나에서 나온건데. 이 사람이 내 메일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건가. 내가 글을 제대로 못 썼나보다. 다시 질문글을 보냈다. 곧 이런 답장이 왔다.

'...회사의 경영방식에 따라 일을 하는 쪽에서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경력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노동력 제공에 대한 보상을 했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건 회사의 판단이므로 여기에 일반적인 노동가치론을 판단의 잣대를 제시하면 뭐, 아시다시피 대답은 더 간단하겠죠. 원칙과 현실이 다르다는 따분한 대답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바뀌어야 하고, 좋은 세상이 와야 하고, 노동운동을 해야 하고, 비정규직 조합이 필요하고, 등등)안타깝지만 세상 일이 이해관계 속에 놓여있군요. 만일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 고 제게 물으신다면 고전적인 정치경제학 책을 영화 책 대신 추천해 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다음 현실 안에서의 행동은 준호님의 선택입니다.'

저기까지가 A의 입장이었다. 마음 고생 심했겠다는 적당한 위로와 함께. 뒤이어 B로부터 답장이 왔다. B가 보낸 메일의 내용 일부다.

'....저는 사실 질문해주신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영화 관련 주간지나 월간지에서 일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니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어쨌든 (제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행'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쪽의 사정이나 상황에 대해선 제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준호님의 메일 내용으로만 판단한다는 전제 하에 일반적인 제 의견을 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라면 제 상식에는 어긋나는 일로 보입니다. 원고를 썼고 그 원고가 상업적으로 활용되었다면, 본인이 사양하지 않는 한, 고료는 지급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사안에서는 쓰신 기사들이 기자 트레이닝이나 선발 과정의 재료로만 활용되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실렸는지도 중요하겠죠. 후자였다면 제 판단엔 적든 많든 원고료가 지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설혹 전자라도 만일 그렇다면 처음 공고에서 미리 밝혀야 좋겠죠. 의지를 가지고 시작하신 일에서 마음이 많이 상하셨겠네요. 부디 원하시는대로 앞날이 풀려나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B가 보낸 답장은 A와 달랐다. 사실 읽으면 호감이 가는 건 B 쪽이라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답장을 보며 잠시 우울해 지기도 했다. B는 월간지나 주간지에서 일하지 않았기에.. 말하자면 이런 상황을 겪을 일이 없는 환경에서 일해왔으니 자긴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경력이 그랬다.

C는 A와 견해가 똑같았다.

저명한 평론가로 인정받는 그들, 그 중에서도 A는 '세상 일과 이해관계'를 논하고 있었다. 명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무기력한 것인가, 아니면 이런 일을 자신도 분명 겪었을텐데 바꾸려고 들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을 직접 만난다 해도 얻어낼 수 없는 대답이리라. 그에게도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었다...

7.

평론가들로부토 받은 메일들을 읽은 다음, 7월 2일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7월 3일 고용노동부에 출석했다. 고용노동부 담당관과 내가 먼저 앉아 있었고 뒤이어 맥스무비의 편집장이 쭐래쭐래 들어와 합석했다. 고용노동부로 가는 길을 걷다가 어디서 많이 본 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맥스무비 본사가 있는 곳 주변이었다. 노동부 출석할 때 해당 지역 부근의 장소로 정하게끔 거기서 유도를 했는데, 그런 거였구나 하면서 들어갔다.

사실 시작부터 불안했다. 고용노동부는 내가 내놓은 증거를 보는 둥 마는 둥 '휘휘' 들추어 보고는 책상에 탁 던지더라. 그리고 갔다 온 결과는 이랬다.

'객원 기자'는 정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

나는 허위공고가 문제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고용노동부 감독관은 공고는 원래 허위가 있을 수 있는 거라고 했다.

애초에 오리엔테이션에서 고료가 이후에 지급되는 걸 알면서도 결국 거기에 승낙을 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시각에서 보자면 나도 문제가 있다' 는 것이었다. 그걸 해결해야 하는 게 고용노동부 아니냐, 뭔 개소리냐 하고 싶었지만 그러고 보면 명확하게 모든 걸 묻지 않은 내 탓도 있기는 하다. 고용노동부의 담당관이 이렇게 말하자, 편집장이 말했다.

"그렇다. 공고를 낼 때 우리는 직원을 모집한게 아니라 객원 기자에 '지원' 하라는 거였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됐었다. 준호 씨가 이렇게 나와서 맥스무비를 포함해 일하고 있는 다른 객원기자들도 무척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원래 공고는 허위가 많으니 프리랜서들은 당사자가 계약을 잘 해야하고, 고용노동부에서는 당신같은 사람들을 보호해줄 수 없다.

마지막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혹시 다른 객원기자들도 이에 대해 반발한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은 그런 여건을 줘도 감수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당신 혼자만 이에 불만을 가지고 항의하면 정당함을 입증하기가 힘들수 있다는 이야기... 담당관이라는 사람이 진짜 나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맞는건지에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고용노동부의 한계이고 결정이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적어도 고용노동부는 저 같은 사람을 도와주는 곳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맥스무비의 편집장이 곧 내 블로그에 있는 글을 증거로 인쇄해 와서 이야기를 좀 더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내 블로그에 먼저 올렸었다. 그 뒤로 맥스무비 매거진은 한동안 내 블로그의 꾸준한 방문자가 되어주었다.

