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흔들리는 얼굴을 가진 윤계상

‘천의 얼굴 윤계상’, god의 팬들이 그를 부르던 애칭이다. 가수로 지낸 시간보다 배우로 산 시간이 더 길어진 그는 숱한 장르와 배역을 오가며 자신을 담금질했다. 그리고 마침내 액션과 드라마, ‘찌질’과 ‘로맨스’가 모두 어울리는 얼굴이 됐다.

글 | 유슬기 톱클래스 기자

2004년 변영주 감독은 <발레교습소>의 남자 주인공 ‘민재’역으로 윤계상을 캐스팅한다. 그가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춘의 얼굴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계상은 변영주 감독에게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변감독은 이 신인 배우에게 “천재가 있다면 너는 노력의 천재가 되어야 한다. 누구보다 성실해야 하고, 주변을 다 아울러야 한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을 위해 뛰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고 했다. 알에서 깬 오리가 첫 얼굴을 엄마로 기억하듯, 변감독의 가르침은 그의 배우인생에 금과옥조가 됐다.

그 후 12년, 이제는 변영주 감독의 필모그래피보다 배우 윤계상의 그것이 더 길어졌다. 여전히 감독들은 그에게서 ‘청춘의 얼굴’을 본다. 태양열에 날개가 녹을 것을 알면서도 날아오르는 이카로스처럼, 상처받고 바닥으로 떨어질 줄 알면서도 열정에 몸을 던지는 청년의 모습. <소수의견>의 김성제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윤계상을 생각했다. 그에게는 나이와 별개로 청년의 얼굴이 있다”고 했다.

윤계상이 배우가 되기 위해, 혹은 배우가 된 후로 얼마나 온 몸을 던져 왔는지는 보는 이들도 잘 안다. 그의 작품이 전부 흥행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연기력에 있어 논란이 된 적은 없었다. 첫 영화 <발레교습소>이후 그의 작품은 다채로웠다. <비스티보이즈>(2008)의 호스트바 에이스 승우, <집행자>(2009)의 사형집행인 재경, <풍산개>(2001)의 풍산, <소수의견>(2013)의 국선 변호사 재경까지… ‘해볼 만하다’는 작품보다는 ‘할 수 있을까’ 싶은 장르에 대한 도전이 계속됐다.

“모르겠어요. 완벽한 시나리오, 완벽한 제작자, 완벽한 배급… 이런 상황은 사실 쉽지 않아요. 저는 정확한 이야기만 있다면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산이 적거나, 환경이 어렵다는 게 저에게는 제약이 아니었어요. 저는 연기가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번엔 로맨틱 코미디 <극적인 하룻밤>이 개봉했다. 김하늘과 출연했던 영화 <6년째 연애중> 이후 9년만이다.

“마지막으로 청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젊은 친구들에게 좀 힘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제 과거도 돌아보게 됐고요. 스무 살부터 30대 초반까지 생각했던 것들… 청춘에 대한 고민들… 지나고 나면 사실 별 일 아닌데 크게 생각했던 일들을 (남자 주인공) 정훈이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정훈은 특수학교 계약직 체육 교사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도 붙잡지 못한다. 그렇게 헤어진 여자의 결혼식에서 함께 셀카를 찍을 정도로 ‘속없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 결혼식에서 만난 한 여자(신랑의 전 여자친구)와 ‘극적인’ 사랑에 빠진다.

“저와 정훈이가 가장 닮은 건 찌질한 모습들이에요. 마음은 안 그러면서 말과 행동은 어긋나는 모습들이 그렇죠. 저도 어릴 때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은 약간 철이 들었어요.(웃음) 외부의 시선에 신경쓰기보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에 더 집중하려고 하죠.”

제 청춘이 부끄럽지 않아요

<극적인 하룻밤>에서 그의 연기가 돋보이는 것은 실감나는 ‘찌질함’ 때문만은 아니다. 정훈은 사건을 주도하기보다, 듣고 반응하는 인물이다. 처음에 당돌했던 시후가 사랑에 빠진 여인이 될 때, 연애를 글로 배운 친구 덕래가 19금 발언들을 쏟아낼 때 정훈은 다만 리액션을 해줄 뿐이다. 그런데 그 반응들이 장면에 활기를 만든다.

“한예리 씨는 드라마 <로드넘버원>(2010)을 찍을 때 처음 봤어요. 이북 사투리를 엄청나게 잘하는 게 인상적이었요. 감독님께 ‘저 분은 누구에요?’ 라고 물어봤어요. 독립 영화를 찍는 친구라고 하더라고요. 우연히 하루 촬영이 겹쳐서 분장차를 같이 탔어요. 어디 학교를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저는 무용 전공이에요, 선배님” 하는데 깜짝 놀랐어요. ‘나처럼 다른 분야에서 온 친구인데 이렇게 연기를 잘하다니’ 싶어서요. 그러면서 눈으로 계속 좇는 배우였어요. 이번엔 상대배역으로 만나게 됐는데, 역시나 너무 좋은 호흡을 가진 배우더라고요.”

