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슈미트의 사망

세상에, 아직 살아 있었는지도 몰랐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가 오늘 사망했다. 안그래도 최근에(참조 1) 슈미트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기는 했다. 슈미트는 우리에게 친숙한 독일 총리(가령 아데나워, 브란트, 콜, 메르켈)에 들어가지 않는다(참조 2). 하지만 그는… CDU/CSU가 이길 수 없는 갓미트(…참조 1)였다.

왜그랬을까? 빌리 브란트는 모두가 다 아실 것이다. 동방정책(오스트폴리틱)도 모두가 다 아실 텐데, 이게 당시 독일에서 환영받지는 않았었다. 당연하잖나. 냉전중인데 말이다. 그래서 브란트에 대한 재신임투표(Konstruktives Misstrauensvotum)까지 일어났었는데…

딱 2표 차이로 브란트는 살아 남았었다(참조 3). 하지만 2년 뒤 브란트는 결국 귄터 기욤 사건(참조 4)으로 물러났었고 덕분에 총리에 올랐다. 그때가 1974년. 바로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땅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이다. 불독 협력이 본격적으로 가동한 것도 데스땅에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털어넣을 정도로 친한 관계가 그 기반이었다. (이 관계는 후에 콜-미테랑으로 이어진다.)

위에서도 얘기했듯, 당시 슈미트가 이끄는 SPD-FDP 연정의 힘은 강력했다. CSU가 잠시 깽판을 치려 했지만 못 쳤던 건 이전에 얘기했다(참조 1). 그러나 브란트에게도 실패했던 재신임투표 때문에 어이 없이 총리에서 물러나는 (지금까지 독일에서) 유일무이한 사례가 헬무트 슈미트였다.

그 자신이 나치(!) 철십자훈장을 받았던 슈미트는 좌파기는 해도 적군파에게 강경하게 대하고 유로미사일(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이다) 배치를 지지하는 등 전형적인 서방 지도자로 서독을 통치했었다. 당연히 SPD 좌파들은 그를 싫어했었는데, 연정을 맺고 있던 FDP 또한 그의 경제정책을 두고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때 재신임투표를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헬무트 콜이다. 그는 FDP를 CDU/CSU쪽으로 움직이는데 성공하여 SPD/FDP 연정을 무너뜨렸다. 슈미트는 쓸쓸히 물러날 수 밖에 없었고 말이다.

사실 그의 총리 재임기간 8년(1974-1982)은 눈여겨볼 만한 점이 많다. 이스라엘과 딱히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고, 그는 터키의 EU 가입도 반대했었다. 독일 국방군의 해외 파견도 반대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뭣보다 눈여겨볼 만한 점은…

진짜 골초였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하든, 사진을 찍히든 말든 그의 한 손에는 항상 담배가 물려 있었다. 골초 여러분들께 오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있다. 아내와의 사별 이후 그는 90대 들어서 애인을 하나 새로 맞이했다.

그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수줍게(…) 사랑을 고백했었다(참조 5).

----------

참조

1. CDU와 CSU(2015년 11월 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639084239831?pnref=story

2. 물론 세대 탓도 있다. 슈미트를 생생히 기억한다면 분명 50-60년대생일 가능성이 높다(이거슨 편견?).

3. 상당히 아이러니한데, 불신임을 추진한 쪽은 브란트 스스로가 속해 있던 SPD였다. 반면 CDU/CSU 쪽 의원들은 대거 “결석”을 택했었는데… 나중에 드러나긴 했지만 동독(!!)의 슈타지가 당시 의원들을 매수하여 “결석”으로 끌고간 증거가 나오기도 했었다.

4. 총리의 비서가 동독의 스파이였다! 재신임 투표까지 살아났던 브란트도 이 사건만은 버틸 수가 없었다. 도대체 당시 분데스탁은 동독 스파이들 천지였을까?

5. Ex-Chancellor Schmidt, 93, in love again: http://www.thelocal.de/20120804/44159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