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크만 전시회

막스 베크만 얘기를 한 적이 있다(참조 1). 영국의 국립초상화미술관 전시회 때문에 언급했었는데, 아예 본국 베를린 미술관에서 “막스 베크만과 베를린”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중이다.

발렌타인 데이 때 베를린에서 데이트하는 분들은 큰 마음 먹고(…) 가 볼만한 전시회이다.

전시회명: MAX BECKMANN UND BERLIN / 막스 베크만과 베를린

기간: 2월 15일까지

장소: 독일 베를린, Berlinische Galerie

웹사이트: http://www.berlinischegalerie.de/de/ausstellungen-berlin/aktuell/max-beckmann-und-berlin/

막스 베크만이 활동했던 시기는 20세기 초부터이다. 이른바 분리파 운동(참조 2)이 일어났던 시기인데, 젊은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는 모두까기 인형으로 등장했었다.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고, 그로부터 표현주의로 변이해가는 과정(참조 3)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명한 화가들을 모조리 다 비판한 것이다.

그걸로 끝났으면 물론 그의 이름은 역사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봐도 표현주의라 할 수 있겠지만 키르히너가 그러했듯 베크만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고, 그 시작이 바로 베를린 생활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가령 르누아르를 말할 때 파리를 빼놓을 수 없듯, 베를린을 빼놓고서 베크만을 거론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내가 괜히 발렌타인을 거론하지 않았다. 베를린에서 그는 사랑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같은 예술학교 선배인 미나(Minna)를 사랑했던 그는 그녀와 곧바로 결혼한다.

…물론 그는 나중에 다른 여자(Quappi)와도 결혼했지만(믿을 수 없으나 미나와는 평생 친구로 남았다고 한다. 심지어 미나 베크만은 뮌헨에서 베크만협회(Max Beckmann Gesellschaft)까지 만들었다!), 그의 황금시절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이번 전시회다. 보통 베크만 전시회! 하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칙칙한 대머리의 베크만만 등장하기 때문이다.

명랑한 얘기는 여기까지. 모더니즘을 스스로가 깠었지만, 나치 정권은 베크만도 모더니스트라 깠었다. 아니, 깐 것만이 아니라 교수직에서 몰아내고 작품을 몰수했었다. 천만 다행(?)으로 그는 네덜란드를 거쳐(참조 4) 미국으로 건너갔고, 미국에서 다시는 독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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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The Great War in Portraits(2014년 3월 4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2218055659831

2. 벨린과 빈(2014년 2월 13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2175105154831

3. 인상주의-표현주의 전시회(2015년 5월 2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253590589831

4. 제2차대전 이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고향인 독일은 그에게 “헬독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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