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백]‘개념 아이돌’ 수지가 사랑한 공정무역 “어디까지 사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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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축구공은 즐거운 놀잇감이지만, 누군가에게 축구공은 치열한 삶 자체이기도 하다.’

1996년 라이프지에 실렸던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인들을 경악시켰습니다. 열두 살밖에 안된 파키스탄 소년이 작은 손으로 나이키 축구공을 꿰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해서 소년이 받는 돈은 시간 당 겨우 6센트. 축구공을 차며 꿈을 키워야 할 소년의 손이 하나의 축구공을 완성하기 위해 무려 650여 번의 바느질을 하면서 수없이 바늘에 찔려 망가진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보도가 나간 이후 나이키는 전 세계적인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죠. 국제축구협회(FIFA)도 국제적인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어린이 노동력을 이용해 제작된 축구공은 사용하지 않겠다며 자율규제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공정무역’이란 용어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이때부터라고 합니다. 공정무역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상호 간에 동등한 무역혜택이 이루어지는 교역’입니다. 하지만 국가 간의 공정성보다는 선진국의 국민들이 윤리적 소비운동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살 때 품질과 가격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착취나 인권유린, 저임금과 같은 불공정행위가 없는 작업환경에서 생산된 제품인지도 살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덕분에 생산자들은 노동의 대가가 공정하게 지불되는 일자리를 제공받아 자립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미래를 위한 희망과 자부심을 가지게 되면서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한마디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정무역의 목적입니다. 이 때문에 공정무역은 ‘착한 소비’로 확장되고 있고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기업은 ‘착한 기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커피 판매가 중 생산자 몫이 겨우 1%?

공정무역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0년대 미국·유럽이라고 합니다. 직접 제품 생산에 기여한 이들이 가져야 할 몫을 다국적기업들이 가로채고 있다는 인식이 나타나면서 이들 기업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에서 전개됐죠.

공정무역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커피였습니다. 커피는 전 세계에서 하루 25억 잔이나 소비되고 있는 음료입니다. 한 해에 600억 달러나 거래되고 있어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습니다. 물론 이 통계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커피는 케냐, 우간다 같은 아프리카나 브라질, 콜롬비아 같은 남미 국가, 인도네시아나 네팔 같은 아시아 등에서 생산됩니다. 커피콩을 생산하는 농부들은 커피 45잔을 만들 수 있는 원두 450g을 겨우 580원을 받고 팝니다.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내는 돈 가운데 농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0.5퍼센트에 불과한 셈이죠. 이 때문에 커피 경작 농민들의 1년 수입은 대략 7만2000원 밖에 안됩니다. 나머지 99퍼센트의 돈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인 가공업자와 판매업자, 중간상인이 차지합니다. 석유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작물인데도 생산자들이 받는 수입은 너무 보잘 것 없는 셈이죠. 이 때문에 커피생산에도 어린이들의 노동이 동원됩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경우 커피 생산 인구의 3분의 1이 아동이라고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의 시민단체에서는 커피를 재배한 생산자들에게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커피를 구입하여 팔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5년쯤 전부터 YMCA, 아름다운 가게 같은 단체에서 일반 커피보다 두세 배의 가격으로 농민들에게 원두를 구입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의 선물’ 이나 ‘피스 커피’ ‘빈트리’ 등이 대표적입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이용하는 것은 생산자들만 돕는 일이 아닙니다. 커피 생산자들은 많이 팔아야만 이익이 남는 거래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커피 농사를 짓습니다. 공정무역 덕분에 품질좋은 커피를 생산한다는 이야기죠. 공정무역 커피를 이용하는 것은 생산자와 지구 환경을 살리고 소비자들도 보람과 품질 좋은 맛을 즐기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착한 커피’로 부를 만하죠.

커피에서 시작한 공정무역은 초콜릿·설탕·바나나 등 농산품은 물론 청바지, 수공예품 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공정무역의 세계 규모는 7조4000억 달러(약 8734조9600억원)로 전년보다 15% 상승했습니다. 특히 한국은 51억 달러(약 6조200억원)로 92%나 성장했죠.