<코리아>, <해무>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온 한예리는 <극적은 하룻밤>을 찍으면서 ‘로맨틱 코미디가 이렇게 어려운 장르인 줄 몰랐다’고 했다.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가는 다른 장르와는 달리, 오직 배우의 연기로만 승부해야 하는 게 로코물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연기하는 게 정말 어려워요. 제일 중요한 게 말이거든요. 어디서 더듬는가, 어디에서 반복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요. 현장에서 제일 많이 공을 들인 것도 대본의 말맛이에요.”

<극적인 하룻밤>의 가장 아픈 대사 중 하나는, 정훈이 시후에게 “너 나 사랑해? 우리 그냥 몸친 아니었어?”라고 묻는 장면이다. 정훈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9첩 반상을 차려온 여자는 눈물을 글썽이고, 객석에서는 ‘어후~’하는 비난어린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그건 제가 만든 대사에요. 어떤 말을 해야 제일 아플까 생각했어요. 제일 최악의 말이거든요. 남자의 가장 못된 면이죠. 마음 아픈 이야기를, 상처를 주는 줄도 모르고 하니까요. 20대의 모든 남자는 연애를 하면 결혼을 생각해요. 기간이 길어지면 더 그래요. 그래서 남자가 찌질해져요.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잖아요. 불필요한 부담을 갖다보니 도망갈 궁리를 하게 되고, 그러다 찌질해지는거죠.”

그리고 마지막, 돌아선 시후(한예리)를 붙잡기 위해 물구나무를 서는 것도 현장에서 만들어진 장면이다. 평소 물구나무를 서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시후를 위해서 정훈이 대신 물구나무를 선다.

“그럼에도 남자가 제일 멋있는 순간은 여자가 스치듯 한 말을 담아듣고 기억했을 때에요. 가진 것 없는 정훈이 시후를 호강시켜줄 순 없지만, 그런 진심은 전달할 수 있는 거죠. 정훈이라면 어떤 멋있는 고백이 아니라, 그런 진실한 고백을 했을 것 같아요.”

결국 사람이 남아요

tvN <삼시세끼-어촌편>의 마지막 게스트는 윤계상이었다. 그리고 그 회 방송분은 최고 시청률 15%를 찍었다. 윤계상은 그간 나온 게스트 중 가장 핫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집주인 유해진, 차승원, 손호준과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 사람은 각각 다른 작품에서 윤계상과 호흡을 맞췄다. 손호준은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서, 차승원은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유해진은 <소수의견>에서 만났다. 이들이 윤계상을 반기는 모습은 진심이었다. ‘선배들이 예뻐하는 후배, 후배들이 잘 따르는 선배’라는 평가는 배우 윤계상의 재산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연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 분들이 이 자리까지 어떻게 왔는가를 생각하면 저는 참 미안하더라고요. 저 혼자 너무 쉽게 좋은 기회를 얻은 게 아닌가 싶어서 죄송했어요. 그래서 행여나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요. 선배에게는 후배의 도리를, 후배에게는 선배의 도리를 다하려고 해요. <소수의견>에는 기라성같은 선배님들이 계셨어요. 이경영 선배님, 유해진 선배님, 권해효 선배님, 김의성 선배님…연기의 장인들과 한 시절을 보낸 게 저에겐 큰 수확이에요. 선배님들의 가장 좋은 점은 여유에요. 그래서 리액션이 좋으시죠. 연기 자체보다 앙상블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이번 영화에서도 그걸 실천하려고 했고요.”

현장에서 이경영, 유해진은 그런 말을 했다. ‘배우는 저마다의 계기로 훌륭한 연기를 펼칠 때가 있다. 각자 가는 속도가 다를 뿐이다’, 그 말이 그를 바꾸었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태양을 향해 돌진하던 이카로스는 비로소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요. 열정이요. 청춘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제 답은 역시 열정이에요. 죽을 만큼 사랑하고, 죽을 만큼 도전하는 거요. 저한테 ‘집착’이 있다는 것도 맞아요. 그런데 창피하지 않아요. 그건 제 진심이거든요. 정말 잘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 때의 기쁨이 제일 커요.”

열정의 시간이 지나 여유를 찾아가는 요즘은 배우가 되느라 돌보지 못했던 주변을 조금씩 돌아보는 중이다. 그 안에는 고향 같은 ‘god로의 복귀’도 있었다. 돌아온 ‘보컬 겸 래퍼’ 윤계상을 멤버들은 “요 맨, 왔어?”하며 말없이 안아주었다. god의 후광을 입고 싶지 않아 돌아왔던 지난 날, 멤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10년이 걸렸다. 그렇게 그는 ‘천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 원문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5&mcate=M1003&nNewsNumb=20151218966&nidx=18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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