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이해

최근 아주 소수지만 중국의 가능성을 아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담론들이 있다. (예를 들어 김기협, 이병한 선생님 같은 분들...), 물론 한국에서의 주요 중국 담론은 저열한 중국위협론이 대다수다. 하지만 나는 '환멸' 만큼이나 '환상'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문명론적 접근이 매우 흥미롭고 중요하지만, 그것이 현재 중국이 지니고 있는 많은 모순들을 가리는 쪽으로 움직이면 안된다. 문명은 신기하고 거창하지만...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 거대한 규모의 인민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3억 명에 달하는 농민공

이들은 사람(人)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우리 60-70년대 여공들의 저 바닥의 삶을 떠올리면 된다. 전태일이 그렇게 보듬었던 바로 그 삶들...) 그래서 이들의 존재론적 고민은 극단적으로 자살로 이어진다. 뤼투 선생이 충칭 폭스콘 기숙사 사진을 보여줬는데...투신자살해도 죽지 않도록 그물 등 안전장치를 곳곳에 해놓은 것을 보고 정말 끔찍했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게 만드는 '자본'이라....

그럼에도 이들은 모여서 또 자신들의 삶의 존엄을 지켜나가기 위해 저항하고 조직한다.

북경 근교의 피촌은 약 2만여명의 농민공들의 집단 거주지인데, 100여 명의 활동가들과 더불어 민중가요 만들어 부르기나 문학창작 등 각종 문화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노동자 박물관, 노동자 대학, 협동조합 농장, 사회적 기업 등까지도 만들어냈다.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은 한국 일각에서처럼 자본주의의 새로운 극복 같은 '환상'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말그대로 사람의 삶의 존엄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그 활동들을 하나하나씩 벌여나갈 뿐인 것이다. 이들은 조급하지 않다. (물론 이것이 그 곳에 대한 또다른 환상으로 읽혀서는 안된다...그 지역에 맞는 조그만 실천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뤼투 선생은 지금 아마도 청계천 다리의 전태일 동상 앞에 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중국어로 번역된 전태일 평전을 두번이나 읽었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곳에 꼭 가보고 싶다고 어제 얘기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고 서로가 서로에게 참조점이 된다.

다소 장황하지만 예전에 황해문화에 썼던 서평 '중국의 고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마지막 부분을 다시 옮겨본다.

- ‘중국연구’와 ‘중국비판’ 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모색하자

저자는 한국의 중국학계 및 대중들에게 중국 숭상(숭중)과 중국 혐오(혐중)를 넘어 중국 연구와 중국 비판을 제언하고 있다. 하지만 서평자의 판단으로는 학계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의 시선으로 넘어가면 한국에 ‘숭중’의 시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 지배적인 중국 담론은 여전히 냉전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한국 경제에 위협이 된다는 ‘중국위협론’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우리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줄 것이라는 ‘중국기회론’이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글로벌 헤게모니의 교체기라는 문제제기 속에서 중국의 부상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론’들이 새롭게 등장하고는 있지만 이 담론이 적극적으로 중국을 긍정하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조금 더 지구적인 차원에서 얘기해보자면 사회과학계에서 중국모델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동아시아론들은 중국 내부에서 먼저 제기된 것이 아니라 일부 서구 좌파들에게서 시작된 것이 중국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8혁명의 시기 학문적 성숙기를 거친 학자들에게는 여전히 마오의 혁명론과 제3세계론의 흔적들이 느껴지고, 이것이 한계에 달한 신자유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와 겹치면서 기존과는 다른 질서에 대한 기대들이 중국에 투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마오 시기 중국이 가졌던 해방적 전망을 넘어서서 과거 중국의 경제와 정치시스템(예를 들어 조공시스템) 속에서도 서구의 근대적 질서와는 다른 점들을 찾아내려고 했다.

이들의 인식 속에서 유럽은 내부에선 대등한 국제관계를 형성했으나 비서구 사회는 식민지배하며 철저하게 약탈하고 착취했던 위선적인 체제이다. 반면 중원 중심의 조공시스템은 중국 헤게모니 아래에서 철저한 위계에 입각해 있지만 내치에서는 내재적 자율성이 존중되는 독립적 정치체였고, 경제 문제에서도 착취관계가 아닌 재분배적(혹은 상호적) 교환시스템으로 인식되며 그에 따라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가능했던 시스템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중국의 학자들이 국내 정치경제 모델의 재구성을 넘어 국제정치적인 모색을 시도하면서 위와 같은 전통의 재해석들이 좀 더 힘을 받고 있는 그런 양상으로 보인다. ‘화평굴기론’이라던가 ‘책임있는 강대국론’ 등의 공식담론도 포함해서 중국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부상은 주변국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이득이 되는 그런 관계라고 역설한다.

이런 학문적 시도들이 한편으로는 흥미롭고 관심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 제국주의와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의 각이 너무 중국에 대한 희망적 예단(wishful thinking)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중국도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 다름아니라는 현실주의에 입각한 확언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중국론인가

현재로서는 섣불리 중국이 가는 길을 단면에서 바라보고 비난하거나 찬양하기 보다는 대안적 실험에 관심을 기울이고 응원하고, 패권과 권력의 길을 넘보는 것에는 단호히 비판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학계의 논의를 넘어 기층으로부터의 연대를 통해 우리와 중국이 서로의 참조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들을 더 많이 발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리영희라는 비판적 중국연구의 프리즘을 통해 중국의 ‘하방’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80년대 한국의 노학연대나 현장진출로 이어졌고, 또 이제는 [전태일 평전]을 비롯해 한국의 노동운동 역사를 담은 책들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중국 노동운동가들과 현장 노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의 대표적인 농민공 활동가인 쑨헝(孫恒)의 애창곡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고 한다. 21세기 생산과 금융이 지구화된 시대에 비판적 중국연구란 객관적인 관점에서의 중국연구와 비판을 넘어 서로의 연대의 자원들을 적극 발견하고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Boycott Samsung! 일베충은 그냥가라. 2013.12~2015.05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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