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편 - 14] 조청상민 수륙무역장정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조선의 상황

조선이 본격적으로 개화를 추진하면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고 김홍집의 주장에 따라 일본에는 조사시찰단을, 청나라에는 영선사를 파견하는 등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또한 최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하면서 군사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화 정책에서 소외된 하층민들, 구식 군인들에 대한 대우였습니다. 불평등한 정책으로 국내의 곡물은 대량 유출되었고 민생이 악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별기군 창설로 구식 군인들은 반 년동안 월급 한 푼 받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받지 못했던 봉급을 나누어준다는 말에 구식 군인들은 가족들에게 흰 쌀밥을 먹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받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지급받은 자루엔 턱없이 모자란 양의 쌀이 있었고 그마저도 돌과 모래가 반 섞인 것이었습니다. 쌓이고 쌓이던 불만은 1882년 터져 임오군란이 발생하였고 권력을 독점하던 민씨 세력은 청나라에 진압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임오군란은 청나라 군대에 제압되었고 이를 계기로 청나라는 민씨 정권에 대한 내정간섭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1882년 8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여 조선에 대한 경제 침투를 가속화시켰습니다. 이후 이홍장의 추천으로 마젠창, 뮐렌도르프가 정치, 외교 고문을 맡게 되었고 청의 위안스카이에 의해 조선의 군대가 개편되었습니다.

또한, 개항장에서의 상권을 확대하기 위해 공서와 분서를 설치하였는데, 일본과 서양 열강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883년 일본은 조선과 조일통상장정을 체결하였고, 영국과 독일도 이어서 통상장정을 체결해 조선에서의 상행위를 인정받았습니다.

무역장정의 조항과 조선에 미친 영향

조항에는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한다고 명시되어있었고, 조선에서의 치외법권 인정은 물론 개항장 밖에서의 내륙통상권과 연안무역권까지 인정받았습니다. 청 상인들은 영국제 면제품을 들여와 조선에 비싸게 팔았고 조선의 곡물, 금 등은 헐값에 수출되어 조선의 무역수지 적자가 증가하였고, 개항장 및 서울에서 시전상인과 객주들의 상권을 침탈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국경무역에서의 낮은 관세, 청나라 기선의 조선 파견권, 조선 연안의 어업권 인정 등 각종 특권으로 가득 찬 불평등 조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조약은 이후에 맺어지는 일본과 서양 열강들과의 조약에도 영향을 미쳐 이러한 특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래의 역사도 함께 알아봐요~

- 조미수호통상조약 : http://jisick-in.tistory.com/90

- 조일수호조규, 부록, 속약 : http://jisick-in.tistory.com/118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