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들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어서, 바로 그래서 허영이겠지만 타인과 가끔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내게서 또는 그들에게서 상상하지 못했던 희한한 허영들이 속속 드러나는 것을 본다. 여행,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자동차, 콘도가 되어버린 사람들. 속초처럼 고속버스 타면 바로 해수욕장 앞에서 내려주고 방파제 바로 앞 민박들의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데도 굳이 산자락에 붙어있는 길찾기도 힘든 콘도에 바락바락 묵겠다는 것은 왜일까. 차 몰고 온 덕분에 회 먹으러 가서는 운전자는 술 한 잔도 입에 댈 수 없는데. 신혼여행 하면 무조건 해외, 그것도 이젠 호주, 유럽을 떠올리는 사람들. 서로 직장다니는 게 뻔한 처지에 10일씩 어떻게 여행을 떠나겠다는 것인지. 거의 사흘을 비행기에서 몸을 꾸부린 채 시차적응과 정반대의 날씨에 시달리면서 가보지도 않은 동남아와 제주도에 대한 편견을 상식화하는 이유는 다른 게 있을까. 문학을 서열화해서, 하루키보다는 톨스토이, 은희경보다는 조정래, 유하보다는 이성복을, 잡지 등단보다는 신춘문예를 원하는 사람들. 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를 줄세우고 점수를 매기겠다는 것인지. 기껏해야 자신의 느낌뿐인 비교틀을 '수상작'과 '언론'에 기대 공식화하려는 수작을 듣고 있노라면 귀를 씻고 싶다.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꼭 어딘가의, 사람이 적고 음식이 그럴듯하며 무드가 좋은 이름난 그 까페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지독한 서울에서 '부가가치의 환상'을 벗겨내면 그 어디가 툭터진 바깥만한 장소가 있을까. 고르고 고른 옷과 액세서리, 보충된 지갑과 연습한 몸짓은 피할 수 없는 사랑의 첫 관문이어야 할까. 밥 한 끼를 먹어도 부하직원하고는 다른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 그 생각이 도대체 얼마나 오래전부터 뿌리내려온 내재된 '계급적 차별'인 것을 알고 있을까. 남은 괜찮지만 나는 안된다는 생각, 그 생각이 바로 '예의'와 '존중'과는 가장 먼 지점에 있다는 걸 왜 모르는걸까. 자신에 가장 냉정한 듯 보이지만 실은 가장 빨리 자위하는 부류들. 전 직장 사장을 만나면서 재확인하다. 옳은 지적을 들었을 때조차 먼저 발끈하고, 자신의 화를 풀고 나서야 남의 말을 듣기시작하는 족속들. 자존심이라는 이유로 스스로에게조차 정직하지 못한 부류들.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않으면 마지막 단추를 꿸 곳이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왜 나는 거기 들어있는 것일까. 허영들.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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