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구 표류기-30(2)#스페인 산티아고

두번째 이야기

언덕에서 내려와 한참을 더 걸어 우린 산티아고에 입성했다. 굉장히 모던한 도시의 모습에 도착한게 맞나 하고 잠시 어리둥절 했지만 이내 마을 초입에 커다랗게 쓰여진 'Santiago de Compostela' 문구를 보고 나서야 드디어 우리가 산티아고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편에서 밝힌대로 순례자 전용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면 도시 외곽의 신시가지부터 들어가게 된다. 조언했듯, 여기서 대성당까지 걸어가는 동안 도시의 혼잡함과 소음으로 인해 마음이 흩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간의 노력과 배움의 시간들을 상기 시키며 곧 만나게 될 대성당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그 긴 거리가 두근거림과 설레임으로 가득 찰 것이다.

서서히 현대적 도시의 모습이 사라지고 구시가지의 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차와 사람이 뒤섞인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리막을 걸어가면 그 사이로 대성당 탑의 일부가 눈에 들어오고 서서히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것이 느껴진다.

중앙의 작은 광장이 나오고 우측으로 꺽으면 서서히 골목들 사이로 많은 기념품 가게가 눈에 띄기 시작하고 상당히 많은 순례자들과 관광객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자 이제 드디어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성당이 여러분의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걸어 '인마쿨라다 광장'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대성당의 좌측면을 먼저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유서깊은 '셀미레스 궁(palace)', 그리고 궁안의 호텔이 또다른 멋진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이 '인마쿨라다 광장'에 도착했다면 여러분은 '셀미레스 궁'과 연결된 '아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아치를 지나면 여러분이 사진에서 많이 접했던 '오브라도이로 광장' 을 만나게 되고 그 맞은편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산티아고 대성당' 이 고된 순례에 지친 순례자들을 맞이해주고 보듬어주기 위해 굳건히 서있다.

우리는 이 인마쿨라다 광장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이제 저 아치만 지나면, 이후의 일정은 갈리더라도 우리가 함께 목표했던 공동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아치를 통과했다.

산티아고를 마주한 우리는 생각보다 다들 덤덤했다. 감격스럽지 않은게 아니었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너무 행복했고 웅장한 대성당 앞에서 가슴이 벅차 올랐다. 하지만 마치 모두가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 산티아고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조용하고 단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다들 직감한것 같다. 도착했다는 행복감과 성취감 만큼 짧은 기간 함께 동고동락 하며 정든 동료들과 이 이상은 함께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대성당 앞에서 각자 조용히 자신의 안전한 순례길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서로를 축복해 주었다. 요란스럽게 축하하는 순례자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렇게 산티아고를 맞이하는게 나에게 더 맞는 듯 싶었다.

광장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룹이 단체로 모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혼자 산티아고에 도착해 광장 뒤쪽 기둥에 기대어 대성당과 순례자들을 보며 옅은 미소로 축하의 자리에 참여하는 각양각색의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모두의 모습이 옳고 모두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저마다의 시간을 보낸뒤 우리는 아직 시간이 남은 '정오의 미사' 전에 숙소를 구하기 보단 순례자 증서를 먼저 발급 받기로 했다.

지도를 보고 대성당의 우측을 끼고 돌아 아름다운 건물 사이로 들어가 산티아고의 순례자 사무소로 들어갔다.

사무소 내부의 풍경은 대략 이렇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영광스런 증서를 발급받기 위해 기다란 줄을 서 있다. 많은 사람들로 조금은 복잡하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지만 누구하나 표정이밝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렇게 이곳에서도 순례자 간의 축하는 계속 된다.

순례를 마치고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면 여권에 확인 도장을 쾅! 찍어주고 사진에 보여지는 순례자 증서를 발급해준다.

나는 이후에 '피스테라(Fistera)'와 '무시아(muxia)' 까지 걸었기 때문에 총 세장의 증서를 발급 받았다. 왼쪽부터 산티아고, 피스테라, 무시아의 순례자 증서 되시겠다.

이제 순례자 증서도 받았으니 정오의 미사에 참석하러 가야한다. 그 전에 대성당 입구쪽 계단을 올라가 우측을 바라보면 코너에 작은 상점이 있고 이곳에서 미사시간 동안 짐을 맡겨주는 '유료' 서비스가 있으니 짐은 보관하도록 하자. 대성당 내부로 백팩은 못 들고 들어가며 숙소를 잡고 짐을 두고 나올것이 아니라면 이곳에 짐을 맡기고 이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다면 순례자를 위한 '정오의 미사'에 참석하도록 하자.

