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머릿속이 복잡해 시작했던 청소가 끝나가고 있었다. 몇 시일까. 그저 짐작만으로 한 밤 중이라고 생각하며 빗자루로 먼지를 끌어 모았다. 쓰레받기에 담긴 것들을 버리려다 말고 먼지들 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별 모양의 야광스티커였다. 노란 형광색의 엄지손가락보다 작은 그 별을 집어 들고 먼지를 털어내었다. 어디쯤에 붙어 있던 것일까 생각하며 방의 한쪽 벽면을 살폈다. 벽에 띄엄띄엄 붙어 있는 별들은 벌써 탈색이 되어 잘 뵈지도 않았다. 가장 높은 쪽에 붙이려 하다 보니 그 별은 가슴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은하수들과 동떨어진 저 위에 붙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따뜻한 등, 포근한 이불. 창문 너머에서 새어드는 은은한 달빛. 베개에 머리를 비벼대자 물씬 풍기는 샴푸냄새. 자리에 눕기 직전에 씻은 몸은 개운하면서도 몽롱했다. 그럼에도 잠은 여태 찾아오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도 없을 깜깜한 허공에 겨우 두 글자를 내뱉어 보았다. “힘 내.” 너무도 쉽고 허전하게 뱉어지는 이 말을, 어째서 말 하지 못했던 걸까. 전화기 너머에서 누나 목소리는 언제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가을날의 낙엽처럼 떨리고 있었다. “힘 내, 라고 말해줘.” 불 꺼진 방 안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을 동안에 걸려온 집 전화였다. “무슨 일 있어?” “그냥, 힘 내, 라고, 말해줘.” 간헐적으로 끊기는 목소리였다. 시간이 흐르고, 이내 들려온 것은 개새끼, 라는 말 뒤에 붙은 종료 음이었다. 컴퓨터 화면에 켜져 있던 게임을 끄고 씻으러 간 것이 몇 시간 전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대구로 올라가야 했던 누나였다. 한 번도 누나의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누나는 내 앞에서 항상 어른이었다. 내가 잘못을 했다면 나를 훈육시키고, 나의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바로잡아 준 것도 부모가 아닌 누나였다. 누나가 힘들어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불을 켰다. 불면증에 걸린 엄마가 이런 기분일까. 매일 밤마다 수면제를 삼키는 엄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지만, 3년간 보지 못한 눈꺼풀 위의 엄마 얼굴은 흐릿했다. 엄마와 불면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쯤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씩 웃었다. 눈 밑에 진 다크써클이 더욱 짙어졌다. 그 때 곰곰이 생각했더라면, 이혼한 뒤부터 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이혼한 아빠는 나와 누나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빠가 스스로 어떻게든 해 보려 노력한 지 일주일, 결국 아빠는 누나와 나를 할머니 집에 보내버렸다. 처음 보게 된 논과 밭들. 그로부터 벌써 9년이 흘렀다. 누나가 대구로 내려가기 전, 내게 말 못했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잠을 잘 못 이루는 것이나 쉽게 깨는 이유는 나의 기억에는 없는 누나의 기억 때문이라고. 누나의 설명은 길었다. 내가 아빠의 집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던 날, 누나는 나와 같은 이불 속에서 잠을 뒤척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가 술을 마시고 있는 아빠와 싸우기 시작했다. 거친 말들이 이물을 뚫고 들어왔다. 누나는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끝까지 고민하다가 한 선택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누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함소리가 잠잠해진 뒤 잠들었고, 일주일 뒤 누나와 나는 촌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누나는 울지 않았다. 어째서 이제야 얘기해 주는 거냐고도 묻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스스로 판단할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내게 이야기하며 속죄를 바란 거였다. 그 때 잠을 자지 않았더라면, 이혼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며, 내게 사과한 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미 두 세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커튼을 걷어 창밖을 살폈다. 구름 뒤로 달과 별들이 숨어버렸는지 빛 한자 없는 깜깜한 하늘이었다. 이대로 아침이 될 때 까지 잠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더 이상 늦는다면 몇 시에 일어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자 버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전화를 걸 까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지금 쯤 누나는 자고 있지 않을까. 눈을 떴다. 벽면에 붙은 형광색의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제야 아직도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몇 년간, 방 안에서 불을 켜지 않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만 했으니 별들은 빛을 받지 못했던 거였다. 초등학교 때였다. 누나가 사 온 형광별 스티커를 한 장씩 집어 들고 꼼지락 꼼지락 손을 놀렸다. 촌으로 내려오게 된 지 2년 째 되는 날이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울 때까지 붙여 보자는 누나의 말에 불을 꺼도 밤하늘처럼 반짝거릴 방 안을 상상하며 열심히 붙여댔던 것들이었다. 구할 방법이 없어져 계획을 미룬 틈을 타 찾아온 망각. 잊혀 버린 별들. 잊혀 갈 나날들. 잊혀져갈, 사람들. 몸을 옆으로 뉘였다. 나처럼 잠 못 이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있었을 때 작은 소리가 들렸다. 틱, 하는 소리였다. 물방울이 고인 물에 떨어지는 소리보다 더 작은 소리를 듣고 눈을 떴을 때, 바닥에 떨어진 야광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Y?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