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터가 잠든 계절

스페인의 도시 세비야는 두 사람을 동시에 품었다. 방탕한 로맨스의 아이콘 돈 후안과 무덤도 없이 처형당한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 이 중 로르카는 죽음에 대해 말했다. "위로할 길 없는 죽음이 있으므로 삶이 아름답다"라고.

제임스 설터의 『올 댓 이즈』를 다 읽었다. 대학 다닐 때 필립 로스 소설들 한창 찾아 읽으면서 떠올렸던 생각 하나를 지금 다시 꺼낸다. 인간은 노년이 우수한 동물이다. 추하게 늙어가는 예외도 많지만 어떤 한 순간만큼은 저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노년의 마스터들이 있고 그들은 대개 예술가들이며 그중 내가 체험한 부류로는 소설가들이 많았다.

설터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 『올 댓 이즈』까지 보고 나니 이 할배는 인생을 사랑과 배신의 변증법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마음 한구석 성한 사람 없을 정도로 너나없이 물고 물리는 욕망과 현자타임의 연금술 속에서 허무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아직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어떤 행복의 가능성이라는 걸 일단 믿긴 믿고 보는 시선. 우리는 돈 후안의 뜨거운 정열을 마음에 품으면서도 로르카에게 주어지지 못했던 슬픈 묘비명도 함께 외우고 살아야 한다, 라고 설터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따라서 언젠가 시드는 사랑에 믿음 걸지 말라고 누구나 말은 하지만 그런데 그게 믿기는 걸 어쩌란 말이냐, 또 그걸 믿지 않으면 사랑이 사랑이 아니게 되어버리는데.. 그 속절없음의 위치에 놓여 있는 게 또 설터의 소설인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속고 속이고 또 새로운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렇게 잠시 멈춰 있던 욕망과 배신의 수레바퀴는 다시 굴러가고. 하긴, 꽃을 보고 앞으로 시들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걍 그게 아름답다고 표현을 하고 봐야지.

나의 20대가 이제 1년 반 정도 남았는데 지금 미리 말해놔도 번복할 일 없을 것 같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내 20대 시절 10년을 가장 크게 쥐고 흔든 작가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제임스 설터가 될 것이다.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에 대한 애정은 미국의 재즈시대를 향한 동경과 반드시 얽히게 마련이라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1920년대로 돌아가보는 상상을 종종 하는데 그 불가능한 시간 여행의 미련을 위로하며 날 현재에 붙들어 주던 건 지금의 내가 제임스 설터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2015년의 여름은 설터가 잠든 계절로 내 기억에 남게 되었고 그의 유작을 읽고 나니 더위는 식어가고 가을 초입이 보인다.

한 예술가의 부고 소식에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 적이 최근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니 시드니 루멧 감독이 타계한 2011년의 4월이었다. (그의 1988년작 『허공에의 질주』는 내 인생의 영화다.) 이젠 제임스 설터의 명복을 빈다. 할배 나머지 작품도 잘 읽을게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콩가루가 펄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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