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헬조선②] 대한민국에서 '취준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취업준비생=백수. 우리 머릿속에 자동 인식되는 공식 아닌가. 그러나 ‘여유롭고 잉여로운’ 백수로 취급당하기에 그들은 너무 억울하다. 무언가를 해내야 할 시기이지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사람을 옥죄는가. 겪어본 이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특히 ‘헬조선’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준말)으로 살아가기란 보통 고단한 일이 아니다. 취업전선의 중심에 선 청춘 다섯을 만나 대한민국의 취업현실과 각종 어려움에 대해 들어봤다.

# 인물소개


슈슈(30세) : 독문학 전공. 지난 2월 대학 졸업. 중견기업 인턴 경험. 영업, 마케팅계열 취업 준비.


자몽(25세) : 영문학 전공, 교직 이수. 지난해 8월 대학 졸업. 계약직교사 1년 경험. 사립학교 교사시험 준비.


차비(23세) : 건축학 전공. 대학교 4학년. 재수, 휴학경험 없음. 건설사업관리, 건축경영사업관리 쪽 취업 준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해외기업, 외국계기업에 관심.


단팥빵(29세) : 국문학, 문헌정보학 복수전공. 대학원에서 국어교육 전공. 지난해 8월 대학원 졸업. 중등임용고시(공립) 준비. 현재 과외교사.


실버스타(26세) : 미술전공. 지난 8월 대학 졸업, 일반행정공무원 준비 중.

Q. 취업준비,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면?



자몽 : 계약직의 불안감, 극소수 채용인원


가장 어려운 점은 채용인원이 정말 적다는 거야. 교사라는 직종이, 뽑는 인원이 엄청나게 적어. 기본 몇 십 대 일이야. 정규직 되기는 엄청 힘든 실정이지. 나는 지난해 대학졸업 이후 두 학기를 꼬박 계약직 교사로 살았어.


놀라운 사실이 뭔지 알아? 40대 계약직 교사도 꽤 많다는 거야. 나 역시 임용시험에 계속 떨어진다면 계약직을 이어갈 예정이야. 지금은 실업급여에 과외비로 학업을 이어가지만 돈이 떨어졌을 때 기약 없는 공부에 올인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커. 단 계약직으로만 쭉 산다면, 늘 계약만료에 대한 불안과 조바심을 안고 살아야겠지.

차비 : 불확실한 채용기준


나는 두 달간의 인턴경험이 있고 건축분야 전국대회 공모전 2등 수상경력도 있어. 영어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850점을 넘긴 상태고. 그런데 최근 대기업에 넣은 서류 4개 모두 탈락했지. 역시나 스펙이 부족한가봐. 토익도 거의 만점 수준이어야 할 것 같고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 첨삭도 받아봐야 하려나봐. 제2외국어도 하나쯤 해야겠어. 영어는 누구나 잘 하잖아. 스펙 만들기, 정말 어마어마하게 어려워. 기업에서는 휴학, 재수 경험이 없으면서 원하는 스펙을 완벽히 갖추길 원해. 토익, 인턴, 봉사활동. 그게 가능해?


제일 답답한 것은 내가 떨어진 이유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거야. ‘귀하를 뽑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왜 뽑지 못하는 거냐고. 너무 답답해서 인사팀 사람에게 자소서 쓰는 팁을 물었더니 솔직히 ‘운발’이래. 자소서를 엑셀로 돌려 그 해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인재상 관련 키워드를 거른대. 이후 과정도 거의 운발이래. 할 말 없지 뭐.


또 떨어지면 그냥 교수님께 부탁해 해외기업으로 나갈래. 오지로 가도 상관없어. 경력 쌓다 중동으로 넘어가고 싶어. 한국을 빨리 떠나고 싶어.

슈슈 : 살릴 수 없는 전공, 꿈과 다른 기업문화


나는 문과 출신이야. 와. 문과가 이렇게나 취업에 쓸모없는(?) 학과야. 딱히 따야 할 자격증도 없고 토익 900점 넘겨봤자 만점인 아이들이 수두룩하지. 일단 학과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원서를 넣고 있어. 나랑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의 회사라 할지라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취업이 절실하잖아. 중견, 대기업 사이쯤 되는 곳이라면 그냥 무조건 넣어볼 생각이야.


나는 사실 최근까지 탄탄한 브랜드 회사에서 전략기획파트 전환인턴으로 근무하다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그냥 나와 버렸어. 제조업 등 분야는 군대문화가 강하고 영업, 기획파트는 더 심해. 매번 이유 없이 욕 먹는 거야. “대가리에 총 맞았냐 xx새끼.”


