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선사들의 십현담 주석비교 : 4현 – 진이(塵異) 선사들의 십현담 주석비교 : 4현 – 진이(塵異) 동안 상찰선사의 십현담 원문을 보시고 청량과 설잠, 만해가 주석하였다. 이 세분이 해석하신 주석의 내용을 비교 검토한 글을 올리오니 도반님들께서 심히 숙고하여 보시고 정진에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 진이(塵異) 청량은 비록 진세와 함께하나 초연해서 다름이 있다. 성품의 달과 마음의 구슬만이 참으로 기이한 보배이다. 이것은 천지와 우주 간에 주야로 빛난다. 모든 연을 몰록 쉬면 현묘한 밝음이 나타난다. 불조 위에서 거하지 않는데 본래와 현실에 앉을 것인가. 설잠은 말한다. 성인은 티끌에 있으나 연꽃과 같이 물들지 않는다. 빛을 화해서 티끌과 함께하나 섞이지 않는다. 뚜렷하고 밝은 성품이 티끌에 섞여 있다. 범부가 알지 못하여 무명이라 한다. 청량은 진세에 처하나 물들지 않는다. 본래와 현실의 어느 곳에도 주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 달과 마음 구슬이 기이한 보배라고 한다. 설잠도 티끌에 있으나 연꽃같이 물들지 않는다고 하여 청량과 뜻을 같이 한다. 그러나 무명이라는 것도 티끌 속에 있는 뚜렷하고 밝은 성품이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설잠은 청량보다 현실긍정이 강하다. 만해는 말한다. 봄빛의 묘함은 각각 스스로를 얻는다. 난초를 심어 놓고 잡초를 끊어냄은 우스운 일이다. 탁함과 맑음은 각각 묘함이 있다. 탁함이라 해서 열등한 것이 아니요 맑음이라 해서 높은 것이 아니다. 용의 구슬(여의주)은 빛나지 않는 곳이 없다. 단풍이 다 떨어진 산에 가을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여래의 향한 곳은 이미 묵은 자취이다. 다시 딴 곳을 찾아가야 현묘한 경지이다. 난초를 심어 놓고 잡초를 끊어내는 것은 무엇 하나를 위해서 무엇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탁함과 맑음은 각각 그 묘가 있다. 만해는 현실의 어느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묘함을 살리는 것이다. 깨달음을 위해서 번뇌를 버리는 것은 일차적인 방법이다. 만해는 각각의 묘함을 살리는 것이다. 단풍은 가을을 한 점 찍은 것이다. 한 점 찍은 것은 전체가 될 수 없다. 그 한 점마저 없어져야 전체가 된다. 그래서 단풍이 다 없어져야 온 산이 가을이 된다는 것이다. ‘문익은 현기를 운용한다는 말을 앞에 붙이고 있으며 초연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설잠은 빛을 화한다는 말을 앞에 두고 있으며, 티끌에 섞여 퇴색하지 않는다고 말한다._________ 설잠은 문익보다 화광동진(和光同塵)과 화이불류(和而不流)의 태도를 강조한다. ‘만해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한 방 안에 일천 개의 등을 켜 놓았다. 티끌 세상을 초월하되 중생을 버리지 않고 세속에 파묻히되 그에 오염되지 않는 까닭에 진이(塵異) 라 한다. 만해는 그 찬란한 밝음을 일천 개의 등에 비유하였다. 읽는 이로 하여금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갖게 한다. 수미산 http://cafe.daum.net/cigong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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