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 이준익 감독의 2015년작 <사도>에 관하여

감독: 이준익

주연: 유아인, 송강호, 문근영, 전혜진, 김해숙, 박원상, 진지희, 박소담, 서예지, 이광일, 이대연, 정석용, 박명신

촬영: 김태영

음악: 방준석

12세 관람가 / Color / 125분

이준익 감독의 신작 <사도>의 도입부는 위 사진과 같다. 유아인이 연기하는 이선 (훗날 사도세자가 되는) 이 "씨바!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이라 외치며 검을 빼들고, 아버지 영조의 처소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딱 보니 역모의 견적이 나온다.

곧 사도 세자의 아내, 미사토.. 아니. 문근.. 아니. 혜경궁 홍씨가 도움을 요청한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당장은 관객에게 소개되지 않는다. 다만, 그 날을 이후로 이선이 영조의 명을 받고 그를 뵈러 갔다가 뒤주에 감금된다. 그러니까 <사도>는 이선이 뒤주에 갇히는 상황을 앞부분에 먼저 제시해놓고, 아버지와 아들이 왜 그 지경이 됐는지 플래시백으로 이야기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를 얘기하려는 듯 말이다.

<사도>에서 구현되는 영조와 이선의 이야기는 자식에게 극성과 과욕을 부린 아버지와 그것에 짓눌려 트라우마를 얻어가는 아들의 이야기다. 작품에서 영조는 이선에게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심을 쏟아붓는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로서 당연히 자식에게 쏟는 관심이다. 그러나 이선이 글공부를 하기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활쏘기를 하는 등 예체능에 더 관심을 보이자 실망하고는, 거의 짐승 대하듯이 매몰차게 몰아간다. 이선 역시 이런 영조의 모습에 질려버린다. 그래서 아버지를 보러 가는 것이 너무도 싫어 도망치면 안 되는데 도망친다. 입는 의복마다 찢거나 내팽개치고, 결국 내관의 목까지 잘라버리게 되면서 점점 갈등을 증폭시켜 나간다.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영조의 이런 모습들은 그의 태생, 처한 환경과 관련이 있다. 영조는 무수리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왕에 등극한 후,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대신들과 일종의 합의를 본 과거가 있다. 이로서 대신들을 완벽하게 견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작품을 대표하는 대사인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라 집안일이다" 처럼, <사도>는 어떤 역사 속 이해관계보다 좀 더 개인적인 지층으로 이야기를 끌고 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되며, 영조는 좀 더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인간이 된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대신들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보다는 형을 독살했다는 모함을 받는 영조의 모습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조와 이선이 보여주는 '인간' 의 유약함이 더 부각되는 만큼, 조선왕조 계급제도의 폐해를 다루는 시선은 얕아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대에만 한정되지 않고, 지금 현재의 '가족' 이란 주제로도 대입시켜 생각하게 만드는 여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아버지와 아들' 이란 테마에 집중하는 작품은, 동시에 그들이 내뿜는 광기에 궁궐의 사람들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함께 담아두고자 한다. 이를 주로 담당하는 인물들이 인원왕후와 영빈, 혜경궁 홍씨 등의 '아녀자' 들과 영조와 이선을 보필하는 신하들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나와 이 작품의 불화가 있었다. 내가 볼 때는 문제는 작품이 여인들을 두려움을 간접적으로 체감시켜 주는 용도 이외에, 다른 이야기도 하고자 등장시킨 듯 했다. 말하자면 왕과 세자의 이야기만큼 그들을 지켜보는 대비와 세자빈, 그 외 여인들의 이야기도 따로 있으며, 함께 진행시킬 것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들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더라.

참고로 <사도>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영조와 이선에 대한 두려움말고도 두 사람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면서, 여러 현명한 조언들을 건넨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라는 점이다. 이 작품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여배우들이 여럿 나오지만 굳이 저들이 다 나올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연기하는 배역이 제한적이고 기능적이라는 감흥을 준다. 만약 그 정도의 뉘앙스만 줬으면 이해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정서를 이끌어가는 주된 인물도 영조와 이선 뿐이고, 실제 궁중에서도 여인들이 전면적으로 역사에 관여할 기회 역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은 자꾸 뭔가 여지를 준다. 자꾸 '부자 간의 이야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녀들의 이야기도 중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조와 이선 대신 여인들만을 등장시켜 그들만의 공간에서 대화하는 시퀀스를 삽입한 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두 인물을 배제하고 중심으로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궁중여인들의 이야기가 강렬하거나 인상적이지 않다. 그녀들만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퀀스나 쇼트들이 내 입장에서는 어떤 잉여처럼 느껴졌다는 얘기다.

조언자 역할을 제외하고, 그녀들이 유일하게 주체적인 행동으로서 뇌리에 남을 정도로 돋보였던 순간은 어린 정조를 살리려 노력할 때 뿐이었다.