어쨌든 취업시장에 일찍 뛰어들어 부딪히다보면 시장에서 정확히 뭘 요구하는지 대강 알게 되고 그걸 준비할 시간이 많아지긴 해.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어린 대학생들한테 일찌감치 취업준비에 뛰어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네. 청소년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열심히 준비하고 졸업할 때쯤 꿈꿔왔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사회여야 하는데, 공부하고 싶은 ‘학문’ 배우러 대학 가서 저학년 때부터 사회나 산업현장에서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되는 현실이 웃기잖아. 하고 싶은 공부하면 배곯아야 되고, 배 안 곯으려면 일찌감치 취업에 필요한 준비부터 하는 현실. 이게 헬조선의 정의야.



단팥빵 : 극소수 채용인원,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감


전국에 국어교사를 꿈꾸는 고시생이 몇 명인지 알아? 2만명이야. 1년 기준 채용인원은? 299명. 이 자체가 자칫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느낌을 줄 때가 많아. 임용시험이 다가올수록 얼마나 불안한지. 나는 공립학교를 원하지만, 사립학교에 들어가고 싶은 경우 돈도 많이 필요하고 연줄도 필요하다고 알고 있어. 차라리 ‘2억 주세요, 제가 당신 채용할게요’ 하면 집을 팔아서라도 내놓겠는데 그마저 기약 없는 일이지. 서울 사립학교 시세(뒷돈)가 1억 7000만원이란 소리를 들었어. 무려 내정자도 있다고.


정작 부모님보다 주위 사람 시선 때문에 괴로워.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괄시, 멸시하는 사람들도 많아.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놀아?’, ‘석사 나왔다며 아직도 놀아?’ 뭐가 그렇게 급한지. 뭐 그렇게 딱딱 정해진 시기와 기준이 있는 건지.


공부가 힘드니까, ‘나라에서 권장하는’ 한국어교사로 빠져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생각보다 수요도 없고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았어. 기업에서는 당연히 실패한 임용고시생 따위 원하지 않을 테고. 교육대학원 석사는 필요 없대. ‘많은 돈 주면서 굳이 쓸모 없는 너희를?’ 느낌이야. 출판사도 내가 고학력이라고 받아주지 않더라.

실버스타 : 살릴 수 없는 전공


나는 9급 일반공무원을 준비 중이야. ‘예체능 했던 애가 왜 공무원을 준비하느냐’는 질문 많이 받았어. 스스로에게도 항상 하는 질문이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에 들어갔는데 4년 다니면서 인문처럼 예체능도 우리나라에서 직업으로 성공하기 힘든 분야라는 걸 절감했어.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워낙 까다롭고 외국 박사학위는 필수더라고. 능력을 떠나 내가 그 길을 오래 준비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고 그냥 아빠처럼 복지혜택 많고 연금 나오는 공무원이 최선의 길 같이 느껴졌어. 웹디자인 분야로 취직한 동기들 얘기 들어봐도 어차피 꿈꿔왔던 것과는 먼 현실인 것 같아 차라리 잘됐다 싶어.


Q. 취업준비에 경제적 부담도 커?



슈슈 : 사교육시장을 잠식했어. 취업=돈이야. 나는 상반기 공채에 인적성검사에서 다 탈락했거든? 대체 소금물 농도를 내가 왜 구해야하는지 모르겠는데, 다 공식이 있더라고. 돈 내고 강의 들어야지. 자소서 첨삭도 돈 내야하고 면접도 돈 내야 코칭해주더라. 스펙이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돈이야. 대학시절 교수님들은 취업과 관련 없는 과제만 주구장창 내줬는데.


주변 친구는 학비 내기가 빠듯해 국가장학금으로 대충 때우고 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또 알바를 뛰었지. 취업하려면 학원을 다녀야하는데 학원비가 없어서 추가알바. 결국 사금융에 손을 대더라. 각 회사마다 다르게 준비해야하고 다르게 돈을 써야해. 강남 유명 취업 컨설팅학원은 취업될 때까지 전부 책임져준다며 280만원을 내래.


차비 : 어휴. 자소서 한 번 봐주는데 7~8만원씩 받더라.


슈슈 : 전문가한테 받으면 뭐해. 떨어졌어. 그냥 불안하니까 해보는 거야. 불확실함에 대한 투자.

Q. 나이, 성별이 취업에 큰 걸림돌이 돼?



슈슈 : 1번이 돈이라면 2번은 나이지. 여성의 취업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다. 들어봤어? 24일(24살)에 제일 잘 팔리고 25일(25살)도 팔리고 26일(26살)에는 아무도 안 산다는 의미야. 나이문제도 진짜 심각해 .


