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 나한테도 10년 넘게 만나는 친구가 있던가 생각해 보았더니 신기하게도 꽤 있었다. 이젠 더이상 후배라고 할 수 없는 20년 지기 K, 대학에서 만나 지금까지 쭉 손을 놓지 않고 있었던 J와 K, 회사 동료로 만나서 이직한 뒤에도 변함없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J, 선배이면서 후원자처럼 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는 대학선배 K, 엠파스 블로그 시절부터 친구이자 형인 L, 또 다른 친구인 P.... 막상 세어보니 그 숫자가 적지 않다. 거기다 10년은 채우지 못했지만, K그룹사 시절 직장동료였다가 어느덧 친구가 된 H, 전주와 서울, 다시 전주를 오가는 동안 늘 따뜻한 동료였던 후배 P, 지금도 밤 새는 줄 모르고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는 NAL 식구들까지 꼽자면 내가, 심심해질 때는 있었어도, 외로웠던 때는 참 드물었구나 생각된다. 지금도 상당부분, 나는 그들의 호의에 기대, 사회 생활의 미숙함을 그럭저럭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인복(人福)은 여전히 내 가장 큰 재산이다. ** 반면 오랫동안 만났지만, 그 만남이 아주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가벼운 안부 정도에 그친 채 애매한 이름으로 남아버린 사람들도 몇 있다. 그것도 살펴보자면, 거의 상대방의 호의에 기대, 그쪽에서 청한 모임에 나가 술 몇 잔 얻어먹고 돌아오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한편 신기하기도 하다. 의례적인 인간관계에는 야멸차고 때로는 그런 일이 귀찮아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하는 내가, 이렇게 일방적인 관계를 몇 년이나 지속하게 되었을까.속내를 나눈 것도 아니고, 의견을 다투지도 않으며, 내 쪽에서는 전화 걸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이 묘한 관계를. 한 번 쯤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왜 굳이 만나자는거야? 이런 만남이 너는 정말 소중하니?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을까? 몇 년에 한 번 씩, 명목뿐인 관계를 대청소하듯이 꾸준히 '청산'해온 나에게도 여지껏 남아있는 미적지근한 관계들은 미스터리다. 아니, 이제 다시 한 번 털어낼 때가 된 것일지. 함께 만나온 시간이 관계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가장 큰 기준은 아니다. 횟수나 빈도와는 상관없이, 오직 교류의 '온도'만이 유일한 요건이다. *** 가짜에서, 허례에서 진심을 구하지 말자. 그건 이미 부도난 계좌이므로. 예금이든 적금이든 넣어둔 게 있어야 만기에 찾을 수 있는 거다. 나는 주식도, 도박도 안 하는 고지식한 인간. 우정에 있어서도 그건 마찬가지. **** 그렇듯,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 통장, 어떤 이유로든 사용하지 않게 된 계좌를 다시 살리는 일도 없다. 지나간 일은, 그저 지나간 일일 뿐. 후회라는 낱말에 나만큼 완강하게 저항하는 사람도 없을 거다. 내 모든 과거는 그저 대과거, 과거완료일뿐. 내 관계는 모두 현재형일뿐. ***** 그래도 가능성을 가둘 필요는 없는 거라고, 누군가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건 세계관의 차이에요. 나는 과거에서 미래를 찾지 않아요. 내게 중요한 과거란, 오직 현재와 연결되어 있는 과거, 내가 붙잡고 있는 관계인 것이니까. 나는 앨범 따위를 간직하는 사람이 아닌걸요. 현존이야말로 내 현재이며 미래, 그리고 과거인 것이죠. 나는 추억보다는 기억, 골방에서 혼자 떠올리는 온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서로 이름을 부르는 즉물성을 선호해요. ****** 여기에는 사실 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옵니다만, 걔중 어떤 이들은 나와 '끊어진' 사람들이고 그들이 여기서 찾으려는 것은, 사실 더이상 나와는 상관없어진 것들이지요. 하지만 이곳은 내 현재가, 그러니까 그들과는 무관해진 내 삶만이 있는 자리에요. 당신들의 행복을 내게서 찾지 말고 스스로 찾으시길 바래요. 방문은 그저 습관일 뿐, 애착도 그리움도 아니랍니다. ******* 이제 나도 내 삶에 몰두할 시간. 내가 바라는 것은, 내 삶이 계속 변태하는 것, 거듭해서 허물을 벗고 스스로 보기에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것뿐. 시간만 있고 기회가 없거나, 기회가 있고 시간이 없거나 기회와 시간이 모두 결핍된 그런 불운에서 자유롭다면, 이제 부딪혀 볼 때이겠지. 생각과 마음은 늘 '거기'에 닿아있으니까. ******** 삶이 재편된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 어쩌면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 큰 쾌락.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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