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최근까지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블로그 이웃님의 소개로 알게 되어 읽게 됐습니다. 대단한 책이네요. 제가 막연하게 혼자 깨달아왔던 성에 대한 철학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할까요. 소중한 책입니다. 저에겐.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작가소개부터.. 베티 도슨(Betty Dodson) 성교육자 겸 미술가, 저술가로서 여성 운동을 해 오고 있는 베티 도슨 박사는 여성의 성해방에 있어서 '자위'의 중요성을 70년대 초부터 인식, 지금까지 전시와 슬라이드 쇼, 워크숍, 강연, 저술활동 등을 통해 '자기 사랑' 운동을 선구자적이고 대담한 방식으로 펼쳐오고 있다. 그녀는 성을 금기와 부정의 대상에서 긍정적인 대상으로 바라 볼 것을 제안하고 있으며, 자기 성애가 기쁨과 쾌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자기 몸을 이해하고 자기 인식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저서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원제:Sex for One)』는 이제 여성학의 고전으로 통하고 있다. 그녀의 나머지 저서와 최근 활동과 같은 자세한 사항은 그녀의 오피셜 사이트인 'http://www.bettydodson.com'에서 볼 수 있다. (출처:교보문고 저자소개)
이 책은 이미 페미니즘계의 고전이 된 책으로 다음과 같이 주제를 요약할 수 있다. "자위는 최초의 자연적인 성적 활동으로, 우리의 에로티즘을 발견하는 길이고, 우리가 성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배우는 길이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자기 존중을 실천하는 길이다" 베티 도슨에 따르면 "당신의 첫 경험은 언제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파트너와의 첫 성관계를 가진 시점을 떠올리지 말라고 한다. 자기 스스로 내 몸에 관심을 가지고 내 몸을 사랑했던 시발점이 바로 나의 '첫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첫 경험은 너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어느 시점에 TV에서 나오는 외국영화의 한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묶여서 고문당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고, 그 어린 꼬꼬마 소녀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초보적인 자위를 했던 추억이 생생하다. 아마 어린 시절의 첫 성적 자극이 피학적/본디지 성향의 이미지였기에 결국 성인이 된 지금의 내 성적 취향이 이렇게 결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남녀 불문하고 어렸을 적, 프로이트적 용어로는 "남근기"에 자신의 몸을 탐색하는 의미의 자위는 자연스럽게 한다고 하니 내가 딱히 조숙했다거나 비정상인 것은 아니다. 그 때 이후로 오히려 성인이 될 때까지 내 몸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나 성에 대한 과도한 흥미는 전혀 없이 평온한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냈으니까. 요즘은 중고생들도 많이 성경험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워낙 시청각 교재(?)가 주변에 넘치기에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쪽 지식을 쌓을 수 있는데.. 내가 만일 요즘 중고생 시절을 보낸다고해도 딱히 성에 관심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암튼 매우 pure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본격적으로 몸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학 들어간 이후다.
베티 도슨은 먼저 자신의 성기를 긍정하고 사랑할 것을 주문하는데, 굳이 어려운 질(vagina), 음문(pudenda)이나 고양이인지 성기인지 중의적인 푸시(pussy) 대신에 보지(cunt)라는 당당한(?) 이름으로 부른다. 비속어의 느낌으로 쓰고 있는 보지(cunt)가 실제로 자기 성기에 혐오감을 가진 선입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내 보지에 대한 긍정은 자신의 보지와 제대로 인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난 운좋게도 대학 신입 교양과목의 과제물로 억지로(?) 내 다리 사이의 보물을 스케치하는 경험을 가졌고 결과적으로 그 경험은 이후 여성으로서의 자존감과 확고한 성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시행착오와 혼돈의 시간들은 필연적으로 함께 했지만.
이 책에는 화가인 베티 도슨이 직접 그린 수많은 여성들의 리얼한 보지 일러스트가 실려있다. 얼굴이 제각기 다르듯 보지 또한 얼굴 이상으로 천차만별이고 그 어떤 보지도 '이상한' 보지는 없다. 베티 도슨의 우아한 표현에 의하면 "미술사의 시대 구분 개념을 빌어 보지를 분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좌우 균형이 돋보이는 고전적 양식의 보지, 복잡하게 주름이 잡혀 있는 바로크 양식의 보지, 아치처럼 벌어진 고딕 양식의 보지, 선이 분명한 현대적인 덴마크 양식의 보지가 있다. (후략)" 분명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수의 여성들은 자기 보지가 위의 분류 중에 어떤 양식에 속하는지 감이 없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남성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외부로 보이는 자지를 보고 만지며 자신의 성기에 대해 익숙해지지만, 여성들은 심한 경우 평생 자기 보지 모양이 어떤지 모르고 세상을 뜨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 교육의 영향으로 아래 쪽은 함부로 건드리거나 입에 담으면 안되는 곳으로 성역화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곳은 소중히 간직했다가 첫날밤 개봉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내 보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후에야 제대로 된 자위로 나갈수 있다. 그동안 자위는 역사적으로 나쁘고 해로운 것이라는 오명을 써왔고, 그 오명을 벗은지 얼마되지 않는다. 인터넷을 보면 아직도 자위에 대한 죄의식과 해악성을 간증하며 금욕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많다. 베티 도슨이 생각하는 자위,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자위는 사춘기의 일시적인 손장난도, 이성애/동성애 섹스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체품도 아니다. 바로 이 글을 모두에 적었던 바와 같이 궁극적인 자기 사랑이고 자기 존중이라 하겠다. 저자는 실제로 보지 그림이나 자위행위를 묘사한 작품들을 갖고 전시회를 시작해 호평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고, 수십년간 자위행위 워크샵을 통해 실전적인 자기 사랑의 방법론을 전파해 왔다. 바이브의 예찬론자로서 스스로 오르가즘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가지 효과적인 방법을 공유해 왔다. 남성과의 삽입섹스에서 결코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고 거짓 만족의 가면을 쓰고 살아온 여성들이 자신과의 섹스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끼고 자존감을 찾는 것, 그 지점이 바로 자위 해방을 통한 페미니즘에 도달한 지점이다.
50년전에 이런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공표하고 꾸준히 실천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1세기의 내가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찾아낸 길이 사실 반세기 전 지구 반대편의 한 여성은 대중을 향해 전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기 보지를 사랑하고, 자위를 긍정하며, 궁극적으로 자기성애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길은 실천의 영역이고 경험의 영역이다. 책으로 읽는다고 하루 아침에 이 모든 내용을 내 것으로 흡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오로지 체득.. 몸으로 배우는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접하고 이 책을 읽으실 분들도 저자나 내가 하는 얘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성은 은근히 숨기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드러내서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치관과 세계관의 영역이므로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못하고는 선택의 문제니깐. 매트릭스에 들어가기 전 빨간약과 파란약을 선택받는 네오처럼 말이다. 결국 나는 신세계를 여는 쪽을 택했고, 그 후로의 세계는 이전과 달랐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