대성당 안은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뒤섞여 늘 사람들로 붐빈다. 장인 '마테오'의 역작인 '영광의 문', 중앙 기둥인 '이새의 나무'에 손을 얹는것은 이제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 보단 미사에 참석 전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이 조각들을 찬찬히 살펴볼 여유를 가져보자.

중앙 기둥에는 '영광의 그리스도'가 부조로 새겨져 있고 그 아래 '성 야고보'가 순례자와 그리스도를 이어주는 중재자로써 앉아있다. 수 세기에 걸쳐 수백만의 순례자가 이 조각상들을 어루만져 단단한 대리석이 닳아있을 정도다.

중앙 기둥 뒤쪽으로 건너가 '성인에게 이마대기' 의식을 취해보자. 그동안의 순례길을 회상하며 갖가지 감사와 삶의 불필요한 걱정들을 버리는 잠시간의 시간을 갖는 것을 추천한다.

주제단의 계단을 올라 야고보 조각상을 포옹하는 것도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이다. 때론 줄이 길어 그냥 감상을 하며 지나치는(나같은) 순례자들도 있지만 끈기를 가지고 기다린 뒤에 조각상을 포옹하고 그간의 고생을 야고보 성인의 귓가에 속삭이며 위로를 얻어보는 것이다.

미사는 늦은 시각에 간다면 편안히 앉아서 참여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가는것이 좋다. 우리는 시간에 거의 맞춰가는 바람에 앞쪽에 앉지 못하고 뒷쪽에 자리 잡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보다 늦은 순례자들은 우리 뒤에 서거나 바닥에 앉아 미사에 참석해야 했다.

미사는 다른 성당에서 느껴보지 못한 웅장함 속에 진행이 되었다. 그러는 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와 미사에 참석하려고 노력했으며 수많은 순례자의 그간의 노고가 위로받는 미사는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미사 중간에 거대한 향로를 피우는 의식이 진행되었다. 원래 몇명의 수행원을 필요로 하는보기드문 이벤트였으나 최근엔 예배의 한 순서로 거의 자리 잡았다고 한다.

수세기 전부터 피곤에 절어있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순례자를 위해 행기로운 향을 쏘이게 하는 목적으로 진행되는 이 이벤트는 특히 순례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사진과 영상을 담으려는 몇몇 극성맞은 순례자와 관광객들 덕에 그 성스러움이 약간은 퇴색된 느낌이었다.

사진상에 보이는 가운데 두갈레 줄이 향로를 좌, 우로 움직이게 하며 사방으로 항을 퍼지게 만든다.

미사를 마치고 대성당에서 합류한 알렉스와 맥스까지 우리 일행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레스토랑을 둘러본 뒤 가장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으로 가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뒤 이미 셀미레스 궁 호텔에 체크인을 한 알렉스, 맥스와는 저녁에 축배를 들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가방을 되찾은 뒤 숙소를 구하기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조나단은 두 영국 친구와 함께 묵는다며 그들과 함께 이동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그 놀라움의 정도가 크던 작던 기적같은 만남의 연속을 가질 수 있었다.

한명한명 이름을 거론 할 수 없고 나의 여행기에서 모든 이들과의 만남을 일일히 기록하진 못했지만 연간 수만명이 방문한다는 까미노는 한달이란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 중엔 그저 스쳐 지나간 인연이 훨씬 많겠지만 단 한번이라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며 그리워지는 얼굴들이 있다. 각자가 자신의 일정에 맞춰 걷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어 길 위에서 아쉬운 이별을 하곤 하지만 바로 이곳, 산티아고는 각자 다르게 걸어온 순례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주며 감격의 재회를 돕는다.

우리 역시 수많은 그리웠던 순례자들과 감격의 재회를 했으며 그 중 단 하룻밤을 함께 묵었지만 가장 그리웠고 기억에 남았던, 순례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떠올리며 소식을 궁금해하던 이남자, 니꼴라를 만난 것이 가장 기적같은 만남이 아닐 수 없다.

