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레옹의 직업이 왜 'Cleaner'인지 알 수 없다. 영화는 그가 이탈리아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계기로 인해 살인청부업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는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끼니가 되면 배가 고프듯, 레옹은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일 아침마다 마시는 우유 한 잔에 그는 속죄를, 순수성을 연명한다.
생기 없는 그의 삶에 문을 두드린 마틸다. 사랑을 따듯한 배로 느끼는 작은 체구의 소녀는 레옹의 강박적인 삶에 조금씩 변화를 일으킨다. 작은 균열이 큰 지진을 일으키듯 조그마한 마틸다는 레옹의 삶을 뒤흔든다.
그들은 사랑일까. 어리숙한 레옹과 비련의 마틸다는 사랑을 알긴 알았을까.
살아감의 이유 없이 삶을 살았다는 레옹에게 사랑으로 이유를 알려준 마틸다. 그랬기에 레옹은 마틸다를 위해 세상을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수시로 찾아오지만 몇몇 사람에게 사랑은 일생에 단 한 번만 오기도 한다. 우리가 레옹을 마음 아파하는 이유는, 영화가 끝나도 쉽사리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태어나 처음 찾아온 사랑을 고백한 레옹이 그 후로 다시는 마틸다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레옹은 태어나 처음으로 현기증을 느낀 사랑의 고백에 마틸다를 지켰다. 아마 마틸다도 학교 앞 잔디에 뿌리 내린 레옹과 오래도록 살 것이다. 자신의 방법대로 그를 지키며.
어느 것 하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요소가 영화를 덕지덕지 도배하고 있어도. 우리가 이 영화를 비하하거나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화의 본질이 사랑을 말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 예외가 없다. 그런 인간이 누군가를 나보다 더 사랑하며 목숨까지 바치는 까닭은 사랑의 대상이 나의 공허하며 연약한 결핍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채워줌으로써 비로소 내가 나를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사랑이라 이름 붙은 레옹의 착각이 영원히 깨어지지 않음이 그의 구원이라고 생각된다.
눈을 감으면. 레옹과 마틸다를 육체란 껍데기가 아닌 영혼의 눈으로 보면. 우유처럼 순결하고 피보다 진한 그들의 사랑이 맡아질 것이다. 서로에게 처음이자 유일했던 존재라는 뜨거움이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