근데 이건 어쩌면 내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나는 잘 선호하지 않는 방식의 이야기 작법을 구사하게 되면 거기에 기대하게 되는 심리가 있는데, 그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말이지.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도>는 플래시백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신상옥 스타일의 오페라틱한 사극 대신,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1962년작인 <할복>이나 임권택 감독의 1980년작인 <짝코>의 전개방식과 닮아 있다. 잦은 플래시백은 위험하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상황을 전해줘야 할 시점에 자꾸 뒤로 가는 행위와도 같다. 이렇게 하면 관객에게 지루함을 유발할 수도 있고, 이야기의 속도감도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할복>과 <짝코>는 이 방식을 쓰면서도 이야기 전개의 속도감을 잃지 않은 경우에 속한다. <사도> 도 비슷하다. 과감하게 위의 두 작품이 간 길을 따라가고 있으며, 유머도 별로 없는 와중에 묵직한 드라마를 지루함 없이 잘 끌고 간다. 이는 분명한 장점이며, 작품의 해석 또한 보편적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이 전개 방식은 <사도>라는 작품이 어떤 태도로 만들어 졌는지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 (첫번째)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1962년작 <할복>

(두번째) 임권택 감독의 1980년작 <짝코>.

둘 다 굉장한 걸작이니 못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 *

'산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감독은 '왕의 마음' 이 아니라 '광대의 마음' 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선이 뒤주에 갇혀 사도 세자로서 죽기까지 안에서 버티던 8일간의 시간도 관객에게는 하루마다 챕터로 나눠져 있는데, 일종의 마당놀이를 보는 듯하다. 중간중간 궁궐의 여인들이 나누는 대화들도 중요한 것처럼 부각시키는 이유도 감상하는 동안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게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왜 이런 장치들이 못마땅하게 느껴졌을까. 내게 있어 <사도>는 오히려 왕처럼 절제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기억에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촬영은 이야기 전개 방식과 달리 시종일관 이 태도를 유지한다. 개인적으로 일말의 불만도 없었던 부분이 2.35:1의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율을 다루는 솜씨였다. 이는 요 몇년간 만들어진 한국사극영화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결과물이지 않은가 한다.

작품은 의도적으로 가로로 긴 화면과 커다란 궁궐의 공간을 '공백' 으로서 활용한다. 가령 영조의 궁으로 찾아가는 이선의 모습에서 그가 걸어가는 거리에는 펄럭이는 화려한 깃발들도 보기 힘들고, 위엄있게 서 있는 보초들의 수도 많지 않다. 터벅버턱 걸어가는 이선을 보면 문득, 궁이 사이즈에 비해 뭔가 많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은 이로서 부자 간의 거리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낸다. 아들은 그 먼 거리를 걸어 아버지를 찾아 얘기하고는, 다시 멀어진다. 시네마스코프의 긴 화면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요 몇 년 간 만들어진 한국의 다른 사극 작품들이 보여줬던 화려한 색감의 의상들이나 화면 전체를 꽉꽉 채우는 스펙터클, 낙엽보다 붉은 쎅-쓰 어필도 없다. 그저 어딘가 비어있음으로서 생겨나는 공허감만이 있을 뿐이다.

* 영빈의 환갑잔치 시퀀스. 캡쳐해놓고 보니 유아인의 콧구멍이 짝짝이.

콧구멍은 아니지만 짝눈의 소유자로서 동질감을 느낀다. *

사극에서 보여줄 수 있는 스펙터클의 일종인 행렬 시퀀스마저도 <사도>는 화려하게 찍지 않는다. 영조의 행렬은 그냥 일렬로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고, 전혜진이 연기하는 어머니 영빈의 환갑잔치를 치뤄주겠다고 이선이 행렬을 주도할 때는 한적한 숲속을 많지 않은 사람들이 걸어갈 뿐이다. 심지어 숲 속이라서 벌레들이 윙윙댄다. 물론 환갑잔치 시퀀스에서 이선을 연기한 유아인이 홀로 술 먹고 소리를 치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쪽쪽 빼지만, 촬영을 비롯한 시각적인 부분들은 꽤 담백하게 처리 되어 있다. 뭐라고 해야할까. 전작인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후반부에 나왔던 텅 빈 궁궐을 볼 때의 정서가 <사도>에 시종일관 반영되어 있다고 해야할까? 이런 절제가 작품이 가진 비극성을 강화시킨다.

