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편 - 11] 애국계몽운동 단체의 활동

애국 계몽 운동이란?

애국 계몽 운동은 1905년 을사 조약으로 일본에게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자 일어난 운동 중 하나로 의병 활동과 애국계몽운동을 합쳐 국권회복운동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게 된 원인으로 '실력의 격차'를 뽑았으며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각 단체가 노력했으며 자주적인 힘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운동의 종류

애국계몽운동은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내적으로는 여러 사업을 진행하여 경제적인 힘을 되살리고자 했고, 국외적으로는 무관학교를 설립해 군사력을 키워 일본이 어려워졌을 때 국내로 진입하여 독립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또한, 유망한 청소년들을 민족 간부로 양성해 실력을 키우게 하였고, 특정 계층만 계몽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계몽하여 민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운동의 종류로는 신교육 구국 운동, 국외 독립군 기지 창설, 문화 및 문학 운동, 국채 보상 운동 등이 있습니다.

애국 계몽 운동의 단체 및 활동

보안회(1904)

1904년 초 러시아와 일본은 만주와 조선내부에서의 세력 다툼으로 전쟁 직전의 분위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조선(대한제국)은 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선의 이권을 침탈했습니다. 그 해 2월 일본은 러시아와의 국교를 단절하고 선전포고를 하면서 러일 전쟁이 시작되었는데요. 일본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한일의정서'라는 협약을 강제적으로 체결하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선의 영토를 군용지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여러 조항 중 일본에게 황무지 개간권을 허용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에 대항한 단체가 바로 '보안회' 입니다. 보안회는 일본이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고 반대 운동을 펼쳤고 이를 저지하는데 성공합니다.

헌정연구회(1905)

헌정연구회는 보안회가 해체된 이후 이준, 윤효정 등이 창설했습니다. 독립협회 출신들이 주가 되어 활동했으며 을사조약 직전에 가장 활발했던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입헌 군주제 수립을 주장했으며 왕실이나 정부도 법률을 지켜야 하며, 국민들도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06년 헌정연구회는 규모가 확대되어 대한자강회로 개편하게 됩니다.

대한자강회(1906)

헌정 연구회에서 확대 및 개편된 단체입니다. 전국에 지회를 설립하면서 활동 범위를 넓혔으며 대한 자강회의 월보를 간행, 정기적인 연설회를 개최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1907년 고종 황제가 퇴위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통감부에 의해 강제 해산됩니다.

신민회(1907)

안창호, 양기탁, 이동휘 등이 조직한 비밀 결사 단체입니다. 국권 회복, 근대 국가 건설을 목표로 활동하였으며 경제, 문화적인 실력 양성 운동을 펼쳤습니다. 평양에 대성 학교,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에 힘썼으며, 태극 서관, 자기 회사 등을 설립하면서 경제적인 발전을 도모하였습니다. 또한 남만주에 삼원보 건설, 신흥 무관학교 설립 등을 통해 적절한 시기에 독립 전쟁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졌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조작한 105인 사건(데라우치 총독 암살 혐의)으로 인해 해산당하게 됩니다.

아래의 역사도 함께 알아볼까요?

- 대한제국의 탄생 : http://jisick-in.tistory.com/58

- 독립협회의 활동 및 해산 과정 : http://jisick-in.tistory.com/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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