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맥주의 역사 /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

지난 편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에일의 탄생까지를 알아봤습니다.

#4 맥주의 역사 / 에일, the beginning : https://www.vingle.net/posts/1172958

맥주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게 있죠.

맥주를 좋아하는 분들은 한번 쯤은 들어봤을 거예요. 맥주순수령!

맥주를 만들 때는 물, 맥아(싹 튼 보리), 홉 이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꽝꽝!

1516년 바이에른(독일의 뮌헨 지방)의 영주 빌헬름 4세가 공포한 법입니다. 법이니 지켜야겠죠? 안 지키면? 아래 그림처럼 쇠창살 우리 안에 가두어서 물에 담가버립니다.

확! 담가 불랑께!

효모파르퇴르 박사

사람 손가락

맥주 순수령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식품위생법이나 다름이 없지요.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온갖 재료로 장난쳐 승부하던 양조장이 오로지 주어진 재료만 가지고 맥주의 질로 승부하게 됩니다. 이 때 맥주의 양조 기술도 표준화되고 발달하게 되죠.

그렇다면 맥주 순수령이 이렇게 순수한 의도로 만들어졌느냐? 단점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이 세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사실 맥주 순수령이 공포된 의도를 보면 조금 얄미운 의도가 있습니다. 이 맥주 순수령을 공포한 건 바이에른의 영주였지요. 공포하기 전에는 밀을 첨가해서 만드는 바이젠(밀맥주)이 무척이나 인기가 많았답니다. 하지만 자꾸 업자들이 빵만들 밀도 부족한데 밀로 맥주를 만들어 버리니까 밀 값이 폭등하게 됩니다. 그래서 밀 값을 안정시키려고 맥주 순수령을 만든 거죠. 근데 웃기는 건 정작 바이에른 영주의 직영지인 바이에른에서만은 밀맥주를 만드는 걸 허락합니다. 독점이었죠. 그래서 밀맥주 앙조장은 지금까지도 독일에서는 바이에른 주에 다 몰려 있지요.

맥주 순수령이 나오고 난 뒤에 지역마다 특색이 있던 맥주들이 거의 대부분 멸종해 버리게 되죠. 맥주의 백화점이라고 하는 벨기에는 맥주 순수령의 영향을 받지 않은 탓에 정말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만든 수 많은 스타일의 맥주가 존재하지만, 독일에서 특색이 있는 맥주를 찾기란 정말 어려워요. 예를 든다면 쾰시, 알트 비어, 켈러비어, 라우허 비어(훈제 맥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이 맥주들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도 나중에 살펴볼게요.

이런 카레맛 맥주도 독일에서 나왔을지도... / 발라스트 포인트 인드라쿠닌드라(미국) / 같이 먹으면 좋은 음식에는 흰쌀밥과 갈비를 공식 추천하고 있음

이 맥주 순수령은 1993년에 돼서야 EU에서 비관세장벽에 해당한다고 폐기되었습니다. 이게 법으로 있으면 독일로 맥주를 수출하는 다른 나라들은 맥주 순수령을 지켜 팔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독일 본토의 맥주와 경쟁이 될 리가 없었지요.

맥주 순수령이 폐지가 되고 이제야 슬슬 독일에서도 맥주 순수령을 지키지 않는 맥주를 취급하는 양조장이 하나 둘 씩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이미 500년간 맥주는 맥주 순수령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독일 사람들에게 생소한 스타일의 맥주는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에 미나리 대신 고수를 넣은 매운탕이라든가, 브로콜리로 담근 김치, 올리브 장아찌를 만들어 판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폭삭 망하겠죠.

둔켈의 탄생

이런 맥주 순수령에 따라 제조된 맥주가 바로 둔켈입니다.

호프브로이 둔켈

쾨니히 루드비히 둔켈

유색인종

어디서부터 흑맥주인가?