공정무역을 더욱 확산시키기 위한 세계공정무역상표기구(FLO : Fairtrade Labelling Organization International)도 등장했습니다. 공정무역 제품의 표준, 규격 설정, 생산자 단체 지원 등의 업무를 관장하고 공정무역제품에 공정무역 인증마크를 부여합니다.

또 국제공정무역기구(IFAT : International Fair Trade Association)는 매년 5월 둘째 주를 '세계 공정무역의 날(World Fair Trade Day)'로 지정하여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2002년 아름다운가게가 최초로 공정무역운동을 시작한 이후, 2005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국내에서 공정무역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단체는 아름다운가게를 비롯해 에코생활협동조합, 두레생활협동조합, 한국YMCA, iCOOP생협연합회,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등 10여 개 단체가 있습니다.

▼공정무역의 10가지 원칙

● 경제적으로 소외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자리 제공

● 투명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생산자와 수입자간의 동등한 관계 확립

● 직거래를 통해 판매가의 15~30%를 생산자 이윤으로 보장

● 생산자들의 성장 및 발전을 위한 다양하고 지속적인 지원

●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가격을 지불. 고용과 급여에 있어 남녀동등 대우

● 주문과 동시에 대금 선 지급을 통해 생산자 단체의 재정을 안정되게 지원

● 어린이 노동 반대와 건강한 노동 환경 제공

● 환경 친화적인 상품 제조방식과 자연원료를 통한 환경 보호

● 자연과 인간을 우선하는 대안무역 활동 지지 및 홍보 활동

◆위안부 할머니가 만든 공정무역 아시나요

공정무역으로 유명해진 브랜드도 많습니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탐스슈즈(TOMS Shoes)는 미국 청년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다 맨발로 다니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신발을 전달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06년 창업한 회사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기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꾸준히 신발을 공급할 수 있는 ‘원플러스 원’이라는 기발한 방안을 마련했죠. 소비자가 신발 한 켤레를 사면 다른 한 켤레를 제3세계의 신발 없는 아이들에게 기부하는 방식입니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사회에 지속적인 도움을 주는 착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샌들을 사면 우간다 여학생을 대학에 보낸다’는 슬로건을 내건 세이코 디자인(sseko designs·ssekodesigns.com)도 있습니다. 자원봉사를 위해 찾았던 우간다에서 여성들이 착취를 목격했던 리즈 보하논은 기부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고 우간다 여성들을 위한 샌들을 디자인하기로 합니다. 우간다 여성들을 직접 고용해 샌들을 만들고 샌들을 팔아 번 수입금으로 등록금을 마련해주는 것이죠. 이젠 샌들뿐만 아니라 스쿨백까지 만들어 우간다 여성들에게 꿈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국민 첫사랑’ 수지의 휴대전화 케이스로 유명해진 국내 브랜드 ‘마리몬드’도 있습니다. 휴대전화 케이스는 물론 티셔츠 에코백 등 다양한 제품군을 갖춘 마리몬드의 특징은 제품의 모든 문양이나 디자인 속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작품이 녹아 있다는 점입니다. 수익금 일부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후원금, 유엔인권회의 참가 경비 등에 쓰이고 있죠. 수지가 사용했던 휴대전화 케이스의 화사한 꽃문양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미술치료를 받으며 그렸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덕분에 수지를 ‘개념 연예인’이라며 칭송하는 글이 한때 인터넷을 뒤덮기도 했습니다.

◆자유여행보다는 공정여행으로

최근에는 ‘공정여행’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공정여행은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이득을 현지인들에게 돌려주며 모든 이의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여행을 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즐거움과 안락을 위해 자연과 사람을 파괴하고 괴롭히는 여행이 아닌, 사람 들과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누고, 서로 배우고 더불어 성장하는 여행의 태도와 여행의 방식을 뜻합니다.

공정여행은 반드시 여행상품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아직 제대로 된 공정여행 상품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즐기러 가는 여행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러 떠난다는 상품은 만들어도 팔리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자유여행에서 ‘공정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정여행을 실천하기 위한 행동수칙도 있다고 합니다.

