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편 - 23] 백제의 건국과 온조왕

고구려를 떠나 새 나라를 세우러 간 비류와 온조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들이었습니다. 처음에 비류가 첫째 왕자였고 온조는 둘째 왕자였는데, 어느날 이복 형인 유리가 나타나면서 비류와 온조는 둘째, 셋째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왕이 되는 것은 둘째치고 유리가 왕이 되었을때 자신들을 어떻게 할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주몽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고구려를 떠나 새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두 사람의 뜻에 오간, 마려 등 10여명의 신하가 함께했고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남으로 내려온 일행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서 주변을 살피며 살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신하들은 "큰 강이 북쪽에 있고 동쪽으로 높은 산이 있으며, 남쪽으로 비옥한 땅이 있어 살기에 적당할 듯합니다."며 하남 땅에 도읍을 세우고자 했고 온조도 그 뜻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비류는 "강의 하류로 내려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나라를 세우고 싶다"며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추홀에 자리잡은 비류는 그곳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땅은 습하고 질퍽했으며 물은 짜서 농사짓기 힘들었기 때문에 정착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비류는 하남 위례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위례성에 가보니 백성들은 태평하고 안정되었으며, 모두 활기에 넘쳐 있었습니다. 이를 본 비류는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며 정치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살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백제의 건국에 대한 여러 가지 설

'온조(溫祚)'의 뜻과 '백제(百濟)'라는 이름의 유래

온조라는 말은 '하늘이 내리는 따뜻한 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름대로 따뜻했던 왕이라고 전해집니다. 나라이름름의 '백'은 많다는 의미 '제'는 따른다는 의미로 온조는 많은 백성들이 자신을 따른다고 하여 나라의 이름을 '백제'로 정하였습니다.

비류백제설

[삼국사기]에서는 백제 건국의 다른 이야기로 '비류백제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백제의 시조는 비류왕이며 그의 아버지 우태는 해부루의 서손인데, 우태가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 결혼하면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우태가 죽고 소서노는 두 아들과 살다가 주몽이 오자 재혼했는데, 이들은 고구려가 세워지는데 큰 역할을 했고 소서노는 고구려의 왕비가 되었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몽의 첫 번째 부인 예씨의 아들 유리가 오자 주몽이 그를 태자로 임명했고, 두 아들은 불만에 가득 차 남쪽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한 내용은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백제의 시조는 비류이고 두 형제가 주몽의 의붓아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설은 백제의 첫 번째 왕이 온조로 공인된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백제 시조 주몽설

일본에서는 백제를 건국한 사람이 주몽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일본서기], [속본일기] 등에서 이러한 기록이 발견되었으며 백제에서도 어느 시점부터 태조라는 시호를 온조가 아닌 주몽으로 지목한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아래 역사도 함께 알아볼까요?

- 백제의 발전 및 쇠퇴 과정 : http://jisick-in.tistory.com/36

- 삼국의 통치 체제 : http://jisick-in.tistory.co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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