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Viewing]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심리학에는 고전적 조건형성이라는 학습이론이 있다. 이것은 파블로프의 개라는 실험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이론이 강조한 것은 무조건 자극(종소리)과 조건적 자극(먹이)의 연계적 강화conditioning 를 통한 반응(개의 생물학적 반응)의 학습이다. 하지만 학습을 멈추었을 때 일어나는 결과가 더 재미있다. 학습이 중단되면 자극에 대한 반응의 강도가 점차 줄어드는 ‘소거’가 이루어진다. 종소리만 들어도 반응하던 개의 생물학적 리액션이, 소거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더 이상의 반응을 나타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소거 직전의 단계이다. 소거 직전의 단계에서, 학습된 자극에 대한 대상의 반응은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지난 여름밤들은 시원하기보다는 서늘했다. 그 즈음엔 신촌의 거리 한 복판에서 종종 달을 보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번잡한 거리 한 가운데에도 달이 뜨다니’라고 신기해했다. 사실 달은 어디에도 뜰 텐데... 어쩌면 내가 놀라웠던 건 내 머리 위로 떠있는 달이 아니라, 사람멀미가 나던 그 곳에서조차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내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즈음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네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애꿎은 종이 위에 동그라미만 주구장창 그리곤 했다. 밤이 되면 그것들은 거대한 행성으로 변해 내 꿈에 나타나곤 했는데, 때문에 나는 꿈속에서 자주 무중력상태에 시달려야 했다. 내 몸 하나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 그런 하염없는 불확정성 속의 상태에서 나는 발을 구르거나 팔을 크게 휘둘러야했고 그제야 꿈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꿈결을 박차고 내가 돌아온 곳은, 네가 있는 지구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눈을 감은 내 앞으로 네 얼굴이 선명하게,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심지어 우리가 연인이 되던 그 날 “넌 이제~ 끝났어!”라며 눈을 맞추고 예쁘게 웃던 그 표정이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랐지만 결코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몰입했다. 너는 때때로 웃었고, 무심하게 나를 바라보았고, 힘들어 했고, 외면했다. 이 모든 너의 얼굴이 차례대로 선명하게 떠올라 나는 그저 신기했다. 그 전까지는 안개 속에 가려져있던 얼굴이, 만나는 동안에도 돌아서면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대’라는 친구의 말을 곱씹게 했던 그 얼굴이, 아무리 보고 싶어도 떠오르지 않아 나를 끙끙거리게 했던 네 얼굴이 비로소 선명해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동그라미 그리는 걸 멈추었다. 아니 어쩌면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아졌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어쩌면 너는 이제야 내게서 ‘소거’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워진다는 것. 잊어간다는 것. 더 이상 ‘의미를 가졌었던’ 자극에 그 어떤 반응도 할 수 없다는 것. 쓸쓸한 것. 하지만 나는 아마도, 평생 종소리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으니까. 그것이 흉터이든 상처이든 나는 아마 그 자리를 오래오래 쓸어내리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학습은 어떤 식으로든 기억을 남길테니까. 네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은 오래오래 추억으로 남을 테니까. 머리로 배운 것과 마음으로 배운 것은 다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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