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인형

내 안에는 두 개의 인형이 있다. 하나는 제 무릎을 껴안고 주저앉아 있는, 눈물 그렁그렁한, 한없이 고독한 인형이고 나머지 하나는 달릴 준비로 다리에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눈 없는 인형이다.

숨어있던 그 두 개의 인형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내가 혼자 있을 때다. 대중적인 사회적 관계망 속에 자리잡고 있을 때 그 두 개의 인형은 거의 ‘점멸’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어떤 특별한 술자리에서나 그 인형은 아주 잠깐 얼굴을 들이밀고, ‘사회적 내 자신’과 역할을 바꾼다. 그러나 대개 그 순간은 정말 짧고, 정신을 차려보면 그 인형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깊숙이 가라앉아 있다.

지금 나는 알고 있다, 그 두 개의 인형이 몸을 털고, 앞으로 나설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도서관에 있거나 버스의 창가 좌석에 앉아 있을 때, 혼자서 조용한 풍경을 마주쳤을 때, 만나고 싶었지만 오래 그러지 못했던 사람을 끝내 만났을 때, 두 개의 인형은 내게 어떤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내 역할을 대신 떠맡을 것이다. 나는 그때, 뒤로 물러앉아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두 개의 인형은 ‘상처’를 매개로 순서를 바꾼다. 눈 없는 인형은 ‘상처를 받기 위한‘ 인형이다. 내가 끝없는 일상의 함정에 빠져 있을 때, 내가 어떤 가치를 무시하거나 애써 잊어버리려 할 때 또는 중요한 순간을 무심하게 지나쳤을 때 그 인형은 순식간에 나와 자리를 바꾸고 놓쳐버린 무언가에 매달린다.

눈 없는 인형은 힘찬 네 다리로 오직 앞으로 전진하며, 좌우를 살피지 않는다. 단순하게 묻고 또 물을 뿐이다.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를, 지금 네가 놓치고 있는 누군가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가를,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그 풍경이 다시는 볼 수 없는 한번뿐인 삽화라는 것을, 그는 묻고, 되묻고, 다시 물으며, 놓아주지 않는다.

눈물 그렁그렁한 인형은 ‘상처를 덮어주는’ 인형이다. 그는 내가 대중적 관계에서 소외받고 있을 때, 무심한 사람들의 날카로운 언사에 깊이 베였을 때 또는 친밀한 사람들의 둔감한 행동에 혼자 끙끙거려야 할 때, 한밤중 같은 은밀한 순간에 그는 내 대신 나서고 잊어버릴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아주 드물게는 눈없는 인형이 앞에 나서 존재의 시간을 헝클어뜨리는 데서 피할 수 없이 생기게 되는 상처를 눈물의 인형이 받아안아 앓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두 개의 인형 때문에 나는 편안할 수 있다. 삶에는 몇 종류의 전기가 흐르고 대개 사람들은 그 중 한 두 개의 전극을 꽂고 산다. 꽂고 있는 몇 개의 전극은 전압이 모두 다르고 그 전압차로 사람은 고통스럽다. 고통을 잊거나 없애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누구든 고통을 잊거나 없애는 방법에 대하여 한두 가지 자신만의 유용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방법은 모른다. 나에게는 그저 두 개의 인형만이 있을 뿐이다. 그 두 개의 인형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마음 속에 들어왔고, 그 시기를 지나면서 시나브로 잃어버린 ‘소년’은(혹은 소녀는) 제 자신을 둘로 나눠 내가 짐짓 어른흉내를 내려 할 때마다 분연히 나를 대신한다.

내가 내 모든 역할을 어떤 핑계없이 제대로 떠맡을 때 두 개의 인형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또는 위화감없이 자연스레 합쳐질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인형들이여, 이 어리석은 늙은이를 위해 조금만 더 소일해다오. 두 개의 인형, 내 철없는, 그렇지만 한없이 본연에 가까운 정순(貞順)한 자아여.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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