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편 - 7] 동예는 어떤 나라인가?

동예는 변천사

동예는 기원전 3세기부터 3세기까지 함경남도 남부에서 강릉까지 이르는 지역에 퍼져 있던 부족국가입니다.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옥저, 남으로는 진한이 접해 있었으며 동예도 옥저와 같이 위만 조선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기원전 108년, 한나라가 위만 조선을 멸망시킨 이후 원산, 안변 일대로 임둔군을 설치하였고 동예의 북부지역이 임둔군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75년, 고구려의 저항에 의해 현도군이 물러나자 동예는 낙랑군의 동부도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뒤 2세기 후반부터 고구려의 지배를 받다가 245년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입할 때 낙랑군의 공격을 받고 다시 낙랑군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동예의 세력 중 가장 강했던 불내예는 위나라가 침입하자 투항아였고, 조공을 바쳐 다시 불내예의 칭호를 유지하였습니다.

이후 고구려가 낙랑군을 병합하였고 동예는 다시 고구려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지만 강원도 지역쪽은 고구려 지배의 범위를 벗어났었는데, 광개토대왕이 정복하여 강원도의 대부분을 흡수하였고, 강원도의 남쪽 지역은 신라가 흡수하였습니다.

정치, 사회 구조

동예는 산천을 경계로 하여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고 각 구역별로 결속이 강했습니다. 읍락 내의 경작지는 구성원들에 의해 조금씩 나누어져 있었지만 산림, 하천 등은 공동 소유로 남겨두었습니다. 또한, 읍락 내의 경작지를 다른 읍락인에게 양도할 때에는 구성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동예는 읍락 내에서의 결속력이 강한 만큼 다른 읍락에 접촉할 때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즉, 함부로 다른 읍락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만약 이를 어길 시 소나 말 등의 가축, 노비 등으로 변상해야 했습니다. 이를 '책화'라고 합니다.

동예의 읍락 중 대표적인 세력은 '불내예' 였습니다. 낙랑군 동도위부의 소속이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아 관직명 중에 한군현의 것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3세기 중반, 위나라가 침입해 오자 불내예후는 위나라에 투항하였고, 조공을 바쳐 불내예후의 칭호를 다시 받게되었습니다.

생활, 풍습

동예의 성씨가 같은 사람끼리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족외혼의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고구려와 매우 비슷한 풍습이며 지배를 받는 동안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족 중에 질병에 걸려 사망한 자가 있으면 집을 버리고 새로운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제천행사는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밤낮으로 놀고 먹는 '무천'이 있었고, 제사의 대상은 '천신'과 '호신'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새벽에 별자리를 관찰해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동예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으며, 특산물에는 단궁, 과하마(키 3척의 말), 반어피(바다표범의 가죽), 명주, 삼베 등이 있었습니다.

아래의 역사도 함께 알아봐요~

- 한반도 연맹왕국의 특징 : http://jisick-in.tistory.com/22

- 동예의 이웃나라 옥저의 역사 : http://jisick-in.tistory.com/127

- 낙랑군의 축출 과정 : http://jisick-in.tistory.com/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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