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린다는 것 - 만만치 않아요!

오늘 얘기는 자연을 회화로 옮기는 전략에 대한 것이고, 사고의 혁신에 대한 내용이에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너무도 당연시되는 것들이 몇 백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들이 많잖아요?


불과 백 수십년 전에만 해도 현실의 여인의 누드를 그렸다고 화가 난 관람객에 의해 그림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던 마네의 <올랭피아> 스캔들이 있었던 것처럼.. 갇힌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가봐요. 스스로 깨어있다고 자부하는 현대인들도 얼마나 많은 터부와 금기, 정치적, 문화적 억압의 굴레에 매여있는지.. 문제의 핵심은 그 굴레조차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 바로 매트릭스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게 함정이죠.


우리는 흔히 자연의 모습.. 즉 풍경화를 생생하게.. 보이는 대로 그려낸 화가들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인상파 화가들이죠.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찰나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붓과 캔버스, 물감을 들고 야외로 나갔고.. 자연광 아래서 마주하는 대상의 시각적 인상을 잡아내기 위해 무던히도 붓을 빨리 움직였구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고.. 재밌는 실험이었죠.


근데 그렇다면... 그 전에 그려왔던 자연의 모습들은 그럼 진짜 자연이 아니란 얘긴가요?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claude-lorrain-landscape-with-cowherd-(or-evening)-17th-century-painting



Claude_Lorrain, The Embarkation of the Queen of Sheba (1648)


런던 갤러리 투어때 내셔널 갤러리에서 클로드 로렝(Claude Lorrain)의 작품을 많이 감상했었는데요. 17세기 프랑스의 고전주의 회화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수 있는 안정적이고 신비로운 엄숙함이 감도는 명작들이죠. 클로드 로렝이나 푸생의 작품들 속의 자연은 숭고하고 비장하며 고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요.


특히 클로드 로렝의 작품에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로의 회귀를 소망하는 듯한 고대 신전의 흔적들이 작품 곳곳에 등장하죠. ​이런 작품들에 등장하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화가의 마음 속에서 그려진 상상의 자연이고, 이상화된 자연이라 할수 있죠. 즉.. 있음직한 자연이지만 어디에도 없는 자연. 유토피아적인 자연이라고 할까요?


흔히 인상주의에 대해 찬사를 보낼때 이전 고전주의 풍경화에 대해 폄하하면서 인상주의의 혁신성과 창조성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많이 접하는데요. 인상주의의 실험성과 진보성에는 거기에 맞는 박수를 보내야 하겠고.. 고전주의 풍경화의 아름다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수성에 대해서는 또다른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굳이 어느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니.. 라고 했을 때 선택하고 싶은 것은 고전주의적 풍경화 속이거든요. 현실에서는 만날수 없는 세계를 만나보고 싶잖아요 ^^*​

Jacob van Ruisdael, View of Haarlem from the Dunes at Overveen (late 1660s)


루이스달 (네덜란드 이름은 그 나라에서는 다르게 부를 듯 한데요.. 예를 들어 <중세의 가을>의 호이징가(Huizinga)의 경우도 예전에는 호이징가라고 했는데 언제가 부터는 하위징아라고 하는게 맞는 거 같더군요. 고유명사는 그 나라의 발음대로 불러주는게 맞는 것이지만.. 네덜란드 어를 전혀 모르니.. 그냥 통용되는 루이스달이라고 부를께요.. 테마와 무관한 여담이었습니다 ^^


이 광활한 작품은 큰 화면.. 아니 실물을 봐야 하는 건데 말이죠.. 앞선 카드에서 말씀드렸던 아베르캄프의 작품의 경우 지평선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높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루이스달의 작품을 보면 아베르캄프와 얼마나 다른지 느낌이 바로 오실거에요. 하늘이 거의 화폭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죠?


이 작품은 비록 휴대용 물감이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스케치를 해서 아틀리에에 돌아와 실내에서 작업한 풍경화라는 한계가 있기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화가가 살았던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동시대를 살았던 주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풍경이겠지요? 지평선 쪽에 보이는 커다란 성당은 바로 바보 성당(St. Bavo)로 훗날 루이스달이 뭍히는 곳이 되는 곳이랍니다.


화면 가득 넘치는 세심한 빛의 배분과 디테일.. 방금 전에 본 것 같은 하늘의 뭉게구름은 평화로운 당시에 대한 최고의 상찬이 아닐까 싶어요.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전쟁도 끝내고...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에 의해 공식적으로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고 하거든요. 바야흐로 네덜란드의 황금기가 시작되는 거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는 이렇게 그림에도 긍정적인 기운이 넘쳐흐르게 만들어 주나봐요.

야콥 반 루이스달, <비지크 비즈 두르스테데의 풍차>, 1668년

​네덜란드하면 풍차! 튤립! 제방! 등을 떠올리게 하는데는 루이스달 같은 화가들의 공이 크다고 합니다. 사실 풍차는 네덜란드의 랜드마크가 될 정도의 네덜란드만의 것이 아니고 유럽 곳곳에 있었다고 해요. 루이스달 같은 화가들이 작품에 자주 등장시킴으로써 국가의 아이덴티티.. 아이콘으로 성장한 거죠. 예술가의 공이 큽니다 ^^*​


​왼쪽 바다위의 돛단배로부터 물가의 마스트.. 그리고 풍차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 혹은 반대방향으로 - 시선의 유도가 매끄럽고 입체감 있는 뭉게구름의 표현이 탁월하죠~


실제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보면 보이는대로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느끼게 되죠. 어렸을 때 다들 미술 시간에 그려봤던 기억이 있잖아요? 물론 회화 테크닉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조금 더 전문적인 선생님께 한동안 그림을 배웠는데요.. 제 스스로 풍경을 스케치하고 수채화로 그림을 완성해 놓으면 원래 있던 그 풍경이 아닌 제가 머리 속에 갖고 있었던 나무의 이미지, 건물의 이미지로 바뀌어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라고.. 또 좌절했던 기억이 나요. 난 그림엔 소질이 없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ㅎㅎㅎ 요즘 독학으로 어반 스케치를 하시는 분들 보면 찬탄과 존경을 함께 드리는 이유가 이런 제 슬픈 과거사때문이기도 합니다.. ㅎㅎ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모르면 박수를 칠 이유가 없죠~


어쩌면 루이스달 등의 진경풍경화(?) 화가들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화가들은 상상 속의 풍경이 너무도 당연하고 또 그것이 현실의 자연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그것이 당시의 지배적인 사고 프레임이었으니깐요. 그 틀을 깨고 진짜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 내밀었을 때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이 아... 하는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르죠.


루이스달 등의 플랑드르 화가는 후에 풍경화의 대가.. 기상학자스러운 ㅎㅎ 컨스터블이나 증기와 속도의 화가 터너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답니다.

즐거운 플랑드르 여행이셨길~~~


- 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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