물론 이야기 면에서 시종일관 이런 절제를 놓치지는 않는다. 후반부에서 이선이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한밤 중에, 영조가 뒤주 앞으로 걸어오는 시퀀스가 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볼 수 없는 곳에서 나레이션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이 극한의 상황에서 둘은 덤덤하게 읊조린다. 더이상 불같이 화를 내며 싸우자니 이젠 지쳤겠지만 여기에는 어린 세손, 즉 정조를 구실로 아들은 미쳐서 죽어야만 하고 아버지는 패륜을 저질러야 하는 가혹한 현실 역시 존재하고 있다. 작품은 이 때 왕이라는 자리에 등극함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 중 하나가 사람을 죽여도 지탄받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동시에 왕이라서 제약이 있는 행동도 있다는 점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가장 참혹한 순간에도 왕과 세자로서, 정치적 프레임 안에서만 존재해야만 한다. 여기에 '개인' 은 없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화법은 불 같이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오히려 속으로 삭혀 들어가는 것이다. 이선은 섬멸되고, '사도 세자' 로 역사에 남는 순간은 그래서 슬프다.

* 이선의 죽음 *

그러나 작품은 이 인상적인 순간을 보여줬다가, 에필로그에서 다시금 감정과잉이 된다. 사실 <사도>의 에필로그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기로 유명하다. 문근영의 노인 분장과 '사도 세자' 가 된 이선의 아들 정조의 성장한 모습으로 소지섭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사실 의외로 그런 부분에서 불만을 느끼지는 않았다. 내 취향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소지섭은 정조의 모습을 잘 보여줬고, 문근영은 지금처럼 관리해서 나이가 들면 저런 모습이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으니 말이다. 내가 아쉬웠던 건 과잉이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작품까지 생각났다고 해야할까. 정석용이 연기하는 홍 내관이 영조의 죽음을 알리려고 궁궐 지붕에 올라가 용포를 흔들 때, <사도>는 갑자기 잘 쓰지도 않던 슬로우 모션을 활용해 슬픔을 강조하려 든다. 그리고 정조는 곧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상 앞에서 부채를 펴 들며 광대가 되기를 자처한다.

정조가 춤을 추는 시퀀스가 가진 의도는 바람직하다.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기념하며 춤을 춤으로써, 정조는 그녀의 아들이자 자신의 할아버지인 영조, 자신의 아버지이자 영조의 아들인 사도 세자에게 위로를 보낸다. 정조의 춤은 그로서 혜경궁 홍씨와 영조, 사도 세자에게 바치는 것이 되며, 이는 불화 대신 화해를 주선하는 상징이 된다. 에필로그로 넣은 이유 그것은 내가 잘 알겠다. 그러나 이전까지 유지해왔던 작품의 분위기와 다소 동떨어진 방식으로 구성됐다는 찝찝함이 남는다.

이렇게 해야 관객들이 더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이야기라서 무리려나? 저렇게 해야 좀 더 달라보이지 않을까. 이준익 감독은 너무 많은 생각을 했든, 너무 많은 눈치를 봤든 어쨌든 그런 태도로 <사도>를 만든 것 같다. 글쎄. 굳이 그리 하지 않아도 이미 이 작품은 달라 보였다. 적어도 요 몇 년간 만들어졌던 사극 장르들에 비하면 분명 다르다. 작품은 과잉보다는 비움을 선택했으며 장르를 침범하는 무리한 유머도 절제하고 있다. 내가 거론한 특징들이 그저 눈에만 보이는 것일지언정, 이 정도만 얘기해도 <사도>는 분명 개성 있는 사극이다. 떳떳해도 된다. 그러나 극장에 상영된 최종본은 자신의 한계 이상을 담아버린 듯하다. 자기가 들어가기엔 너무 비좁은 뒤주에 갇혀 괴로워하던 이선이 결국 참지 못하고 발로 차서 뒤주를 망가뜨렸듯이, 무난하게 이끌어가던 작품이 너무 많은 것들을 존재감 있게 다루려 욕심 부리다 아쉬움에 그치고, 결국 에필로그에서 덩치와 무게를 감당못해 다 터져버린 느낌이다.

과거의 이준익 감독은 작품활동을 너무 쉬지 않고 해서 좀 쉬엄쉬엄 견고하게 만들기를 바랐었다. 지금의 이준익 감독은 과거보다는 나은 듯하지만, 감상자를 너무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강해보인다. <사도>는 못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작품이 가진 장점을 온전하게 전달하지는 못한 듯하여 아쉽다.

p.s.

1)

2)

물론 <사도>의 해당 시퀀스를 온전하게 캡쳐할 수 없기에, 이렇게 말로밖에 설명을 못하지만.. 그런 음울한 공간 속에서 등장하는 유아인의 모습이 굉장히 어울려 보였다. 망나니 재벌 3세의 파티 룸과 반쯤 미친 세자의 무덤 룸이라.

유아인을 덕질하는 팬들이 흔히 말하듯, 그는 '태생부터 가난미가 넘치는' 배우다. 뭔가를 박탈당한 감성을 잘 표현하는 배우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사도>의 사도 세자와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에서 연기한 재벌 3세가 어울렸다. (그 재벌 3세마저도 '첩실의 자식' 이라는 설정이었으니.) 수트 쫙 빼입고 세자 역할 해도 여태껏 가꿔온 가난미 덕이려나.

* (첫번째)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두번쨰) 이준익 감독의 <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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