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 리더십의 세 가지 비밀은...

- 글 | 최인준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지난 9월로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지 1년이 됐다. 1년 동안 남긴 뛰어난 성과로 한국 사회에는 그의 남다른 리더십을 배우려는 열풍이 뜨겁다. 이런 움직임은 스포츠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 못지않게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는 ‘슈틸리케 리더십’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9월 23일 서울 서강대에서 열린 ‘STAR 최고위 과정 오픈포럼’의 슈틸리케 감독 특강에서 ‘슈틸리케 따라잡기’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변화하는 환경 속의 리더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그의 강연에는 수백 명의 수강생이 몰렸다.

이날 슈틸리케 감독은 큰 나무가 도로 한복판을 막아선 영상을 수강생에게 보여주며 강연을 시작했다. “모두가 이동하지 못해 불편해 하자 한 소년이 나서서 나무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지켜보기만 하던 주변 어른들도 합심해 달려들어 나무를 밀어 이동시켰습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영상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리더십을 설명했다. “리더십이란 본인이 자리한 위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먼저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는 것(‘실천하는 리더십’)이다. 리더는 항상 구성원과 조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끌어갈지를 고민해야 한다(‘비전 제시의 리더십’)”고 밝혔다.

또 “선수와 코치들이 자주적이고, 책임감 있게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하도록 보장하는 게 감독의 일이다. 그들은 나의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믿음의 리더십’)”고 말했다. 이 말 속에 나타난 슈틸리케의 세 가지 리더십을 살펴보자.

▲ 슈틸리케 감독이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지시한 뒤 돌아가고 있다. photo 연합

발품이 가져온 매의 눈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초기 ‘운장(運將)’에 가까웠다. 이정협·이재성 등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유망주들을 깜짝 발탁했고, 그때마다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요행으로 선수를 뽑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슈틸리케 감독만의 남모를 부지런함이 있었다.

그가 ‘매의 눈’이 된 비결은 ‘발품’에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을 선발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선수들을 직접 관찰했다. 지방 출장 횟수만 40회 이상, 1만5000㎞가 넘는 거리를 돌아다닌 슈틸리케 감독의 강행군은 많은 국내 선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K리그 클래식은 물론 챌린지(2부 리그)와 대학 리그, 유소년 축구 현장까지 찾았다. 경북 상주와 전북 전주만 각각 네 번을 갔는데 그렇게 발굴한 선수가 상주 상무의 이정협과 전북 현대의 이재성이다. 둘은 슈틸리케 감독이 배출한 최고의 샛별로 꼽힌다.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를 선발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지난해 10월 K리그 챌린지 경기를 처음 찾을 당시 신태용 대표팀 코치(현 올림픽대표팀 감독)가 한 선수를 가리켜 “대표팀에서 미드필더로 뛰었던 선수”라고 설명하자 슈틸리케 감독은 바로 말을 끊었다. “나에게 선수들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말아 달라. 선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내가 편견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다.” 이름값이 아니라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눈으로 직접 본 실력으로 판단해 선수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뉴페이스’를 발굴해 대표팀에 새 활기를 불어넣은 건 슈틸리케 감독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그가 ‘원석’을 발굴하는 대상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 리그도 가보고, 필요하면 유럽으로 날아가 해외파의 기량을 점검하기도 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고 있는 수비수 홍정호는 “슈틸리케 감독이 아우크스부르크의 마르쿠스 바인지를 감독과 나에 대해 통화하는 것 같더라”며 “슈틸리케 감독은 바인지를 감독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명확한 메시지… 실학의 축구

슈틸리케 감독은 히딩크 감독처럼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진 않지만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안다. 포털사이트에 ‘슈틸리케 어록’을 검색하면 수많은 글들이 쏟아진다. “전술은 승리를 위한 도구일 뿐 결국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공격을 잘하는 팀은 승리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한다” 등 그가 취임 후 남긴 말들은 하나같이 경기 내용과 상관없이 가장 실용적인 축구로 승리를 거머쥔다는 ‘실학(實學) 축구’로 연결됐다.

실제 그는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2015년 1월), 동아시안컵 우승(2015년 8월) 등 뛰어난 성적으로 이를 증명했다. 지난 1년간 슈틸리케 감독은 A매치 18경기를 치러 14승3무1패의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18경기 가운데 무실점은 15경기(83.33%)였다.

그는 아시안컵에서의 선전으로 ‘다산(茶山) 슈틸리케’라는 애칭도 얻었다.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아도 꾸준히 승리를 이어가는 슈틸리케호(號)의 축구가 실용을 추구하는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實學)과 비슷하다며 팬들이 만든 말이다.

실전에서 빛을 발휘한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은 국내 경영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인 허창수(67) GS그룹 회장은 올해 초 그룹 신임 임원과의 만찬에서 “슈틸리케 리더십을 주목하라”고 당부했다. 허 회장은 슈틸리케 감독의 실용주의 축구를 예로 들면서 “무조건 많은 골을 넣는 화려한 경기를 하기보단, 한 골을 넣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실용주의 리더십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비전’과 ‘목표’가 분명한 리더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도 유머와 여유를 보이며 조직을 안정시킬 줄 안다. 호주 아시안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쿠웨이트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앞서 오만과의 1차전에서 부상으로 이탈한 이청용을 포함해 손흥민, 구자철, 김진현, 김창수 등이 감기에 걸리며 5명의 주축 선수들이 쿠웨이트전에 나서기 어려워졌다.

