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경영학] 기업과 개인의 사회적 책임, 영조에게 배우다 : 2편

천민 출신의 어머니, 경종 독살 의혹 그리고 아들의 죽음까지 지독한 콤플렉스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영조.

그러나 자신의 개인사를 휘감은 고통에 휘둘리지 않고, 이를 현명하게 극복해 민생을 안정시킨 임금이었다.

조선후기 중흥기를 가져온 그가 최고의 통치자로 추앙 받았던 것은 근검절약과 백성을 위한 애민 정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달의 왕의 경영학에서는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현 시점에 영조의 리더십과 가치관에 대해 주목해 본다. 이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개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중요함을 재조명 해본다.

지난 9월, 주요 금융지주와 지방 금융지주 CEO들의 연봉 자진 반납 뉴스는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 신한금융, 하나금융, KB금융 3사 회장들이 연봉의 30%를 자진 반납해 신규 채용 확대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다음날부터 지방 금융그룹 회장들 및 은행장의 연봉반납 등으로 이어졌다. 금융지주 CEO들의 연봉 자진 반납은 청년 고용절벽에 대응하는 한편,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동참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9월 16일 청년일자리 해결을 위한 ‘청년희망펀드’에 일시금으로 2000만원을 기부하고 이후 매달 월급에서 20%를 기부하기로 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박 대통령의 기부결정에 대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사회 지도층의 연봉반납, 기부 등이 이슈가 될 만큼 한국 경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연도별 경제성장률은 2010년 6.5%를 기록한 뒤 2011년 3.7%로 급락했고 2012년 2.3%, 2013년 2.9%, 2014년 3.3% 등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민간 소비지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 역시 2014년 1분기 2.6%, 2분기 1.7%, 3분기 1.7%, 4분기 1.4%에 그쳤고, 2015년 1분기 1.5%, 2분기 1.6% 등 경기 활력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 설비투자 증가율도 정체되었고 수출은 2014년 3분기(-2.0%)부터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저성장기조에 들어섰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영조의 절약정신 만큼이나 빛나는, 현대에 이르러 평생 근검절약으로 기업을 번창시킨 이들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4년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IKEA)’의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구두쇠로 유명하다. 그는 빌 게이츠보다 돈이 많을 정도로 세계적인 갑부임에도 상점 문이 닫기 직전 떨이 과일과 야채를 사갈만큼 절약이 몸에 배인 인물이다.

그가 세운 이케아는 그의 철학과 사고방식을 대변한다. “기업의 목적은 오직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나은 일상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 이는 잉바르 캄프라드의 철학이자 이케아의 핵심 성공전략 이다. 이케아 내에서는 아무나 살 수 없는 1000달러짜리 고급 책상 대신, 50달러짜리 품질 좋은 책상을 만들 수 있어야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이케아는 저렴한 가격대에 실용적이고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여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국내 사례로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1위로 꼽히는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며,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라는 신념으로 평생을 보냈다. 유일한 박사는 1936년 ‘주식회사 유한양행’을 발족, 회사는 개인소유가 아니란 방침을 실천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쳤으나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고, 유일한 박사는 1971년 3월 사망 직전까지 각종 공익재단에 유한양행 총 주식의 40%를 기부했다. 이는 시가 2조 2137억원(2014.2월 기준)에 달하는 금액이다. 또한 그는 출입국 카드에 항상 자신의 직업을 ‘교육자’로 적을 만큼 교육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1953년 고려공과기술학원 설립에 개인주식 30%를 내놓았고, 1965년에는 개인주식 1만 5000주와 1만 6500㎡규모의 대지를 바탕으로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세웠다.

유일한 박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졌다. 그는 직접 적어 내려간 유언장을 통해 “내 소유의 주식은 전부 사회에 기증한다. 아내는 딸이 그 노후를 잘 돌보아 주기 바란다. 아들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는 말을 남겼다. 자식들에게 조차 유산을 거의 남기지 않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생필품 몇 가지와 구두 두 켤레, 양복 세벌이었다 한다.

