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당항포 대첩 뒤에는 기생의 활약이?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할 뜻을 품었던 왜군은 남해안 지형을 사전 조사하기 위해 승려로 가장한 첩자를 조선으로 보냅니다. 몇 달간의 조사 끝에 지도가 완성되자 첩자는 조금 쉬어가고자 고성의 옛 무학동 무기정 기생집에 들렀는데요.

그곳에는 기생 월이가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월이의 품에서 잠이 든 첩자와 그의 가슴팍에서 비단보를 발견한 월이, 그녀는 남자가 일본의 첩자임을 눈치챕니다.

'비록 기생의 몸이지만 내가 태어난 조국이요. 부모의 얼이 묻혀 있는 곳이 아닌가?'

첩자를 그대로 보낼 수 없었던 월이는 그를 유혹해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남자가 잠든 사이 그가 사용하던 붓을 찾아 든 월이는 당항만이 바다로 이어진 것처럼 정교하게 가짜 길을 그려넣죠.

▲ 월이가 그려넣은 뱃길

시간이 흘러 임진년 6월5일,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당항포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전투를 벌입니다. 이순신의 뛰어난 전략에 밀린 일본군은 바다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지도에 표시된 바닷길을 찾을 수 없었죠. 월이가 그린 가짜 바닷길이였으니까요. 퇴로가 막힌 일본군은 결국 전멸합니다.

월이가 그린 지도를 따라 간 왜장은 '속았다'며 분개 했고 당항포 앞바다는 속은 갯가라는 뜻의 '속싯개'라는 지명이 붙었습니다. 당시 왜선은 산산조각이 났고 물 위에 떠오른 왜적의 머리 수백 두가 썰물에 밀려 소포쪽으로 밀려올 정도였다네요. 안타깝게도 당항포 대첩 승리의 숨은 공신이었던 월이는 지상으로 공격해 온 왜군에게 붙잡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논개에 가렸던 월이의 충절은 420여 년이 지나서야 고성지역 향토시인이자 작가인 정해룡 선생에 의해 재조명됩니다.

"논개는 적장 하나만 안고 죽었으나 월이는 왜적의 함대 26척과 3천여 명의 적 수군을 대파한 일등 공신이다"

고성군은 월이 이야기를 담은 고증자료, 소개글 그리고 8분여 분짜리 영상물까지 별도 제작해 당항포관광지 내 전승기념관을 꾸몄습니다. 기생 월이의 이야기는 아직 역사적 고증이 더 필요한 부분이고 설화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월이의 존재를 알리고 연구하며 고증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만큼 우리도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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