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의혓바닥>. 만두.

계절과 음식만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조합이 또 있을까. 옷차림과 함께 먹거리는 계절의 변화를 감지시키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이다. 지금에야 하우스재배니 뭐니해서 겨울에도 푸성귀는마트에 가면 널렸고, 돈만 많이 들고 가면 한겨울에도 여름 과일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지만, 신기하게도 여름이면 시원한 수박이 생각나고, 겨울이면 아랫목에서까먹는 귤이 생각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나에게는 유독 겨울이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만두다. 호방한 북방의 피를 받은 우리엄마의 고향, 경기도 북부에서는 겨울이면 하루걸러 한번씩 김치만두를 해 먹었다. 쉬어빠지기일보 직전인 묵은 김치를 꺼내 잘 털어내고, 숙주를 삶아 먹기좋게 썬 다음, 두부를 보자기에 싸서 꼭 짜낸다. 그리고, 이 모든 재료를 잘게 다지고 돼지고기를 섞어서 만두소를 만드는데, 유난히먹거리에 장인정신을 발휘하던 우리 외가에서는 간 돼지고기는 식감이 별로 좋지 않다면서 숭숭 썬 돼지고기를 고깃간에서 가져와 무쇠로 만든 식칼로잘게 다졌다. 그러면 어떤 것은 조금 작고 어떤 것은 조금 크게 썰려서 만두소의 씹는 맛이 있었다. 씹는 맛 하나를 위해 그 힘든 공정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덩어리가큰 돼지고기가 만두소에서 씹히는 맛은, 라면땅에 별사탕만큼 별미였던 것은 확실히 맞았다. 실하게 큰 돼지고기와 살짝 섞여있는 비계가 같이 씹히면, 입 속가득 뿌듯함이 밀려왔다. 만두피도 너무 얇아서 글루텐의 포만감이 없어서도 안되고, 너무 두꺼워서 수제비같은 맛이 나서도 안되었다. 그 적당한 두께감을최씨의 며느리들은 귀신같이 알았다. 만두소의 양도 정확해야만 했다. 너무많이 들어가 끓일 때 터지기라도 하면 사골국물의 순결한 맛이 침범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너무 적게들어가면 외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건 속 먹자는 만두여, 겉 먹자는 만두여?!" 추운 겨울, 시골 외가에 가면 길쭉한 모양의 방에 아랫목은 구들장이익어서 종이로 바른 바닥은 갈색빛이 돌았다. 발도 디딜 수 없이 뜨끈뜨끈한 아랫목은 항상 이불로 덮여있었다. 웃풍이 심한 시골집의 필수 아이템은 화로였다. 화로를 윗목에 두고추위를 겨우 면한 외할머니는 도마와 무쇠칼을 놓고 만두피를 썰어서 밀대로 밀었다. 엄마와 나는 중간목쯤에앉아 유물처럼 생긴 숟가락을 열심히 놀리며 만두를 빚었다. 평생을 구부려서 모든 일을 한 할머니의 등은자면서도 펴지지 않아 할머니는 새우처럼 모로 누워 잠을 잤다. 자식들을 위해, 손주들을 위해 겨울이면 우리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만두를 빚어야 했을까. 설에 만두국을 차례상에 놓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던 외가의 동지섣달 그믐날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섣달 그믐날은 자지 않고 새는 것이 풍습이라 하여 모든 며느리들은 밤을 세워 만두를 빚었다. 서른명도 넘는 식구들이 먹을 만두를 빚으려면 족히 삼사백개의 만두를 만들어야 했다. 밤새워 만두를 빚으며 출출하면 즉석에서 만두를 쪄먹으며 또 만두를 빚었다. 커다란스댕쟁반에 가득 만들어진 만두는 대청마루에 차례차례 줄을 섰고, 깜깜한 그믐밤 고만고만한 만두들이 줄줄이앉아서 전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던 광경은 잊을 수가 없는 다정한 풍경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살짜쿵동사한 만두는 다음날 커다란 가마솥에서 가래떡과 함께 걸출한 만두국으로 태어났다. 다른 반찬은 아무것도필요치 않았다. 장독대에서 방금 건져온, 살얼음이 살짝 껴있는동치미 국물 하나만이 상위에 올라왔다. 커다란 냉면그릇에 가득 담긴 만두국 하나에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충분히 행복했다. 서로 자신의 그릇에 담긴 만두를 한두개씩 건져 식구에게 덤으로 얹어주며 밥을 먹었다. 상은오래되어 귀퉁이의 옻칠은 다 떨어져 나갔었지만, 이날만큼은 누구도 가난을 걱정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 넓직한 대청마루가 있던 외가집은헐리고, 그 자리에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양옥집이 세워졌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밤을 세워 만두를 빚던 진풍경은 사라졌다. 여전히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해주시던 그 방식으로 만두를 빚어서 우리를 먹인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만두를 먹으면서도 만두를 그리워하는 것은 밤을 세워 만두를 빚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식구들의 풍경이다시는 재현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세월은 무상하고 추억은 마음속에서만 반짝반짝 빛난다.

짧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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