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가 불법인 나라

오마이뉴스 연재 [당신에게, 실크로드 39] 데이트가 불법인 나라 - 이란 테헤란

-> 링크를 못올린다고 하네요. 오마이뉴스에 10월 7일에 연재된 제 기사입니다.

총 여행기간은 2014년 4월~10월까지이고, 카메라는 캐논 100 D, 렌즈는 캐논 18200입니다.


벽화에 숨은 상처


"이 벽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여길 간 거야?"

이란 친구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샤론과 나는 서로 눈치만 봤다. 중국 친구 샤론과는 3년 전에 인도 바라나시에서 만난 사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서로 이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은 함께 구 미 대사관에 다녀왔다.

1979년 11월 4일, 500여 명의 이란 급진파 학생들이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에 진입했다. 그리고 52명의 미국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삼았다. 그들의 요구는 미국으로 도망간 팔레비 국왕의 신병인도였다. 당시 호메이니 주도하의 이슬람혁명이 성공한 직후였고, 이란정부는 인질 석방을 조건으로 미국에 내정불간섭을 요구했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은 인질구출을 위해 '독수리 발톱' 작전을 펼쳤지만 실패하고, 이 인질들은 444일 후에 석방되었다.

그 후 이 건물은 이란 정부의 교육기관으로 쓰이고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앞 담벼락엔 반미를 상징하는 유명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보러 간 것이다. 벽에는 듣던 대로 'Down with USA' 라는 문구나 해골 모양을 한 자유의 여신상 등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각자 귀여운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이 사진들을 본 이란 친구는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어본 것이다. '이 벽화들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쫄아서 '미국을 반대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건 단순히 미국에 반대하는 게 아니야, 이란의 평화에 반대하는 거지"

친구는 이란의 반미 이데올로기는 허구라고 했다. 이란 정부가 미국이라는 적을 만들어 국민을 우민화시키기 위한 정치선전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 모든 배경에는 석유를 독점하고자 하는 기득권의 욕심이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이란은 중동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친미적인 국가였다. 그러나 1979년 친미 성향의 팔레비왕조가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정권을 잡으며 이란은 미국과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다. 그러다 2002년에는 부시 미국 전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 이라는 소리까지 듣기에 이르렀다.

"석유를 판 돈은 국민 모두의 것이어야 하는데, 국가가 그걸 독점하고 있는 거지. 반미는 그걸 가리기 위한 속임수일 뿐이야"

결국 친구 말에 따르면 반미 이데올로기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지배수단이며, 히잡으로 대표되는 이란의 이미지 또한 신정국가를 강화하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거다.

우리 사회의 반공 이데올로기처럼, 이란 내부에서도 반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친구의 강경한 어조에 샤론과 나는 할 말이 없어 발가락만 꼼지락 거렸다. 졸지에 아무 생각 없는 관광객이 되어 버렸다. 분단국가인 우리가 비무장지대(DMZ)에서 장난치는 외국인을 보면 기분이 상할 수 있듯이, 이란 사람들에게는 저 벽화로 가득한 담벼락이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국가가 국민에게서 사랑을 지웠어"... 데이트가 '불법'인 나라


이란의 수도, 테헤란. 이곳은 화려한 궁전과 서민들의 삶터, 번잡한 재래시장과 현대적 쇼핑센터가 공존하는 이란의 경제·정치·문화 중심지다. 역대 왕조의 보물이 가득한 보석박물관이나 페르시아 카펫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카펫박물관, 사파비 왕조의 화려한 골레스탄 궁전이나 여름궁전이었던 사드아바드 박물관, 고대 페르시아 유적을 볼 수 있는 이란 국립박물관 등을 관람할 수 있다.

테헤란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건 이란 젊은이들을 만나보는 거였다. 이란 젊은이들이 자신의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가 궁금했다. 실제로 만나보니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고 있고 현대에 보기 드문 신정국가이지만 의외로 종교를 믿지 않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술이 금지되어 있지만 어떻게든 구해서 마신다. 물론 구해 오는 거다 보니 마음껏 마실 순 없었다. 무엇보다 이란 젊은이들의 과감한 연애와 애정표현이 날 놀랍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란은 연애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는 결혼하지 않은 관계에서 공식 데이트가 불법이다. 테헤란 같은 대도시는 큰 상관이 없지만 작은 도시에서는 꽤 엄격하다고 한다. 길에서 손을 잡거나 애정표현을 하면 종교경찰이 다가와서 결혼여부를 조사한다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겁을 했다. 데이트를 해야 결혼을 할 거 아닌가.

"국가는 국민에게서 사랑을 지웠어."

친구는 불만에 차있었고 나직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란 친구였다. 국가는 음악을 마약이라 선포하고,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로 만들고, 종교로 사람의 감정을 컨트롤하면서 국민을 쉽게 다스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란의 영화는 특유의 시적 감수성과 영상미로 세계적으로 호평 받지만, 그 안에도 갈등은 있었다. 집안에서 이란여성은 히잡을 쓰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는 집안 장면이라도 써야한다. 아무리 영화 속 장면이고, 배우여도 그 여성은 머리카락을 노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또 영화에서 남녀가 손을 잡기라도 하는 장면이 있으면 꼭 실제 부부를 출연시켜야 한다고 한다. 친구 말로는 그래서 이란영화에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다고 한다. 나는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나 <천국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 끝에 우리는 어두컴컴한 카페에서 한참을 우울하게 앉아있었다. 초록색 벽의 카페에는 이란의 여류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초상화가 작게 걸려있었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이었던 그녀의 깊고 검은 눈을 보며 어쩐지 전혜린과 비슷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천재성과 광기, 그리고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뜨며 한꺼번에 불살라버린 그 열정마저도.

