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인터뷰] 여성 노숙인들의 친정 엄마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이곳에 여성 노숙인들이 함께 생활하는 ‘열린여성센터’가 있다.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곳.그들의 보금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정화 소장과 김진미 국장을 만났다.

‘노동상담소’에서의 인연

‘열린여성센터’의 시작을 함께

-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나셨어요? 김) 처음 만난 건 1988년도에요. ‘노동상담소’라는 곳에서 만났어요. 그 때 서정화 소장님은 상담소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저는 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어 시설에 갔다가 처음 만났죠. 그 때부터 노동상담소와 연계된 노동현장에서 가끔 얼굴 보는 사이가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건 1999년도에요. 노숙인 지원센터에서 함께 일을 했습니다. IMF가 터지면서 노숙인이 급증하던 시기죠. 노숙인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가 서울시에 만들어졌고, 그 일을 하러 들어왔다가 본격적으로 일을 같이 하게 됐죠.

- 지금의 ‘열린여성센터’를 만드신 계기가 있을까요? 김) 저희가 노숙인 지원센터에서 했던 여러 가지 활동 중에 하나가 거리에 나가서 거리 상담을 하는 일이었어요. 상담을 통해 필요한 서비스가 뭔지 찾아서 안내하는 역할이었죠. 당시 주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쉼터에 가서 안전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하는 거였어요. 막상 거리에 나가봤더니 여성 홈리스가 다른 노숙인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있더라고요. 여성시설도 많지 않았어요. 그것이 계기가 됐죠. 그때부터 직접 시설을 만들게 된다면 여성시설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후 2004년에 시설을 만들 여건이 됐고 서정화 소장님이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1년 후에 시설을 증설하면서 함께 하게 됐어요.

- 예전 기관에서 일할 때도 두 분이 유독 친하셨나요? 어떤 점이 잘 맞으셨나요? 김) 가치와 비전이 맞았어요. 그것을 친하다고 표현한다면. 사실 서로 맞춰보질 않아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수도 있겠네요.(웃음) 사람 중심의 가치 같은 것이죠. 노숙인은 자본주의 경쟁구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에요. 경제적•심리적으로 어려운상황이 됐을 때 가깝게는 이웃에서 큰 맥락에서는 국가의 복지제도를 통해 적절한 도움을 받았으면 노숙까지 오지 않았을 겁니다. 노숙 생활은 노숙인들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회의 책임이 있는 것이죠. 우리는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할 소명 같은 것을 느꼈어요. 그 가운데서도 제가 여성이다보니 같은 여성의 노숙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서정화 소장님과 그런 가치가 통했던 것 같아요.

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잘 맞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 결정할 때 합의가 잘 이루어지고 있죠. 여성 홈리스에게 도움을 줄 다양한 방법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때 자신의 가치에 따라 제안하기 마련이거든요. 지하차도의 노숙인 1,000명, 이 길로 이끌다

- 처음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 대학을 다니면서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학생들을 만나면서 당시 그들의 노동계급에 대해 알게 됐죠. 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직장에 들어가기 보다는 그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노동계급의 학생들 말이죠. 뒤늦게 노동 운동의 필요성을 알게 됐고, 학교를 졸업 후에 노동상담소로 바로 왔어요. 노동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됐죠. 노숙인 쪽으로는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어요. 노동상담소에서 일할 당시 동부지역금속노조라고 아주 작은 지역의 노동자들이 연합해서 만든 노조가 있었어요. 제가 그 지역에서 일을 했는데. IMF 때 대부분 회사가 문을 닫고, 기숙사 생활하던 분들이 더 이상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거리로 나오게 됐죠. 당시 노동운동을 같이 했던 분 중에 IMF가 터지고 난 후 노숙인 쪽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계셨어요. 그분이 어차피 노동 분야에 있던 분들이 노숙을 하게 된 거니까 제가 노숙 쪽에 경험이 없더라도 상담을 하고 돕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하셨죠.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김) 저는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사회적인 문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당시 대학생들은 나라의 민주화에 큰 관심을 보였죠. 민주화에 관한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을 텐데 그 가운데 중요한 이슈가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저도 사회 민주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이 들어서 뜻을 갖고 상담소와 노동현장의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90년대를 거치면서 노동운동 중심의 사회운동이 전 시민운동으로 확장됐어요. 그러면서 복지라는 것이 사회 발전의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게 됐죠. 당시 복지에 관심을 갖고 있던 선배가 노숙 분야에 전문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저도 권유를 받고 현장에 나갔죠. 현장을 보니 지하도에 1,000명 씩 줄 지어 잠을 자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이 일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지역사회에서 보통으로 살기 위한 과정