코칭진을 비롯한 선수단은 초긴장 상태였다. 한국 축구가 국제대회에서 5명을 한 번에 ‘논 플레이어(Non-Player)’로 등록하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 혼자 여유가 넘쳤다. 평소대로 아침을 즐긴 그는 전날 열이 40도까지 오르며 가장 심하게 앓았던 손흥민이 부축을 받으며 식당으로 걸어오자 “헤이! 써니(손흥민의 애칭), 유 캔 플레이 투데이(You can play today·오늘 뛸 수 있지?)”라며 농담을 던졌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 한마디에 가라앉았던 대표팀 분위기도 다시 살아났다. 다행히 한국은 2차전에서 쿠웨이트에 1 대 0으로 승리를 따냈다.

이 장면을 본 장외룡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은 “중요한 국제대회에서 5명이 한 번에 못 뛰는 상황인데 어지간한 배짱 없이는 저런 행동이 나오기 쉽지 않다”고 했다.

백미는 따뜻한 인간미

슈틸리케 감독은 스포츠 지도자 중에서도 독특한 존재다. 보통 스타 선수 출신은 지도자로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다. 워낙 선수 시절 대단했기 때문에 휘하의 선수들도 자신만큼 하리라는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후보 선수들의 부진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서 8시즌 활약하며 라 리라 3연패(1978~1980년), UEFA컵 우승(1985년)을 달성했다.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도 네 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과거 화려했던 선수 시절의 자신을 잣대로 현재의 선수들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의 이런 모습은 ‘믿음의 리더십’으로 잘 나타난다. 슈틸리케 감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라도 최근 기량과 컨디션이 좋으면 깜짝 발탁해 중용한다. 동시에 한번 그라운드에서 검증된 선수는 잠시 부진하거나 부상이 있더라도 꾸준히 대표팀에 승선시켜 기회를 준다.

슈틸리케 감독의 믿음과 신뢰는 지난 8월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에 나설 대표팀을 선발할 때도 나타났다. 당시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부진했던 기성용·손흥민·이청용 등 해외파들을 대거 발탁한 것이다. 그는 “감독으로 이들의 능력에 항상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전에도 그들은 믿음에 보답하는 플레이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학연·지연이 아닌 철저히 능력과 기량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선수들 머릿속에는 ‘소속팀에서든 대표팀에서든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만 올리면 나에게도 기회가 온다’는 믿음이 확고해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뿐 아니라 코치진에게도 ‘무한 신뢰’를 나타낸다.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일을 해본 축구인들은 그를 ‘똑·게형 리더’라 일컫는다. ‘똑똑하면서 게으른 리더’의 줄임말로 빈틈없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만 나머지는 아랫사람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을 시작하면 처음엔 그라운드를 돌아다니며 큰 방향을 잡아주지만 나머지는 코치에게 일임할 정도로 역할 분담을 강조한다. 그만큼 코치진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신태용 코치는 ‘큰형’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표팀에 있던 박건하 코치에겐 선수들의 컨디션을 챙기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을 최근 7년간 보좌해온 카를로스 아르무아 코치(아르헨티나)는 피지컬(체력) 담당이다.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의 특징은 ‘따뜻함’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0월 파라과이전부터 지난 10월 자메이카전까지 모든 경기에서 종료 휘슬이 울리고 나면 그라운드 위 주전 선수는 물론 벤치에 대기하고 있던 후보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다. 폭우가 쏟아져도 피하지 않고 선수들과 비를 맞으며 함께 뛴다. 경기장에 입장하는 선수들과 일일이 손뼉을 마주치며 기(氣)를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난 8월 동아시안컵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준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한 슈틸리케 감독의 말은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그는 아시안컵 당시 준우승 후 아쉬워하는 대표팀과 국민들을 향해 한국말로 또박또박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사전에 무대 뒤에서 통역과 함께 수십 차례 ‘리허설’을 한 것이다.

그는 선수들이 부진해도 로커룸에서 화를 내는 대신 말을 아끼거나 선수를 따로 불러 격려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에서 사실상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정협이 긴장한 모습을 보이자 “넌 항상 하던 대로 편하게 부담없이 해라. 잘하든 못하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부담감을 덜어줬다.

그는 언론사와의 자리에서도 “사실과 다른 기사로 대표팀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선수 보호에도 앞장서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육군 사단장 출신인 유대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신뢰와 헌신을 몸소 보여준 슈틸리케 감독이 군대 지휘관으로 전쟁을 이끈다면 부하들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1주년이 지난 슈틸리케 감독은 짧은 시간 많은 성과를 올렸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는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기로 돼 있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때문에 팬들은 앞으로 그가 보여줄 ‘슈틸리케호 2.0’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 원문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3&nNewsNumb=20151118772&nidx=18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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