사실 고용노동부 출석 전에 수시로 들어와서 감시 겸 눈팅을 한다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봐도 뭐, 얻어낼 것도 없을텐데... 그렇게 감시 겸 눈팅을 한 이유를, 편집장은 그 날 유감없이 뽐냈다. "공고의 '지원' 이라는 글귀는 '모집' 을 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지원' 하라는 거였다"는 변명을 하면서. 우리는 그냥 문을 열어놨고 당신들은 들어왔을 뿐이니 우린 잘못이 없다. 들어온 너희가 잘못이지. 이 말을 하기 위해서...

* 모집이 아니라 '지원'이다. 순간 군대를 한 번 더 가나 싶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이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 과거에 나서서 목소리를 냈으면 잡지사 측에서 '직원 모집 공고를 낸게 아니라 지원 공고를 낸 거라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겠다고 말하면 되지 않은가' 따위의 헛소리를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편집장은 영화 저널이 번성하던 2000년대 초중반 업계 진입에 성공함으로써, 현재 영화계에서 기고나 GV, 강연등으로 이권 카르텔을 형성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분야에서 글을 쓰고 살아가려면 방법이 없었다. 이런 카르텔을 형성한 사람 밑에 들어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더라도 감지덕지하며 살아가는 것 밖에는. 이런 사람들이 영화잡지에서 '갑'을 논하며 젊은 사람들의 진을 빼먹고 있는 것이다. 목소리를 내지 못한 사람들을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객원 기자'는 정직원이 아닌지라 고용노동부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결론났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 서로 간의 대화는 1시간 30분 만에 끝이 났으며, 편집장은 떠났고 나는 많이 아쉬웠다.

8.

고용노동부에게 의문이 들었다. 고작 이 얘기를 해줄 거였다면 나 보고 왜 올라오라고 했을까. 객원기자가 고용노동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다면 맥스무비 측에서 편집장을 부르건, 내가 오건 결과는 결국 똑같지 않은가. 왜 그랬나 알아보려고 은근슬쩍 떠 보는 말을 했다. "저 이거 출석하려고 경산에서 올라왔어요." 라고.

고용노동부 담당관의 말은 이랬다. "아. 경산에서 올라온 거였어요?"

증거 자료고 사는 곳이고 뭐고 다 냈는데, 순간 '아. 이 사람이 뭐 제대로 읽은 게 없구나. 어디서 올라왔는지 다 적어놓고 여러번 말했는데.' 란 생각이 들었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하고 싶었지만, 어쩌겠나. 고용노동부에서 판정하는 시간이 다 끝났고, 출석한 내가 고용노동부를 평가하고 판정할 수는 없는 것을...

글을 쓴 내 몫은 받지 못했다. 사실 받지 못했다고 해서 당장 길거리에 나앉거나 하는 건 아니었기에 지금 이렇게 살고는 있지만, 많이 원망스럽고 아쉬웠다. 나는 이런 내용의 글을 블로그에 먼저 남겼다. 편집장을 비롯해서 거기서 객원기자들을 가르쳤던 사수 기자들은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이걸 맥스무비 매거진 측에서 본 것 같기는 하다. 고용노동부에 출석한 이후인 7월 9일에 블로그 안부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9.

이후 사수 기자들 중 한 사람인 박XX 기자가 글을 남겼다. 내 사수 기자와는 다른 사람이며, 블로그에 써 놓은 어떤 문장을 보고 눈물이 돌아 남겼다고 한다. 그 문장이 아마 내가 블로그에다 '그렇게 살지 마라'고 남긴 부분이었단다.

그 기자와 나의 관계는 무척 얕다. 내가 맥스무비 매거진 객원기자에 관련하여 화상 면접을 볼 때 한 번 보고, 그 놈의 객원기자 트레이닝을 받을 때 카카오톡에서 얘기 몇 번 한 정도(?) 그의 안부게시글은 '후배가 없는 선배의 조금 긴 넋두리' 로 채워져 있었다.

도대체 자기 넋두리를 왜, 자기가 다니는 잡지 때문에 고통스러워 한 사람의 블로그에다 남기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이려 드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글을 써서 무급으로 트레이닝 기사를 쓰게 만든 회사의 마음을 이해시키고 싶었나 보다. 내용의 일부가 이런 식이었다.

'... 기자가 쓰는 문장에는 블로그에 나만의 감상을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책임이 따릅니다. 누군가 맥스무비, 그게 무슨 영화잡지야, 그냥 이제는 한물간 예매사이트 아니냐, 그 옛날 키노나 필름 2.0이 진짜 영화잡지였지. '어 요새 씨네21 이상하게 바뀌었어' 그런 기사는 나도 쓰겠다. 독자들에게 아무리 욕을 먹어도 내 이름 달고 나가는 기사의 모든 문장을 오롯이 책임지고 내가 사랑하는 영화를 위해 한 번이라도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서 밤을 지새는 누군가의 노력이 있는 것이죠.