이 둔켈은 맥주 순수령에 따라 제조된 모범생 같은 녀석에요. 그래서 그 당시 독일의 주력 맥주로 자리매김 하지요. 이 둔켈은 색이 어둡죠? 왜 그럴까요? 까맣게 태운 맥아를 쓰기 때문이죠. 나중에 맥주 만드는 공정을 다룰 때 또 자세히 알아보겠지만, 까맣게 태운 맥아를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서 최종 결과물인 맥주의 쓴맛, 커피맛, 보리 맛이 결정되고, 맥주의 색도 결정이 됩니다.

이 둔켈이 라거의 시초입니다. 17세기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 발달했고, 앞서 설명했듯이 동굴에 저장해(lagern) 낮은 온도에서 숙성하는 방식이어서 라거(Lager)라고 이름이 지어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색 라거와는 또 다르지요.

필스너의 탄생

플젠(Plzeň)

경수(硬水, 센물, hard water)연수(軟水, 단물, soft water)필스너(Pilsner)필센(Pilsen)필스너(Pilsner)

아름다운 황금색의 자태

둔켈과 달리 아름다운 황금색을 띠고 있어 식감을 자극합니다. 부드럽고, 산뜻하고 , 쌉싸래하고, 청량감 있지요. 이 맥주는 정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처음엔 체코 주변에 짜츠 홉과 연수가 나는 도시에서부터 양조되기 시작하더니 19세기 말에 가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베네룩스 3국 지방까지 양조장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는 너도 나도 자신들의 맥주에도 필스너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오잉? 필센에서 만든 것도 아닌데 필스너라니! 원산지 허위 표시지요. 억울했던 필센 시민 양조장은 상표를 가지고 법적 분쟁을 벌입니다. 뮌헨의 Thomass 양조장의 Thomass-Pilsner-Bier를 쓰지 못하게 해 달라고 하죠, 하지만 재판은 독일 뮌헨에서 진행이 되었고 판사는 독일의 손을 들어 줍니다.

이미 다들 쓰는데, 그냥 쓰게 하자. 이제 Pilsner는 맥주 브랜드가 아니라, 그냥 스타일을 의미하는 거다.

우리나라 부산어묵과 같은 판결이 내려집니다. 부산에서 생산되지 않은 어묵도 현재는 부산어묵이라고 표기할 수 있습니다. 부산식 어묵 제조 스타일을 의미하는 거라고 합니다.

우르켈(Urquell)원조 필스너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필스너 우르켈 / 진짜 원조 173년 전통 필스너 /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이 필스너 우르켈이 현대의 황금색 라거의 어머니입니다. 요새 수입가가 오르긴 했지만, 대형 마트에서는 할인을 많이 해서 개당 2,500원 꼴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 수입 맥주를 먹어보고 싶다고 추천을 해달라고 하면 제일 먼저 이 맥주를 권하고 있지요. 무엇보다 우리가 먹던 라거와 가장 가까워 거부감이 적고, 가격도 싸고,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필세너(Pilsener)필스(Pils)

너 고소!

필스(pils)아 황금빛 라거 필스너구나!

크롬바커 필스

필스너(Pilsner)킬리만자로의 표범

필스너는 크게 체코 필스너(Bohemian Pilsner)와 독일 필스너(German Pilsner)로 구분하는데, 독일 필스너는 체코에서 건너온 필스너를 말해요.

필스너는 이후 여러 가지 라거 스타일의 모태가 됩니다. 그래서 맥주 역사에 있어 필스너와 필스너 우르켈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전 편과 이번 편을 통해 맥주의 역사, 그중에서 에일과 라거가 어떻게 생겨 났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유익했나요? 물론 언급했던 맥주 스타일(둔켈, 필스너)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맥주 스타일이 있어요. 그런 것도 나중에 한 꼭지 씩 다루어 볼 예정이에요.

맥주의 구성 요소

다음 편에는 맥주가 도대체 뭘로 만들어지는지, 왜 그게 들어가는지 알아보도록해요.

물이 왜 중요한지, 맥아가 정확히 뭔지, 홉은 무슨 역할을 하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 효모는 맥주를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드릴 거예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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