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대의명분이든 필연에 대한 확신이든, 삶에서 어떤 무거운 것에 자신의 전부를 올인으로 때려박는 인물들이 막판에 가서 깨닫는 건 결국 그간 치열했던 자신의 인생 자체가 거대한 '농담' 같은 한바탕 아이러니이자 '무의미의 축제'였다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밀란 쿤데라를 읽으면서 대충 눈치는 까고 있었다. 모름지기 예술의 거장은 무거운 게 아니라 가벼운 걸 잘 다루는 사람들이다.
살면서 유머 감각이라는 게 필요한 이유가 실은 이거다. 이 세계 혹은 인생 자체가 농담이라는 것, 그러니 인생은 항시 '무거운' 우리에게 언젠간 반드시 한 번은 크게 조크를 걸어온다. 흔히들 '인생이 우리를 배신했네' 어쩌네 표현하는 그 굴곡을 어쩔 도리 없는 삶의 드라마 일부로 가볍게 받아치고 넘어갈 줄 아는 실존적 유도리(인생님의 유우머에 불알을 탁 치고 갑니다!^^)가 바로 삶에 대한 유머 감각인데, 그 센스가 없는 인간들은 끝까지 혼자서 정색 빨고 다큐를 찍어가면서 어금니 깨물고 신을 원망한다.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이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그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네메시스』, 243쪽)
사실 필립 로스의 소설을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그가 작품에서 직접 지시하는 것은 삶의 우연성이라는 '인식'이다.(비슷한 예로 『울분』(으앙 쥬금 계열의 마스터피스)의 경우엔 발생한 사건의 인과 설명을 아예 생략해버리는 방법을 썼는데 『네메시스』에선 걍 위처럼 제3자의 목소리를 빌려 서술을 해놨네;) 하지만 명민한 독자라면 그 행간에서 캐치해내야 할 것은 삶에 대한 유머 감각이라는 '태도'다. 적어도 내가 필립 로스의 소설에서 배우고 익힌 게 있다면 그것이다. 그리고 로스 할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홀연 절필을 선언하였다.(문단 퇴갤염ㅋ)
그나저나 필립 로스 이 할배도 만약 만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거 많은 양반인데... 할배, 이 가벼운 삶에서 우리의 자유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있기나 한 건가요. 할배의 소설을 읽으면 언제나 자유의지나 가능성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많은 작품들이 그리스 비극에 비유되는 건 그 때문이겠지요. 그럼 정녕 평생을 개연성 언저리를 뜬구름처럼 겉돌아야 하나요. 무거운 건 뭔가요. 어디에 매달려야 하나요. 인간은 개연성을 먹고 사는 동물 아니던가요. 하긴, 할배도 모르니까 전부 소설로 썼겠죠. 움베르토 에코의 말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이론화할 수 없는 것들은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할배는 저에게 최고의 스토리텔러입니다. 아무쪼록 만수무강하시고, 노벨문학상도 받으시고, 오래 살다가 생각 바뀌는 거 있으면 절필 번복했다고 아무 말 안 할테니까 신작도 써주시고, 스팸을 김치에 싸드셔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