맥스무비에 첫 입사한 날부터 거의 이틀 동안 잠을 못 잤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써야 할 단신기사가 너무 부담이 되어서였어요. 영화에 누가 될까봐 내 미천한 문장력이 바닥을 드러낼까봐 지금도 저는 단신 기사가 너무 어렵습니다.

영화 잡지라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이 걸린 결과물이라는 것을 그래도 이렇게라도 한 번은 꼭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영화 기자가 되고 싶다면 더 많이 보고 정말 더 많이 쓰셔야 합니다.'

그의 안부글을 보고 혼자서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생각을 했다. 그를 비롯해서 '그들'은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단신 기사를 잘 쓸 수 있도록 가르쳐 줬으니 급여를 주지 않는 것은 정당하다' 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기자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가 허위 공고로 사람들을 채용하고, 그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지원하라고 했다. 그들을 채용한 적 없다' 고 말했으며, 돈도 주지 않고 기사를 쓰게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비록 한 '정규직' 기자의 글에 불과하지만, 여기서 이 잡지는 자기들이 지금도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자신의 회사에 대한 알량한 '애사심'이 있는 개인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둘 중 어떤 이유이건 나는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났다.

설사 개인의 마음이라 할지라도 정규로 입사하여 일 하는 사람이 허위 공고에 해당 매거진 편집장의 생각으로 따지면 '지원했지, 우리가 채용한 것도 아닌' 객원 기자, 그렇게 일을 했던 사람의 사정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모르면 차라리 말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알고 있었다면 (전) 객원 기자의 블로그에 와서 정규직 기자의 넋두리를 올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10.

고용노동부를 나와서 포기를 한 건 아니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알아보니 고용노동부에서 안 되면 법률구조공단이라도 찾아가 보는 게 낫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민사를 가야한다면,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을 받고 무료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보니 고용노동부 주변에 맥스무비 매거진 본사가 있고, 거기서 좀 더 진득허니 걸어가면 법원이 있다고 했다. 법원 옆엔 법률구조공단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법원 건물 옆에 조그마한.. 한 3~4층짜리 빌딩이던가? 가볼만 하겠다 싶어 거기서 상담을 받았다. 나 스스로 글값을 받아내기 위해 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법률구조공단의 상담원은 회의적이었다. 동시에 사무적이었다. 항상 입에서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그들은 '사전에 먼저 고료 없이 일을 시키겠다고 말을 했으며, 내가 응했기 때문에 재판에서 확실히 승소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고 얘기했다. 그 확실함이 없으면 자신들은 나서지 않는다' 고 말해줬다. 결국 나는 법률구조공단 상담을 중단했다. 일어서는 나에게 상담원은 웃으며 말했다.

* 뭔가 확실히 자신과는 상관 없다는 듯한 태도

"저희가 원래 전화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상담을 길게 해드리지 않아요. 고객님은 상담을 30분 정도 하셨는데, 제가 특별히 많이 해드린 거에요."

...그래. 고생했다. 나는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좌석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얼마나 멍하니 앉아 있었으면, 시간이 흐르고 흘러 거기 문 닫을 때까지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나가지 않자 법률구조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군수군 댔다.

저 사람 뭐야. 왜 안 나가? 뭔 일 있었어? 모르겠어요. 상담 받고 난 뒤부터 나가질 않아요. 가서 쫓아낼까, 나가라고? 아니 아니. 그러지 마요. 이상한 사람 같아. 그들이 날 내보내기 위해 문 닫고 나가려는 시늉을 하는 걸 보고 나서야 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용노동부에 출석하여 하루만 있다가려고 했던 서울은, 어쩌다 보니 친구의 자취방에 신세를 지게 되면서 7월 10일까지 있게 됐다.

11.

난 7월 11일, 해가 질 때 쯤에 대구로 돌아와 경산에 최종적으로 도착했다. 대학교를 그 쪽에 다녀서 자취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취방 계약기간이 끝나가기 때문에 직접 짐을 조금씩 빼려고 내린 것이었다. (이걸 처음 쓸 때는 당연히 거기 있었는데, 지금은 포항에 내려와 있다.)

7월이니 한창 더울 때였다. 타들어 갈 것 같은 더위 때문에 저는 가방에 무거운 짐을 담은 채로 걸어가다 잠시 햇빛을 봤다. 잠시동안 스스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걔는 태양을 봐서 헤까닥 돌아가지고 권총으로 쏘고 그러던데... 난 생각은 많이 했지만 차마 그걸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이기도 하고, 법은 나 같은 사람의 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돌아와서 바로 나체로 침대에 엎어졌다. 깨어보니 그 다음날 아침 7시 40분이었고, 나는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내년이면 대학 졸업인데.. 잠시 머리가 백지 상태가 됐고,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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