지난 8월 자신의 전 재산 2000억원을 통일운동 펀드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대림산업 이준용 명예회장의 경우도 살펴봄직 하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기부활동이라 하면 계열사 형식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회장은 자신의 기부를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외곽재단인 통일과나눔 재단에 맡기기로 했다. 이러한 순수한 전재산 기부는 한국에서 거의 전무후무 하다시피 한 것으로, 한국도 미국과 같은 슈퍼도네이션 확산의 불씨가 당겨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다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으로 연결된다. CSR은 사실 특별한 정의가 있는 개념이라기보다 사회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 온 개념으로 보는 것이 맞다. 1950~60년대에 처음 언급되기 시작, 기업의 ‘경제적 책임’ 정도에 그쳤던 이 개념은 사회의 변화와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로 경제 · 법 · 윤리 · 자선적 책임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범위가 확장되었다.

최근에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 부의 불평등 등 시장경제 메커니즘에 대한 불신 확산과 지속되는 경제 위기로 적극적인 CSR이 요구되고 있는 추세다. 웰스파고(Wells Fargo)는 CSR의 핵심을 미국인의 가장 큰 고민인 ‘주택문제’로 지정해 자금지원·교육·봉사 등을 통합적 연계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인 주택채무자에 대한 상담과 교육 및 채무 조정, NGO와 연계한 임직원의 자발적 집짓기 봉사 참여 등을 통해 ‘친근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또한 임직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임직원 로열티가 상승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었다.

지난 8월 맥주생산을 중단하고 생수캔 5만개를 만들어낸 벨기에의 앤호이저부시(Anheuser-Busch)의 사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앤호이저부시는 ‘버드와이저’ 맥주를 만드는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이다. 이들은 미 서부지역에 대규모 산불 발생 당시 이를 진압 중인 소방관들에게 지원하고자 수익과 직결되는 맥주 생산을 중단하고 생수를 만들어냈다. 지난 5월 텍사스 오클라호마주에 대형 폭풍으로 홍수가 발생했을 때는 식수 생산을 위해 조지아주 생산공장의 맥주생산을 전면 중단키도 했다. 당장 발생하는 손해를 감수하고도 나눔과 기부를 통해 기업의 책임을 실천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앤호이저부시가 생산하는 버드와이저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밖에 ‘빈곤완화, 보건, 능력배양, 교육’등 4대 핵심분야로 CSR을 전개하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폰(Grameen Phone)’, 빈곤 지역의 소규모 농가에 집중적으로 농업기술을 지원하는 스위스의 ‘네슬레(Nestlé)’ 등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CSR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례는 빈번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개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자리 잡았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지난 2012년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2020년 한국사회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한 미래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공정성 수준은 2020년이 되어도 10점 만점에 4.92점으로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항목 또한 4.48점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전파되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쯤에서 다시 영조시절 왕 스스로 행했던 근검절약과 그 기풍을 널리 실천하고자 했던 관리들, 일반 백성들에 대해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글로벌 경제 · 사회적 불균형이 심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상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의 공익은 내가 가진 것을 타인에게 베푸는 것에 그쳤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이상의 의식의 전환이 요해진다. 장기적안목에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업·개인·국가 등 각자의 입장에 맞는 대안이 필요한 때이다.

한편, 기업인, 사회 지도층들의 기부,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부자 자신의 이상 실현일 수도 있다. 그들이 개인적인 이상 ·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기부를 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기부행위는 공동체를 위해서는 ‘선(善)’이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2011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 대학원장 재직 시절 1,500억원 상당의 ‘안철수연구소’ 주식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는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숭고한 의미가 있으며, 여기에는 구성원 개개인의 자아실현은 물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보다 큰 차원의 가치도 포함된다고 믿어왔다. 공동체의 상생을 위해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본연의 역할인 이익 추구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기업, 기업인의 기부행위는 공동체 유지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영국 자선구호재단(CAF)이 2014년말 발표한 세계 기부지수에서 한국은 60위에 그쳤다. 미국(1위), 캐나다(3위), 영국(7위) 등은 물론 가나(54위)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변하고 있다. 2010년 CAF의 기부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81위 였지만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기부문화는 확산되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10여년 뒤엔 수위권에서 한국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업인, 사회 지도층들의 기부문화가 우리 모두의 기부문화 확산으로 연결되길 기대해본다.

*각자도생(各自圖生):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함

*사진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kea_almhult.jpg

https://ko.wikipedia.org/wiki/%EB%B6%80%EC%B2%9C%EC%8B%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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