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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산문집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를 읽었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 학교>를 본 사람이라면 알텐데, 지리산의 '낙장불입 시인'이 바로 이원규다. '고 알피엠 여사'가 그의 부인이고 말이다. <지리산...>와 박남준 시인의 시집 <그 여자네 집>에 이어 이 책을 집어든 건 그저 우연으로 단지 가벼운 책을 읽고파서였다. 진중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읽기 쉽고 읽은 후 명랑해지는 책들이 그리워서. 최근에 찾은 책들은 대개 두껍고 무거웠으며 긴장을 요구하고 까다롭게 읽어야 하는 것들이 많았으니까. 읽기 전에 나는 저자가 '낙장불입 시인'인 줄 모르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멀리 나는 새는...>는 <지리산...>와 <그 여자네 집>과 정서적으로 거의 겹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다. <지리산...>을 읽기 전에도 나는 박남준을 알았지만, <지리산...> 독서 이후에 박남준에 대한 이해가 더욱 두터워졌던 것과는 달리, <멀리 나는 새는...>는 <지리산...>와 쌍방으로 소통하지 않는다. 그 '낙장불입 시인'이 정말 이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을 아주 가벼운 산문집이라 부를 수는 없다. 저자가 수경 수님과 함께 생명평화 탁발 순례단을 이끌면서 지리산, 새만금, 임진각 등 전국을 직접 발로 걸었던 경험과 감정과 생각들이 책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낙장불입 시인'은 <지리산...>에서와는 다르게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전국을 순례하면서 이 땅의 아픈 곳들을 살펴보고 그 상처를 공유하는 데 시간을 바쳐왔다. 그 업의 막중함과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아쉽게도 책은 그 감정과 생각을 설득력있게 전파하기보다는, 그저 장황하게 늘어놓은 측면이 있다. 경로의 무쌍함과 소재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멀리 나는 새는...>는 독자의 눈과 마음을 저 깊은 데서부터 흔들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와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바 사이의 거리가 문어체로 일체화되어 있는 한편,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바와 저자가 쓴 것 사이의 거리는 구어체로 풀어지지 못하면서 '주파수적 변환'에 실패한 게 아닌가 싶다. 진정성도 때로는 독이 되는 것이다. 결국 그가 꿈꾼 세상은, 서로간의 상처를 함께 보듬는 너른 공동체의 일종이었으나 저자 본인이 체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그를 진심으로 바랬는지는 모르겠다. 책의 말미를 보면, 그는 '다시 길동무도 없이 홀로 길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사적 정서, 단독자의 정서, 떠돌이의 정서는 그가 힘주어 말하는 주제와 종종 배치된다. '혼자'라는 감정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고 삶의 근간이어서 책의 곳곳에 출현하는데, 그것이 '따로 또 같이' 상황에 따라 변주되면서 공동체와 홀로움으로 매끄럽게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역마살'의 이미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의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이물감을 자아낸다. 그것은 또한 어쩔 수 없이 시대착오적이고 이율배반적인데, 나는 그 점이 저자가 아직 '내적으로 소년'인 정서를 품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는 불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는 여전히 꿈이 많은 사람이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도 놓을 수 없는 꿈은 사실 또 얼마나 큰 짐인가. 이 책을 읽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길과 사람과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원규 시인 자체의 상처를 읽는 경험이기도 하다. 그 소년은 아직 길 위에 있다. 아니, 평생 길 위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길 위의 기록은, 내면의 풍광이 주가 아니라 길의 풍경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 속에 담긴 삶의 비의들을 담아내는 데 주력함이 옳지 않을까. 책을 덮고 난 뒤에 남는 진한 아쉬움은 그 자신 제 발로 걸었음에도, 그가 전하는 인생과 길의 풍경이 주마간산격으로 그저 스쳐갈 뿐 내밀한 울림을 전하지 못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주장함으로서 내놓고 드러내기보다 묘사함으로서 설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신랄하게 비판하긴 했지만, 이원규 시인의 시와 산문들을 통털어 폄하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책이 여러 삶과 여정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진정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전달에 실패했다는 점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이 다음 책은 한층 더 성숙한 모습, 생각과 정서와 삶이 하나로 통합된 풍경을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지금껏 지나온 길들은 개인의 상처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역사적 상처이기도 했다. 그 상처의 딱지에서 우리가 고통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들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그것이 '낙장불입 시인'에게 거는 모두의 기대일 것이다. 성장과 건필을 기원한다.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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