① 현지의 물가를 존중하여 너무 과도한 흥정은 행하지 않는다.

② 현지 어린이들에게 과도한 선물이나 돈을 주지 않는다.

③ 간단한 현지어 몇 마디는 미리 배워서 친밀감을 표현한다.

④ 사진촬영, 특히 인물사진은 반드시 동의를 구하고 촬영한다.

⑤ 문화재는 물론 지역기물에도 낙서나 파손행위를 절대 하지 않는다

⑥ 복장, 예절 등에 있어서도 그 나라 문화적 특색을 존중하고 따른다.

◆공정무역 마크만 붙여도 더 맛있다?

그런데 공정무역이 이처럼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요. ‘행동 뇌과학 프론티어즈(Frontiers in Behavioral Neuroscience)’라는 학술지에 재미난 내용이 실렸습니다. 소비자들은 공정무역 로고가 붙어있는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더 지불할 의향이 있는 가격의 상한선을 물어본 결과 30%로 나타났습니다. 일반 브랜드 유사제품의 가격의 30%까지는 더 얹어주더라도 공정무역 제품을 사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죠.

과학 전문매체 피지스오르그의 실험도 재미있습니다. 실험참가자에게 공정무역 로고가 붙은 바나나와 로고가 붙지 않은 바나나를 주고 어느 쪽이 더 맛있는지를 물은 결과, 공정무역 로고가 붙은 바나나를 선택한 사람이 80%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실험참가들이 먹은 바나나는 모두 같은 것이었습니다. 공정무역 로고만 붙여도 소비자들은 더 맛있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죠.

◆다국적 기업 마케팅 상술에 속지 않아야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작용도 생기고 있습니다. 마케팅 효과를 노리고 공정무역에 기웃거리는 대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거죠. 특히 미국 등에서는 공정무역 인증제도가 도입되면서 다국적기업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으로 유명해진 독일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오토그룹 경우에는 일부 옷과 가방을 노동착취가 심한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납품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역풍을 맞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직접 몸으로 느끼며 취재해 책으로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를 쓴 코너 우드먼이 주인공입니다. 우드먼은 공정무역 인증표시가 있는 커피에는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줍니다’라는 문구가 있지만 “내가 이 커피를 사 먹는다고 정말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들이 잘살게 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중국, 아프가니스탄, 콩고, 니카라과 등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 9개국을 누비며 공정무역 과정을 역으로 추적했습니다. 목숨을 건 여정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자본주의의 가장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이었습니다.

우드먼은 고급레스토랑에서 파는 바닷가재를 찾아 나카라과 해안의 잠수부들을 만나고, 아이폰의 생산과정을 역추적해 중국의 폭스콘 공장을 거쳐 콩고의 광산까지 도달했습니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인 소비를 자신의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공정 무역을 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세계 2위의 식품회사 크래프트 푸드의 자회사 캐드버리가 정작 사회 부담금으로 지급하는 비용은 초콜릿 1개당 2원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윤리적 소비’의 가면을 쓴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온몸으로 느낀 것입니다.

우드먼은 “대기업은 스스로 착해지지 않는다”며 “소비자들이 현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현명한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기업도 윤리적으로 변하고 생산자들을 공정하게 대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맨 처음 소개드렸던 축구공은 어찌 됐을까요. 공정무역 축구공이 등장해 전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얼굴있는 거래’라는 업체에서 만든 공정무역 축구공 역시 파키스탄에서 생산되지만 아동 노동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15%의 프리미엄을 지불해 생산자들에게 깨끗한 식수와 이동 진료소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혹시 비싸지는 않을까요. 11번가, 옥션 등에서 판매되는 공정무역 축구공의 가격은 1만2000원입니다. ‘fair trade’란 예쁜 마크도 달려있죠. 특히 이 축구공을 구매하면 파카스탄 어린이들이 공장이 아닌 학교로 갈수 있다는 설명도 있네요. 하지만 이 축구공을 판매하는 업체에 따르면 공정무역 축구공은 전체 판매의 3%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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