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재 혹은 아주 뻔한 이야기

책, "제천, 스물두 개의 아스피린"의 맨 첫 부분,

프롤로그를 겸한 "박달재" 꼭지입니다. 서문에 해당되므로, 조금 진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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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겸하여_0. 박달재]

아주 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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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너머로 떠난 사람들은 소식을 넘겨주지 않았다. 남한강 조포나루 부근의 소금막으로 일하러 간 아저씨도, 문막의 큰 나무꾼에 시집보냈다는 장평집 둘째 따님도, 남편따라 원주로 이사한 봉양댁도 쓰다 달다 후문이 없었다. 가끔씩 보부상이나 뜨내기들을 통해 엽전이나 쥐어주고 안부를 타전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전갈을 받은 뒤에는 하나같이 입을 꼭 다물어버려서 도무지 되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개가 험했지만, 고개 바깥의 세상은 더욱 험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떠나기를 꿈꿨다. 내토(奈吐, 제천의 옛 이름)의 산은 높았고, 깊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촘촘히 늘어서서, 그 산자락 사이에 논밭을 부려 식구들을 먹이기란 언제나 만만찮았던 까닭이다. 논은 적어서 양반들 차지였고, 밭은 있으나 기름지지 않았다. 비탈을 개간해 어렵사리 한 해 농사를 꾸렸다가도, 그 다음해 비가 많이 내리든지 반대로 지독하게 가물어지면 산밭은 금세 산으로 돌아갔다. 차라리 옹기장이나 심마니로 사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힘 부치고 배 곯는 게 산촌의 생활이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춘궁기에 살아남으려면 그나마 의지가 되는 게 산이었다. 쑥 캐고, 나물 뜯고, 칡 캐서라도 먹어야했다. 피라미도 건지고, 짐승도 잡고, 나무 껍질로 죽도 쒀 배를 채웠다. 굶어죽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오직 산신의 은혜였다. 어딜 가도 땅을 주는 곳은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다음 해엔 그저 운이 좋기를 바랬다. 딸이 생기면 멀리 시집 보내고, 아들이 생기면 아주 어릴 적부터 일을 시켰다.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입에 숟가락질하기 어려웠다.

아침엔 밭을 매고, 오후엔 나무를 하고, 저녁엔 가축을 돌봤다. 그러다 허리를 필 때, 재를 넘겨다 보았다. 재를 통로로 사람들이 오갔고, 소문이 들락거렸다. 높은 갓을 쓴 양반들이 부임하러 오기도 하고 산발한 죄인이 끌려가기도 했다. 죽창을 든 반란군이 고개에 매복하는가 하면, 서슬 퍼런 진압군이 휘몰아치기도 하였다. 하늘의 주인이 곧 세상에 내려온다는 복음이 귀엣소리로 퍼지기도 했으며, 그런 건 말짱 거짓부렁이고 우리 모두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미심쩍은 말들도 오르내렸다. 새로운 세상이 벼락처럼 닥쳤다가, 헌 세상이 칼을 앞세워 일어선 사람들을 주저앉히기도 했다. 재는 늘 시끄러웠다.

서울(한양)까지 닿는 길은 두 갈래였다. 고개를 넘는 것과 배를 타는 것. 남한강 물길 따라 서울 마포까지의 뱃길은 조선시대 나라가 지정한 공식통행로, 하나뿐인 국로(國路)였다. 주로 물자가 오갔고 세곡이 진상되었다. 객손님도 실어 옮길 수 있었지만 삯이 비쌌고 텃세가 심했다. 사람들은 주로 고개 넘어 산을 타고 왕래했다. 봇짐장수는 짚신과 생선을 싸들고 재를 넘었고, 양반들은 서책을 메고 과거를 치러갔다. 박달은 근대 이전까지 영동과 호서, 영남인들이 서울에 이르는 가장 일상적인 대중교통로였다. 제천을 지나 박달재를 넘으면 충주였고, 그러면 서울이 한달음이었다. 재는 가파르고 거칠고 울창해서, 간혹 호랑이도 나왔는데 그래서 낮에 무리지어 고개를 넘어가는 게 보통이었다. 반대로 귀양오거나 서울에서 패가망신한 이들이 초라한 등짐으로 재를 되짚어 제천에 이르기도 했다. 잿길은 노상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통행객들 외에도 많은 것들이 교환되었다. 왕이 바뀌었다는 소문, 난리가 났다는 징조, 역병이 돈다는 경고, 세상이 바뀌었다는 선언 같은 것들이 때로는 파발마보다 빨리 고개마루에 퍼져 온 고을을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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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 경상도 선비 박달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가다 박달재 부근 평동마을의 한 민가에서 하룻밤 유숙하고 고개를 넘기로 한다. 그 집에는 금봉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어여쁘고 참하기가 근방에 으뜸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남자는 처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처녀는 내외하면서도 힐끗힐끗 남자를 넘겨다본다. 좋은 가문 출신에다 문장이 뛰어나다는 헌걸찬 총각은 진심 반 장난 반으로 슬쩍 추파를 던지고, 뜻밖의 유혹에 새침했던 아가씨는 볼을 붉힌다. 약속과 거부, 다짐과 사양이 밀고 당겨진 끝에 그들은 마침내 몸을 섞는다. 다음날 아침 주인네는 손님으로 왔던 총각이 사위로 변했음을 알아차린다. 극진한 대접과 은근한 확인이 이어지고, 하룻밤만 머물고 가려던 선비의 일정은 차일피일 미뤄진다. 시일이 촉박해져서야 비로소 남자는 시험볼 채비를 꾸린다. 금봉이 고개마루까지 눈물을 찍어가며 배웅하고, 박달은 서약을 거듭하며 마을을 등진다. 마침내 과거일이 지나고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난 후에도, 그러나 남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못내 기다리며 목이 조이고 살이 마르던 여자는 신열을 앓다 숨을 거둔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은 고개 따라 길가에 퍼지고, 남자는 그제야 금봉네를 찾아온다. 시험에 낙방해 돌아올 면목이 없었다면서 뒤늦은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그녀가 매일밤 놓고 빌었다는 정한수 그릇, 남편을 위해 종일 바느질했다는 저고리, 혼을 놓는 순간까지 쥐고 있었다는 제 머리카락을 확인하고 통곡하던 남자는 실성한다. 고갯길을 헤매며 그녀의 환영을 쫓다 결국 벼랑에 몸을 던지고 만다.