함께 묵을 알베르게를 찾던 중 니꼴라를 만난 우리는 그 누구를 만났을 때보다 놀랍고 반가웠다. 그를 만난게 그토록 놀랍고 반가웠던 이유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걸었기 때문에 이미 모든 순례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자초지종을 들으니 산티아고에 도착 후 '무시아'와 '피스테라'까지 걷고 이제 막 산티아고로 돌아온 참이라고 했다. 그토록 보고싶던 니꼴라를 그 넓은 도시에서 만난것도 신기하지만 두개의 도시를 더 돌고 돌아온 날 마주치다니. 처음 만났을 때 연락처를 미리 얻어놓지 못해 매우 아쉬었던 우리는 니꼴라를 만나고 바로 인증샷과 함께 연락처도 받아 놓았다. 그는 이미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가 알베르게를 체크인 하고 저녁에 다시 만나 함께 축배를 들기로 했다.

반가운 만남을 뒤로하고 알베르게를 찾기위한 우리의 발걸음은 계속되었다. 우리가 계속 알베르게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우리가 산티아고에 도착한 날이'성 아고보 축일'과 겹친 기간이어서 도시 내에 사설 알베르게는 이미 자리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마을 외곽에 위치한 산티아고 공립 알베르게로 가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산 라자로 산티아고' 메인 알베르게는 12세기부터 존재 해 왔으며 나병 환자를 돌보던 병원으로써도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도시의 방벽으로부터 약간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올라가기엔 약간 가파른 언덕이지만 알베르게에 올라 바라보는 산티아고의 풍경은 고생한 만큼의 만족감을 선물한다.

체크인을 마치고 각자 짐 정리와 샤워를 한 뒤에 연락처를 받아놓은 니꼴라를 만나기 위해 마을로 다시 나왔다. 라이언과 네이트는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고 나와 원, 그리고 영 우리 셋은 니꼴라와 간단한 요기를 하기로 했다.

길거리에 길게 늘어서 있는 바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앉고 간단한 타파스 몇가지와 음식을 시켰다. 갈라시아 지방으로 들어온 뒤로 늘 맛있게 먹었던 '갈라시아 에스떼야' 를 마시니 시원한 맥주가 온 몸에 퍼지며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동안 정말 보고 싶었던 니꼴라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의 기적같은 만남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까미노 위에서 만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반가운 얼굴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다.

함께 Pharrell Williams의 Happy에 맞춰 길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었던 멕시코 아주머니들, 호주의 사라와 함께 동행하던 켈리포니아 미국인 여성, 그외 사교성 좋은 원과 안면이 있는 수많은 순례자들. 그들과의 만남 하나하나가 이번 우리의 여정의 피날레를 더욱 아름답게 채워주었다.

맥주를 마신뒤 예정대로 라이언, 네이트, 알렉스, 맥스, 조나단과 나머지 우리 일행은 작은 광장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최후의 축배를 들기 위해 다시 만났다.

이 이후의 시간은 즐거운 축하와 헤어짐의 아쉬움이 공존하는 복잡 미묘한 시간이었다.

기쁨의 축배를 들며 서로를 축하해주고, 앞의로의 계획을 물으며 서로간의 앞날을 축복해주기도, 서로 아직 건내받지 못한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인연의 끈을 이어가길 희망했다.

생전 보지못한 라이언의 진지한 모습과 내일이면 코리안들을 볼 수 없다며 울먹거리는 모습에 다함께 웃기도 하고 모두가 흥을 돋구며 기쁨과 술에 취해 길고도 짧았던 각자의 위대한 도전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직 흥이 가시지 않은 라이언과 원은 손을 잡고 걸어가며 알 수 없는 말을 흥얼거렸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그동안 쌓은 수십일 간의 피로와 오늘의 취기가 섞여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체크아웃 시간 전에 일어난 우리는 전날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성당을 둘러보며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던 우리는 원의 아이디어로 마지막 음식은 길 위에서 즐겨 먹었던 순례자 단골 메뉴 '하몽 샌드위치'를 기바닥에 앉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이 후에 일정은 각자가 달랐다. 원과 나는 '피스테라'와 '무시아'까지 걸어가기로 했고, 영은 한인 만박으로, 라이언과 네이트, 조나단, 알렉스 그리고 맥스는 버스를 이용해 피스테라에 간다고 했다.

이제 정말 모두와 이별이다. 마지막은 라이언과 네이트, 영만이 함께 해주었다. 라이언은 또다시 울먹이기 시작했고 네이트는 어른스러운 다정한 미소로 인사 해 주었다. 피스테라에서 곧 만날 영과는 잠시만 안녕을 외치며 곧 만나길 희망했다.

그렇게 이제 우리는 길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또다시 각자의 길 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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