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9.14

먹는 일은 단순하다. 먹은 것이 입 속에서, 이빨 아래서 발버둥치지 않는다. 천천히 어슬렁거리며 산책하는 것도 그만큼이나 단순하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없고, 배가 비어있지 않을 때 계속 걷고 싶어진다. 고개를 땅에 쳐박고 걷고 싶어진다. 얕잡아 보일까봐 허리를 쫙 펴고 온몸을 긴장하며 걷는

나 자신이 우스꽝스럽다. 우리는 몸의 하숙인이다. 하도 오래 렌트해서 살다보니 자기 집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걷고 싶을 때 걷고 오른팔을 들어 올리고 싶을 땐 즉각 들어올려지니까 마치 자기 맘대로인 것 같지만, 그건 몸이 우리의 의지가 별 대수롭지 않은 어리광쯤으로 여겨져서 눈감아준 것에 불과하다. 대신 심장을 멈춘다거나, 깊은 물에 뛰어들지 않고 숨을 멈추고 죽으려고 해보자. 뜻대로 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완고한 주인님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즉 '나'는 있다. 있긴 있는데, 구경꾼이며 우연히 집을 물려받은 세입자로서의 '나'만 존재한다. 지겹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오래동안 지겨웠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제 자리에 있는 것은 머저리같아 보인다. 머저리같아 보인다는 건 남의 눈을 통해 상상한 것이다. '나' 일반은 남의 눈을 상상하는 구조속에 들어앉아있다. 그 '남'을 '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 국가적으로 인가받은 정신병이라는 사람도 있고 단순 이데올로기라는 사람도 있으며 돈호법의 시학을 위한 멋스러운 포즈 받침이자 염가 장신구라는 사람도 있다. 타인과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것은 세상과 함께 평탄해지겠다는 각오를 뜻한다. 내가 어떠한 像을 내세우면 그 상은 반드시 깨어지게 되어 있다. 상을 내세운다는 것은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묶어세우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작문에선 그것을 요약이라고 하고 철학에선 그것을 개념이라고 부른다. 내가 세상에서 30에서 50cm 정도 높은 박스 단상 위에 서있는 것처럼 쾌적하고 우스꽝스럽다. 오케스트라는 보이지 않는다. 쾌적하고 우스꽝스럽다고 쓰니까 문득 서있는 남의 피사체를 관찰하는 것 같다. 쾌적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은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곳은 벌판. 여분의 공터이다. 쾌적하고 우스꽝스럽다. 곧 어둠 속으로 묻혀 사라질 잡초들이 듣고 있다. 세상에서 쓰여지는 모든 시는 나 자신을 향해, 유일한 그 순간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고서는 안된다.

홍수의 세계를 둥둥 떠다녀서도 안되고, 객관적으로 관찰되어서도 안된다. 죽음은 숫기없고 쉽게 얼굴 빨개지는 부끄러운 자들을 위한 도피처다. 그래서 엄청나게 거대할 것 같지만, 어디서도 끝내 보이진 않는다.

thundercat song for the dead http://youtu.be/BOAkaZPCn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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