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언제부터 부부가 같은 성을 썼을까?

Fact

▲일본에서 남녀 5명이 소송을 냈다. ▲부부가 같은 성을 쓰도록 한 민법 750조가 권리 침해이자 헌법 위반이라는 것. ▲일본 최고재판소는 16일 상고심에서 “가족이 하나의 성씨를 쓰는 것은 합리적이며 일본 사회에 정착돼 있다”고 민법 750조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일본은 언제부터 부부가 같은 성을 쓰게 됐을까. ▲성공회대 일본학과 권혁태 교수는 “부부 동성(同姓)제도를 피해서 법률혼 대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View

마쓰자키 아키에(松崎昭恵·55). 그녀는 직장 상사의 소개로 아베신조(安倍晋三)라는 남자를 만나 1987년 6월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은 현재 일본의 총리다. 아키에 여사는 아베 총리와 결혼하면서 이름이 아베 아키에(安倍昭恵)로 바뀌었다. 부부 동성(同姓) 제도에 의해서다. 아키에 여사가 만약 아베 총리와 이혼하면 자신의 옛날 성(性)으로 돌아간다. 이후 스즈키(鈴木)라는 성을 가진 남성을 만나 재혼을 하면, 스즈키 아키에(鈴木昭恵)로 이름이 또다시 바뀌게 된다.

일본은 이처럼 여성이 결혼하면 일반적으로 남편 성을 따르는 부부 동성(同姓)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 결혼을 하더라도 부부가 각자의 성을 유지하는 부부 별성(別性)제다. 그럼, 일본은 언제부터 부부 동성 제도를 채택한 걸까. 성공회대 일본학과 권혁태 교수가 쓴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라는 책을 통해 일본의 성씨(氏) 문화를 들여다 봤다.

부부 동성제의 역사는 1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년 사이의 봉건체제)에는 무사계급만 신분적 특권으로 묘지타이토(苗字帶刀: 성(氏)을 가지고 칼을 찬다는 뜻)가 허용되었다. 묘지(苗字)는 성(氏)을 의미한다. 일반 평민은 세습적 성을 갖지 못했다.

메이지정부 들어서면서 평민들도 성 사용

봉건체제가 무너지고 근대기로 넘어가는 과정인 메이지유신이 일어났다. 메이지 정부는 1870년 평민묘지허용령(平民苗字許容令)을 공표했다. 평민들도 처음으로 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을 가진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됐다. 납세와 균역 때문이었다. 당연히 성을 사용하는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정부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1875년 묘자필칠령(苗字必稱令)을 공표해 유럽식 호적제도를 도입했다. 무조건 성을 쓰도록 강제한 것이다.

메이지민법으로 부부 동성제 시작

그렇다고 이때부터 부부 동성제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부부 동성제가 실시된 건 22년이 지나서였다. 1898년 메이지 민법으로 부부는 같은 성을 쓰게 됐다. 메이지민법은 호주를 강조했다. 호주는 가족의 재산권을 행사했다. 가족구성원의 혼인에는 반드시 호주의 동의가 필요했다. 정부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수직적으로 분류했다. 부부 동성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동성제를 피해서 사실혼 관계 유지하는 부부 느는 추세”

이혼률이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부부 동성제의 유지에 대한 논란도 꾸준하게 제기됐다. 2009년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탄력을 받는 듯 했지만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 유럽처럼 별도의 성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라는 타협안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착되지 못했다.

권혁태 교수는 “부부 동성제를 피해서 법률혼 대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뉴스와이슈 ・ 의료
기자들과 후원자들이 만든 비영리 언론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이며 가치 중립적인 보도를 지향하기 위해 이름을 ‘팩트올’로 정했습니다. 팩트체크와 탐사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

Select Col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