차비 : 28살 친한 언니는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나이 때문에 다 걸린다고 하더라.


슈슈 : 나이 찬 여자동기들이 면접장에서 꼭 듣는 말. ‘몇 년 다닐 수 있어?’, ‘결혼하고도 다닐 거야?’ 육아휴직 때문에 일 펑크날까봐 엄청 걱정되나봐. 물론 남자들한테도 적용되는 항목이야. 상명하복 문화에 아랫사람에게 막말도 해야하고 실컷 부려먹어야 하는데 나이 많으면 껄끄럽잖아.


자몽 : 경영학 전공하고 싶었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냥 교사 해야겠다 결심했었어.

Q. 원하는 일에 대한 포기, 아쉽지 않아?



단팥빵 : 우리나라에서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너무 여건이 안 좋아. 나는 원래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M사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는 내 친구가 한 달에 받는 돈이 얼마게. 고작 70, 80만원이야. 밤샘하느라 그마저도 쓸 시간이 없대.


차비 : 모두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할 틈도 안 주고 ‘해야 한다’는 지시만 내려. 그러니 다들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고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조급함만 생기는 거야. 꿈이 사원증 걸기라니. 우스운 일이지.


슈슈 : 친한 캐나다 형이 이런 얘기를 해줬어. 호주나 캐나다에서 배관공, 용접, 트럭 쪽 일을 하면 어느 정도 괜찮게 살 수 있다. 가고 싶으면 가라. 근데 이렇게 덧붙이더라. “한국에서 대학 나온 네가 용접하고 배관 고치면서 살 때 쏟아질 사람들의 시선, 감당할 수 있겠니?” 우리나라에서 남의 시선,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

Q. 뭐가 달라져야 취준생이 조금 덜 고통스러울까?



단팥빵 : 정부와 기업에서 보여주기식 말고 ‘안정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기간제 말고 정규직을 늘려달라고.


슈슈 : 거시경제 지표를 높이려면 질보다 양이지. 제일 손대기 쉬운 것이 공무원이니까 일자리를 쪼개 시간제로 만드는 것 같아.


단팥빵 : 또 사람들이 직업에 대한 귀천의식을 조금 버려줬으면 좋겠어. 전공 살리기, 원하는 꿈 찾기가 귀천의식 때문에 훨씬 힘들어지는 것 같아.

Q. 기업의 채용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자몽 : 블라인드 테스트, 이런 거 많이 하잖아.


슈슈 : 믿을 수 없어. 올 초 대기업 채용설명회에 갔는데 본사 인사팀장이 블라인드 처리하고 자소서를 검토한다고 반면 건설팀장은 우리 기업은 SKY급(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이 많이 지원한다고 말하더라고. 블라인드 테스트라며. 안 믿어.


뭐, 채용시스템에 아주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 좋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기업들이 나름 최선을 찾으려고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문제는 일자리 자체가 많이 없다는 거야. 일단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는 것이 급선무야.


단팥빵 : 자소서 문항은 좀 바꿨으면 좋겠어. 성장배경 좀 그만 묻고. 그리고 전공을 좀 인정해줬으면. 문과생이 갈 곳이 없어.


차비 : 자연과학도 위기래.

Q. 남의 시선, 돈, 취업 걱정 안 한다면 지금의 진로, 유지할 거야?



단팥빵 : 응! 가르치는 건 좋아.

실버스타 : 큐레이터 하고 싶어.

차비 : 아무 제약 없이 내가 원하는 일 할 수 있는 회사 찾고 싶어.

자몽 : 유지하되 상명하복 없는 학교로!

슈슈 : 나는 하고 싶은 일 딱히 없어. 하나 있다면 축구선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이런 얘기 민망하네. 다시 태어난다면 노르웨이에서 태어날래. 노르딕. 게르만족. 하하.



Q. 다시 태어나면 한국에서 안 태어나고 싶어?



단팥빵 : 절대!!! 안 태어나지!

차비 : 나도!

슈슈 : 손!

실버스타 : 굳이 외국에서 태어나고 싶진 않아. 내가 창의력이 별로 없어서. 한국은 창의력 별로 없어도 되는 나라잖아. 하하.

자몽 : 창의력을 키울 수 없는 환경인데 창의력을 요구하는 나라지. 나도 창의력이 별로 없어서 외국에서 태어날 자신도 없어. 우리나라에서 자라서 이렇게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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