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TV, 규제 부르는 ‘꼼수

‘처음처럼 쿨’ 16.8. ‘참이슬 16.9’ 16.9. ‘쏘달’ 16.9. ‘좋은데이’ 16.9. 이들 술의 공통점은 알콜도수가 17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숫자 17이 갖는 의미는 주류업계에서 큽니다. 방송광고규제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문제가 걸려있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17도 이상의 알콜도수면 방송광고 규제를 받지만, 그 이하면 TV광고가 가능하다는 뜻이지요.

■ 17도 이하면 주류의 방송광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주류회사들이 앞다퉈 저도주 술 경쟁을 벌이는 것은 방송광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1995년 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높은 도수의 음주를 부추기는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목적으로 알콜성분 17도 이상의 주류광고 방송은 금지돼 있거든요. 달리 말하면 17도 이하로 만들면 규제를 받지 않고 주류광고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대한보건협회 주류광고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IPTV의 주종별 방송광고에서 소주광고는 2014년 41.7%에서 올해는 54.7%까지 치솟았습니다. 대신 맥주광고는 같은 기간 58.3%에서 45.3%로 축소됐구요. 소주광고가 맥주광고 자리를 위협하는 한편, 저도수 소주 광고가 법망을 피해 버젓이 방송에 노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무학의 ‘좋은데이’는 올 상반기 방송에만 2000회 이상 노출됐습니다.

국민건강증진법이 1995년 제정된 이래 소주도수는 줄곧 내려왔습니다. 1973년 25도였던 소주 도수는 1998년 23도, 2006년 20.1도, 2008년 19.5도 등을 거쳐 현재는 16도 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소주와 청주가 확실한 도수 차이를 보였지만 요즘에는 별차이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최근에는 16도 아래 소주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롯데주류의 순하리(14도), 하이트진로의 자몽에 이슬(13도), 무학의 좋은데이 컬러시리즈(13.5도), 금복주 순한참(14도), 대선주조 블루로즈(15.8도), 블루자몽(14도)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여성층 겨냥한 저도주 광고공세의 문제점?

문제는 저도주 출시와 함께 술소비량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지요. 특히 가벼운 술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성층에서 저도주 소주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롯데주류의 순하리는 지난 3월20일 첫 출시이후 100일만에 누적판매량이 4000만병을 돌파했습니다.

무학의 좋은데이 컬러시리즈 역시 출시 한달만에 1000만병을 가볍게 넘어섰습니다. 하이트진로의 자몽에이슬은 출시 첫날 100만병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저도주 소주의 공세는 여성음주 인구를 양산하는 부작용 외에 여성의 알콜중독 가능성을 높이는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알콜분해 능력이 떨어져 중독되는 속도가 2배이상 빠르기 때문이지요.

더 큰 문제는 여성의 음주가 불임이나 기형아 출산의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6~2010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을 분석한 결과, 여성의 알콜성 정신장애 환자수가 2006년 1만1221명에서 2010년에는 1만4097명으로 25.6%나 증가했습니다. 특히 인구 10만명당 진료환자를 보면 50대이상에서는 여성비율이 남성보다 10배이상 높았습니다.

일부 여성단체에서 저도주 소주에 “여성의 음주는 불임이나 기형아 출산의 주원인이 된다”는 보다 강력한 경고문구를 붙여야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 저도주 소주에 대한 방송광고규제 신설해야

지난달 27일 국회에서는 ‘주류광고와 국민건강 국회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발제자로 나온 방형애 대한보건협회 기획실장은 “17도 이하의 주류에 대해서도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방 실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우리나라의 증류주 소비량이 최고 수준”이라며 “소주와 같은 증류주 소비를 부추기는 방송 및 통신에서의 광고는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청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IPTV가 아예 주류광고 규제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어요. IPTV의 경우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으로 묶여 광고를 제한하는 법 자체가 없어요. 방송법상 '방송'은 TV, 라디오, 데이터방송, 이동멀티미디어방송으로만 분류돼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IPTV에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와 청소년이 시청할 수 있는 등급의 콘텐츠에 한해 주류광고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대한보건협회 모니터링팀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유로모니터의 2012년 조사에서 전세계 180개 증류주 가운데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각각 판매량 1, 3위를 차지했다고 하네요. 거의 한국에서만 팔리는 소주가 전세계 내로라하는 술을 제치고 1등과 3등을 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주류광고에 대한 새로운 규제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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