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차원

#삼차원 흐릿한 하늘이다. 비가 올 것 같아 걸음을 재촉하며 걷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여보세요?" "이제 퇴근하냐?" "어, 넌 어디냐?" "니 뒤." 고개를 돌리니,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친구놈이 보인다. "미친놈. 전화비 아깝게 뭐하는 짓이냐." "뭔가 아련하잖냐." ".... 방금 진짜 소름 쫙 돋았어." "부끄러워하긴." "정신은 회사에 두고왔냐?" "어, 초멘붕이라 회의실에 놓고 왔다. 일찍 퇴근한다?" "몸이 안좋아서, 그냥 빨리 나왔어. 내일 몰아서 할라고." "늙어서 그래. 비 오려니까 막 쑤시지?" "니 얘기 하는거냐?" "야, 넌 그게 문제야.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자기는 아닌척 얌생이처럼. 쿨하게 인정하라고. 저기 불꺼진 집들 다 우리처럼 늙어가는 회사원들인데, 아, 다같이 등골이 휘며 늙어가는구나. 안구에 습기가 막 차오른다." "...꼴갑을 떤다, 아주. 그럼 불켜진 집들은 다 백수들이냐?" "아마도......." "에휴." "근데 웃기지 않냐?" "안 웃긴대." "웃기다고 해줘." "그래. 근데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 "우리가 12살 어렸을땐, 저 불꺼진 집들을 보면서 대학 들어가려고 아둥바둥 야자하고, 학원가느라 집에 못들어가고 있는 고딩 친구들을 떠올렸었잖냐. 근데, 지금은 마냥 불쌍한 사회인들 밖에 안 떠오르니, 참." "다 그렇지 뭐." "참 좁아. 아무리 긴 세월을 지내도 볼 수 있는 건 딱 눈앞에 요만큼, 도대체가 넓어지지가 않는거지." "그러니까 인간이지." "사람을 볼 때도 그래. 딱 눈에 보이는 그만큼만 보다가, 흠칫 놀라는게 한두번이 아냐. 이정도 살았으면, 딱 보면, 척 알 수도 있을텐데 말야. 이놈의 뇌구조는 왜 삼차원으로 돌지를 않는 걸까." "상상력이 부족해서." "지얘기 하고 있네." "난 상상력 안 필요해." "어." "그때그때 생각하면 되잖아. 이런 모습도 있구나, 저런 모습도 있구나. 이런 삶도 있구나, 저런 삶도 있구나. 규정해놓지 않으면,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거야. 사람이든 상황이든, 유연하게. 근데 사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제일 힘들지." "가두지 않고 살고싶다. 사람도, 상황도." "그래. 그럼 일단 나부터 좀 자유롭게 해줄래?" "자기 나한테 벌써 싫증난 거야?" "............" "미안." "죽일뻔했어." "어. 느껴지더라." "왠만하면 여자친구한테도 그 표정은 짓지 마라. 정이 뚝 떨어지겠더라." "좋은 충고 고맙네, 친구." "그래." 한 살 더 먹으면, 아니 그보단, 오늘의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 내일 눈을 뜬다면, 부디 내일은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기를, 아니, 오늘보다 하나 더 볼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하나씩 덧붙여져 삼차원이 되기를. 내 앞의 너도, 내가 사는 이 세계도. Copyright ⓒ 2013 by log916(Boram Lee)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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