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내의 느긋함이 부럽다 - 단원 김홍도 '세마도(洗馬圖)'

버들가지에 물오른 봄날이다. 허투루 쌓은 돌담 사이로 문짝을 열어놓고 주인장은 못에 들어가 말을 씻는다. 아랫것들 시켜도 될 굿은일인데, 주인이 내켜 말고삐를 잡았다.


날이 따스워진 까닭이다. 홑겹 옷에 팔 걷어붙이고 다리통까지 드러냈지만 체면에 상툿바람은 민망했던지 탕건을 썼다. 말의 표정이 재미있다. 눈은 초승달이고 콧구멍은 벌름댄다. 입도 안 벌리고 웃는 모양새다. 솔로 등을 문질러주자 녀석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린 이는 단원 김홍도이고, 제목은 '세마도(洗馬圖)'다.


작은 그림이지만 서려 있는 봄볕이 푸지다. 봄바람은 부드럽다 못해 간지럽다. 버들은 살랑살랑, 못물은 욜랑욜랑, 말꼬리는 나달거린다. 구도에 어울리지 않게 단원의 글씨가 큼지막해진 것은 괜히 춘흥에 겨워서다.


무슨 내용인가. '문밖의 푸른 못물로 봄날에 말을 씻고(門外綠潭春洗馬) / 누대 앞의 붉은 촛불은 밤에 손님을 맞는다(樓前紅燭夜迎人).'


당나라 한굉의 시에서 빌려온 구절이다. 부귀와 공명을 버린 채 한소(閑素)하게 사는 자의 여유를 노래한 이 대목은 어찌나 유명했던지 한굉말고도 여러 시인이 한두 자씩 바꿔가며 읊어댔다. 단원 또한 얽매임이 없이 살고 싶어하던 화가였다. 그에 딱 맞는 소재를 고른 셈이라 붓질이 그저 사랑옵다. - 14~16쪽


- 손철주 《사람 보는 눈》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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