사랑 이야기로 윤색되어 있으나 실은 중세의 계급 착취와 성 착취의 습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비극은, 전국에 두루 퍼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춘향가’일 것이며,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의 이야기는 그 수많은 이형판본 가운데 하나이리라. 현실은 설화와 달랐을 것이다. 모든 고갯마루, 나루터 주막마다 숱한 춘향과 금봉, 몽룡과 박달이 있었을 것이고, 남자는 통정한 후에 급제를 했든 못 했든 여염집 여자에게 거의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엄중한 양반 사회는 반가의 여성조차 인권이 없었는데, 하물며 양민의 여식이나 기생의 딸이랴. 나쁘게 말하면 여행의 피로를 달래줄 만만한 성희롱이었을 것이며 좋게 말해도, 혼약 이행이 불가능한 하룻밤 풋사랑일 뿐.

사랑, 처럼 보이지만 실은 약탈, 일뿐인 현실이 애먼 처녀들을 수없이 잡아먹고, 서민들의 생활에 피울음을 더하는 사이, 정면으로 반격할 수 없는 민중들은 이야기로 복수를 꿈꿨다. 줄거리를 가공하고, 사실에는 빠져있던 가치를 새로 불어넣어, 불균형을 균형화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다른 결말을 자아냈다. 지순한 여자의 죽음에는 그에 걸맞게 남자의 후회와 투신자살을 끌어들여 격을 맞추고, 명백한 혼인 빙자 간음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오해가 벌어졌던 안타까운 순애보로 거듭난다. 줄기차게 계속되는 계급적 성적 약탈에는, 맹세가 지켜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결국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박달과 금봉 이야기에서 남자도 결국 죽게 된다. 춘향가에서는 반대로, 맹세가 끝까지 지켜질 때 비로소 모두 행복하게 된다. 상황이 뒤바뀌어 있지만 사실 동일한 구조인 셈이다)으로 착취하고 착취받는 상하 계급 모두에게 본보기이자 경고로서 기능한다. 이야기는 드러난 현실, 벌어진 비극을 출발점으로 삼아 비틀고 재구성한 다음, 가장된 해피엔딩 혹은 상호비극을 재현하면서 결국 힘세나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치죄하고, 그럼으로서 달라지는 현실, 개선된 미래를 꿈꾼다. 그것이 현실을 우회해 현실을 변혁하는 이야기의 아주 오래된 효능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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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너머 서울로 가는 사람들은 꿈이 있었다. 배곯지 않는 꿈, 착한 남편 만나 아들딸 낳고 화목하게 사는 꿈, 급제하여 이름을 높이고 문중을 빛내는 꿈, 등용되어 왕을 돕고 정치를 펼치는 꿈, 난을 평정하고 질서를 되찾는 꿈, 대처가 된 세상에서 기회를 얻으려는 꿈……. 수수하나 또 거창한 그런 꿈들이 광장에 왁자할 무렵 묵묵히 재를 되넘어 제천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살 곳을 찾아 헤매던 유민, 욕심없는 세상의 충만과 환희를 전하려는 스님, 시집에서 소박맞고 고향으로 쫓겨온 새댁, 도적을 맞거나 사기에 휘말려 밑천을 잃고 도망친 일가붙이, 유배를 명 받고 험한 데로 내몰리는 죄인, 배덕자들 눈을 피해 산 깊이 숨어들려는 교인, 가장 낮은 곳에서 제일 넓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혁명가,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통을 보듬으려는 학자, 농사짓는 사람들과 배움을 나누려는 교사 같은 이들이었다. 그 사람들 역시 품은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재 너머 서울가는 이들과는 달리 번영이나 출세를 추구한 게 아니라 사정없이 옥죄오는 세상에서 다만 오롯이 숨쉴 수 있는 틈 하나를 내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주류에서 밀려난 소수자들, 세상을 바꾸려 했다기 보다 자신과 주변을 바꿈으로서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조명하고 삶을 재구성한 별종들이었다.

