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신이치, <생물과 무생물 사이> - 생명의 비밀과 아름다운 작품 구조에 대해..

어떤 책은 다 읽고난 후 책을 덮고 바로 기억에서 잊혀지기도 한다. 어떤 책은 내 영혼의 일부가 되어 평생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어떤 책은 리뷰를 쓰기 위해서는 망설임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내 생각과 많이 다르거나, 책이 주장하는 방식이 맘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소화할까 고민하느라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에 올린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가 그랬다. 반면 어떤 책은 책을 덮기가 무섭게 뭔가 적어놓고 싶은 마음에.. 이 감동이 시간의 마모력에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내 가슴에 새겨놓고 싶은 생각이 든다.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가 그랬다. 

이 책은 2009년에 구매했다가... 음.... 잘 숙성시켜 읽은 셈이 됐다. 원래 과학사나 과학철학에 대해 흥미가 있던터라 당시에 호기롭게 쇼핑했던 책이지만.. 신상 구매의 기쁨은 책을 가지고 집에 와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날 저녁 뿐.. 다음날이 되면 어제의 신상은 오늘의 장바구니 속 경쟁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포획한 물고기에게는 관심밥을 주지 않는 법이다. 

후쿠오카 신이치의 유려한 과학 에세이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다소 진부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20세기 과학은 우리에게 그것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라는 답을 주었었다. 근데요.. 컴퓨터 바이러스도 분명히 자기 복제를 하거든요.. 돌연변이 변형체까지 자기 복제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이진수 코드도 생명이라는 말인가요?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생물과...>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시간축을 따른 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 적어도 현재까지의 답은 '생명은 동적 평형상태에 있는 흐름'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신이치의 문체는 유려하다. 일본어 원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에는 다른 언어보다 유리함이 있겠지만 잘된 번역도 한 몫 한듯하다. 신이치가 원래 어학과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그의 글 안에서도 자전적인 얘기가 묻어있기에 일어 원문도 매우 정제된 글일 것이란 유추가 가능하다. 문체 위에 얹어진 에세이 전체의 구조도 신이치의 미국 유학 시절의 개인사와 감성이 생명 탐구의 과학사와 더불어 각 챕터별로 절묘하게 맞물려있다. 책을 읽으며 드는 느낌은 생명의 본질을 밝히려 애쓰는 과정에서 획기적인 분수령이 되었던 왓슨, 크릭, 윌킨스의 DNA 구조 발견... 이 책의 구조 또한 DNA 구조처럼 이중나선구조를 가지고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비의(秘意)를 밝히기 위한 여정은 신이치의 미국 유학생활에서 시작한다. 뉴욕 록펠러 대학은 바로 일본 1000엔 화폐의 인물인 노구치 히데요가 연구하던 곳이다. 20세기초 '일본의 슈바이처'라 불렸던 노구치 히데요. '닥터 노구치'라는 만화로도 잘 알려진 일본의 스타급 세균학자다. 신이치는 노구치의 업적이 그가 고의였건 아니었건 간에 대부분 사기에 가까운 오류였음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화폐의 주인공으로서 자격이 전혀 없다는 거다. 이어지는 과학사에 그 이름을 제대로 올리지 못했던 '칭송받지 못한 영웅들(Unsung Heroes)' - 박지성에 대한 외신의 평가 중의 하나도 바로 이 Unsung Hero였다 - 에 대한 소개. DNA 구조 발견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교묘히 그 연구 결과를 위의 세 사람에게 빼앗겼던 비화에 대한 이야기.. 원래 역사의 숨겨진 비화는 흥미를 끄는 법 아니겠는가.    서로 상대방을 복제한 상보적 염기 서열을 가진 이중나선구조의 DNA. 이 위대한 발견 이후로 슈뢰딩거의 가설과 쇤하이머의 발견한 생명의 동적 상태.. 그리고 신이치 자신이 연구한 생명의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까지.. 뉴욕과 보스턴으로 이어지는 신이치의 미국 생활의 감성적 묘사와 함께 에세이는 아름답게 흘러간다.  

생명의 동적 평형 상태라는 것에 대해 내가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다. 생명체는 죽음을 향하여 끝없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열역학 제2법칙을 따른다. 하지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생명체는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파괴해야만 한다. 전체가 무너지기 전에 부분을 파괴하고 재건하는 작업이 분자 단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몸은 그래서 반년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여전하네~'라는 말을 했을때 적어도 분자 단위에서 그는 반년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이란 이처럼 끝없이 그 구성입자가 교체되는 바닷가에 세운 모래성과 같다. 파도가 치면 모래성 일부가 무너지겠지만 그 자리를 재빨리 다른 모래들이 대체하여 그 모습을 유지하는 이미지를 상상하면 된다. 생명은 이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며 지나가는 존재이며, 어느 순간이던 이미 그 자체로 완성태이다. 이 완전한 시스템에 혼란을 야기하는 인위적인 개입은 생명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  감성과 이성, 개인사과 과학사를 시간을 축으로 상보적인 이중나선구조처럼 직조해간 <생물과 미생물 사이>는 전에 리뷰했던 <포르노..>와 대비되는 면이 있다. <포르노..>에서 보여주는 호들갑스러운 비유와 지나친 단순화는 진실을 가릴수 있다는 것..  <생물과..>에서 보여주는 통주저음과 같은 저자의 감성 위에 성실하게 써내려간 팩트 중심의 과학사는 과학 에세이를 읽는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신이치는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는다.   "자연의 흐름 앞에 무릎 꿇는 것 외에, 그리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생명과학자의 이 겸손한 에필로그에 나 또한 별점 만점을 줄수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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