- 열린여성센터 이야기를 해볼까하는데요. 우선 센터 운영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인가요? 김) 일단 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힘들어요. 일을 찾고, 일을 해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지역사회에서 시설이 아닌 집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 거리에서 상담할 때 거리 아저씨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왜 일을 찾는 것이 어려운지, 인력시장에 나가면 일자리가 있다는데 왜 그런 것이 되지 않는지에 대한 대화였죠. 잠자리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어요. 겉모습이 깨끗하지도 않고, 재충전도 불가능하죠. 이렇듯 다음단계로 나가기 위한 것이 안정적인 잠자리이거든요. 여성 노숙인의 경우는 정신적인 어려움,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도 있어 안정적인 곳에서 먹고, 자고, 치료받으면서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기초가 돼요. 처음 오신 분들은 식사를 놀라울 정도로 많이 하기도 해요. 불안정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숙식 해결이 중요하죠. 하지만 도달지점이 거기서 그치면 그 분들은 계속 시설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살아갈 집도 있어야 하죠. 그리고 노숙인 시설에 오는 분들이 가족연계가 굉장히 취약해요. 결혼을 안 하신 분도 많고, 부모•형제와의 사이가 멀어진 경우가 많죠. 대부분은 진정한 의미의 싱글이거든요. 사람이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니까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는 유사가족 형태를 만들어 주려고 해요. 이런 것이 저희 활동의 종착지 같은 것이죠. 저희가 친정역할을 하는 거에요. 독립해서 혼자 살더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와서 의논도 하죠. 자기의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돕고, 나가서는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저희 활동 목표이죠.

-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서) 특별한 운영상의 어려움은 없어요.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그런 부분들은 여타의 시설이 그렇듯이 늘 부족하죠. 그 외에는 식구들이 시설에 온 뒤 적응하지 못 할 때. 독립하셔서 생활을 잘 하셨으면 좋겠다는 저희들의 운영 목표가 있잖아요. 그런데 식구들이 갖고 있는 기능이 좋지 않다보니까. 그런 과정 중에 어려움이 있죠.

- 시설이 안정기를 찾았다고 봐도 될까요? 김) 시설 운영 측면에서는 안정성이 상당히 높아졌죠. 이 공간이 임대주택이 아니라 온전히 저희 식구들을 위한 시설이거든요. 여러 후원자들의 도움이 있었죠. 처음 시작할 때는 임대였어요. 용산구 지대 높은 산동네 주택이었죠. 월세를 내며 생활했어요. 그마저도 주인이 갑자기 나가라고 통보해 황급히 홍제동으로 이사를 오게 됐어요. 시설이 저희 집이 아니면 많은 식구들과 함께 사는 것이 늘 불안정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 점을 여러분들의 후원을 통한 기금으로 집을 지으면서 해결했죠. 그리고 처음 이 시설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부의 노숙인을 위한 서비스라는 것이 좋지 못했어요. 시설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 정도였죠. 가족연계도 없고, 경제적인 능력도 없으면 3~4년 넘게 저희와 계속 사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염가의 집을 시중 월세보다 훨씬 싸게 임대해주는 제도들이 많이 확대됐어요. 노숙인을 위해 일부 할당도 돼있죠. 출구가 많이 열린 거죠. 힘을 북돋으면서 목돈을 마련하면 그 돈으로 독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사업의 안정성이 많이 생겼죠.

“젊은 사람이 왜 자기 밥벌이를 못해?”

story_bag@peopletree.krhttp://www.peopletree.kr

젊은신문 피플트리 http://www.peopletree.kr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