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포루그 파로흐자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우리나라에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그녀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가 유명하다. 이란 젊은이들에게 포루그 포로흐자드는 자유로운 영혼과 저항정신의 상징이다. 그녀는 1967년에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만약 그녀가 1979년 이슬람 혁명이후까지 살았으면 그녀의 시는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졌다.

이란이 <동물농장>의 현실판이라고?


재미있는 사실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슬람 혁명 전의 과거 사진들이 지금의 이란 모습과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1960~70년대의 프랑스 파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당시 친 서방 노선이었던 팔레비왕조는 개혁의 일환으로 여성의 히잡착용을 금지시키고 농지개혁, 여성 참정권 등 6개 항목의 국정대개혁(백색혁명)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런 급진적인 개혁정치는 이슬람 전통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이란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게다가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사치, 그리고 경제개혁 실패까지 겹치면서 결국 호메이니 주도하에 이슬람 혁명을 촉발시켰다. 그 혁명의 한 장면이 아직 남아있는 곳이 있다. 테헤란 북쪽에 위치한 사드아바드 박물관이다.

이곳은 팔레비왕조의 여름궁전이다. 숲속에 있는 18개의 궁전은 그들의 호화롭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왕의 집무실이 있는 하얀 궁전과 사적인 공간이었던 초록궁전이 유명하다. 바닥에는 이란산 카펫이 깔려 있고, 방 안에는 프랑스산 가구로 가득 찼고, 테이블에는 이태리산 접시가 올려져 있고, 천정에는 체코산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 식이다.

화려한 왕족의 삶을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더욱 흥미로운 건 하얀 궁전 앞 장화모양의 동상이다. 원래는 팔레비국왕의 동상이 있었지만, 성난 군중들이 동상을 부수고 장화부분만 남겨 놨다. 민심을 헤아리지 못한 결과였다.

팔레비왕조 붕괴 후 호메이니가 이란 재건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는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이슬람 임시정부를 선포했다. 혁명에 성공한 사람들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이란 친구들은 혁명 이후의 삶에 대해 간단하게 이렇게 설명했다.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 읽어 봤어? 그건 소설이 아냐. 실제로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이야."

소설 <동물농장>은 동물들이 '평등한 동물사회'를 꿈꾸며 혁명을 일으켰지만, 돼지 나폴레옹의 독재로 혁명 이전보다 더 심각한 공포사회로 변한다는 내용이다. 호메이니 집권 후 여성의 히잡 착용이 법으로 정해지고, 춤과 음악, 술이 사라졌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율법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정부에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수많은 예술가와 지식인이 다른 나라로 망명했다. 부패한 왕조를 무너트렸지만 사람들이 원하던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지금의 이란을 <동물농장>의 현실판이라고 했던 것이다.

세상의 '마르잔'들이 돌아가길 꿈꾸며...


혁명 후 이란의 현실은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에 잘 나타나있다. 마이클 잭슨과 아바를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이란 소녀 마르잔. 그러나 이슬람 혁명 후 강압적으로 히잡을 써야하는 사회가 온다. 결국 마르잔은 오스트리아로 떠났지만, 정체성의 혼란과 향수병으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동안 이란은 더욱 엄격한 통제사회가 되었다. 이혼과 자살 시도 등을 겪으며 이란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마르잔은 다시 프랑스로 떠난다.

마르잔이 떠날 때, 그녀의 부모와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넌 영원히 떠나는 거야. 넌 자유로운 여자다. 오늘날의 이란은 너를 위한 곳이 아니야. 난 네가 여기 다시 오는 것을 금한다. "

실제로 이 이야기는 저자인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이야기다. 이 영화는 이란정부로부터 '혁명 전통에 대한 비사실적 묘사"라는 이유로 상영반대를 받았으나 2007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이슬람 혁명이후 세계 곳곳에 '마르잔'들이 생겨났다. 호주에서 만난 이란 친구는 이란을 너무나 그리워했다. 이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호주에서는 전공과 상관없는 청소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재능은 피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죽어도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여행을 하며 마주한 이란은 아름다운 나라였다. 테헤란 거리는 복잡하고 매연이 심했지만, 거리 곳곳에는 페르시아 후예들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집집마다 깔린 카펫의 무늬에도, 아파트 벽에 그린 벽화에도, 하다못해 상점에 진열해둔 상품들에도 범상치 않은 그들의 미의식이 빛났다. 친구가 이란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언젠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마르잔'들이 그들의 아름다운 나라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 후인, 2015년 7월. 이란 핵협상이 최종 타결됐다. 합의가 제대로 이행이 되면 36년간 숙적이었던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정상화될 가능성이 보인다. 이를 통해 이란은 오랜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고, 미국은 이란에서의 중국 영향력을 봉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양국은 IS(이슬람국가)격퇴라는 공동 목표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발전가능성이 높은 나라도 손꼽혀 왔다. 에너지 대국인데다, 젊은 인구가 많으며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다. 짧은 시간 동안 팔레비 왕조의 세속주의와 호메이니 정권의 교조주의를 겪어왔던 이란이다. 이제, 이란은 또다시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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