그들은, 추위를 피해 한반도 중부까지 남하한 고대인들이었으며, 팍팍한 현실 위에 불국토를 세워 민중을 위무하려던 선승이기도 했고, 망한 나라를 뒤로 하고 피난처를 찾는 망명객이기도 했으며,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는 폐위된 왕과 신하들이기도 했다. 칼날이 뒤를 쫓는 수배자였고,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반란군, 외세와 불리한 일전을 감당하려는 한낱 선비였고, 제도교육의 허망함을 깨달은 교사였으며, 아름다운 곳을 찾기보다 찾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보려던 예술가였다. 그중 대다수는 세태와 폭력에 짓눌렸으나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수많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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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높이 504미터의 고개, 차령산맥의 지맥인 구학산(九鶴山)과 시랑산(侍郞山) 사이 말안장 형태로 움푹 들어가 주변 산들 가운데 그나마 덜 험한 이 영마루 박달고개는 한양과 문경, 충주와 제천을 잇는 교통로로 오래전부터 인마의 통행로였으며, 보부상의 운반로, 또 문화의 전파경로이기도 했다.

보다 세세하게 이 고개는, 추위를 피해 점말동굴을 찾아오는 구석기 유인원의 피한경로(避寒徑路)였으며, 지배계층과 불교가 서로 다투고 화해하며 정상까지 절간을 밀어올리던 화엄(華嚴)의 개화로(開花路)였고, 망한 신라의 왕족들이 안식처를 찾아가다 비로소 인생의 진실을 깨달았던 철학의 거리였다. 개선하는 몽고군을 고갯마루에서 덮쳐 패주시키고 마는 고려시대 별초군의 끈질긴 전적지이기도 했으며, 유배지로 쫓겨나는 어린 단종을 저버리지 못하는 생육신 원호의 ‘통곡의 벽’이었고, 거센 박해를 피해 잠시 토굴로 숨어드는 천주교인 황사영의 베이스캠프였다. 동학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바꿀 생각에 쉬 잠들지 못했던 농민군의 바람찬 노숙지였으며, 구한말 의병을 일으켜 외세와 긴 싸움을 시작해 끝내는 만주와 상해로까지 건너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뿌리(자양영당)가 자라난 곳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박달재는, 유행가와는 무관하게, 또 설화와도 상관없이 제천의 역사적, 문화적 관문, 서울과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를 잇는 한반도의 허리춤이었으며, 문명의 남하로(南下路), 혁명과 반혁명의 교차로이기도 했다.

지금은 고개 아래로 터널이 생기고, 고개 역시 깔끔하게 아스팔트 포장되어 자동차로 손쉽게 통과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산짐승에, 도적에, 난리에, 벼슬아치 등쌀에, 외세에 목숨을 걸어야만 넘을 수 있었던 곳.

이 고개를 오고 간 사람들의 기록과 역사적 사실 가운데, 이 책이 다룰 것들은 명백히 편파적이다. 앞서 언급한 소수자와 별종들, 또 평범한 사람들이 이 길고 구불구불한 고개를 넘어갔거나 넘어온 이야기, 온갖 핍박과 회유에도 끝내 넘어가지 않았거나 기어이 넘고 말았던 이야기들을 골라 엮으려 한다.

물론 이야기들은 과거와 현재를 때로는 정면에서 묘사하고, 때로는 우회해 비교하며, 때로는 비틀어 겹쳐볼 것이다. 박달과 금봉의 이야기에서 옛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그럼으로서 마치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역사적 현실을 지금-여기에 끌어오고, 제천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다사다난한 욕망을 우리의 그것과 견주어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다.

그들이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세계와 그들이 살고 싶었던 세계 사이에 하나의 결절점처럼 박달재가 있었다.

제천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항상 우뚝했던 고개, 어디로도 갈 수 있었던 고개, 생활이 너무 너무 팍팍하고 고단해질 때면 망상으로라도 먼저 넘어갔던 고개. 장애물이면서 길이었고, 문이면서 벽이었고, 현실이면서 꿈이었으며, 정형이면서 비정형이었고, 절망이면서 또한 희망이었던 고개. 언제나 두 겹이었던 고개, 박달재.

제천의 수많은 곳들 가운데, 가장 상징적이며, 반면 중립적이고, 또한 극히 양가적인 장소이기도 했던 박달재에서 진짜 제천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주 뻔한 이야기.

아주 천천히, 그 누군가를 잊어버릴만큼 느리게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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