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드 퐁파두르 - 초상화로 따라가는 로코코 시대의 아이콘

퐁파두르 후작부인으로 불린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절세미인이자, 문화 예술의 후원자이자 음악가, 연극배우, 뛰어난 정원사, 그리고 루이 15세의 공식 정부이자 국정의 실세로서 베르사이유 궁에서 20년을 풍미했던 시대의 아이콘.. 닥터후 시즌2 에피소드4에 소개된 마담 드 퐁파두르...

여성이 권력의 정점에서 20년이라는 세월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요...

프랑스에서 가장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로코코 시대에 그녀는 시대의 아이콘요 스타일리스트였고 트렌드 세터였어요.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퐁파두르(Ponpadour)형으로 유행했고, 프랑스의 독특한 스타일인 세브르 도자기가 태어난 모태가 되었고, 당시에 위험하게 여겨졌던 계몽주의를 옹호해 백과사전의 편찬과 판매를 허용하게 하는 등 다방면에 걸친 활약을 보인 진정한 의미의 재색을 겸비한 여성이었습니다.

<Portrait of the Marquise de Pompadour>, 1749-1750, Francois Boucher (French) 퐁파두르 부인 28~29세 당시

로코코 시대의 대표 작가 중의 한 명인 부셰의 작품인데요. 부셰는 원래 초상화 전문 화가는 아니기 때문에 그가 남긴 초상화는 몇 점 되지 않는데, 대다수가 그의 고마운 후원자였던 퐁파두르 부인을 그린 작품이죠.

퐁파두르 부인은 귀족 출신은 아니고 은행가인 아버지.. 즉 신흥 부르주아 집안의 자녀로 태어나자마자 점쟁이가 "왕의 여자가 될 것이다" 라는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과 인문학, 외국어에 집중 교육을 받은... 준비되고 길러진 <왕의 여자>였던 것이죠.

1745년 스물 네살의 나이로 루이 15세의 정식 애인이 되었는데요.. 이 전에 이미 사촌과 혼인하여 두 번 출산의 경험이 있는 유부녀였죠. 왕권은 신이 내린 것으로 왕명은 곧 하늘의 명.. 루이 15세는 이혼을 명하고, 절차를 거쳐 베르사이유 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계급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집안의 희망에 따라 왕의 정부로 길러진 그녀... 자신도 이런 정해진 인생에 대해 아무런 고뇌와 불만이 없었을까 궁금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이 남아 있지 않으니..... 결혼해서 자기 자식까지 있는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왕의 정부가 되서 사라지면 남겨진 아이의 심정은 어떨지.. 화려한 그녀의 업적 뒤에는 이해하기 힘든 개인사도 남아 있답니다.

부셰가 그린 작품을 보면 그녀가 루이 15세의 정식 애인이 되고 4-5년 지난 후의 모습인데요.. 그녀가 유행시킨 퐁파두르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을 부풀리지 않고 뒤로 넘기고, 리본이나 진주, 조화 등으로 장식하는 스타일이었는데요.. 그녀 이전에 유행했던 <퐁탕주 스타일> - 선왕이었던 루이 14세의 정부였던 공작부인이 유행시킨 - 은 아래와 같아요.

퐁탕주 스타일, 영화 <공작부인 - 세기의 스캔들> 중에서

머리를 높이 올린 스타일인데 흠... 마치 머리 위에 불이 타오르는 것 같고, 머리 장식으로는 꽃과 실제 과일까지 올렸다고 하네요.

얼굴에 여자들이 애교점을 찍는 게 유행했다는 점의 위치에 따라 자신의 기분이나 컨디션을 표시한다고 합니다.

아래와 같이 입술 위에 찍은 점은 "오늘 내 몸이 뜨거워요" 라는 의미로 남성을 유혹하는 의미였다고 하네요.

<The Marquise de Pompadour>, 1755, Maurice Quentin de La Tour (French), 34세

퐁파두르 부인이 후원했던 또다른 화가인 라 투르는 파스텔화의 대가로 그의 초상화는 심리 표현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고, 위의 작품도 그의 걸작 중의 하나로 꼽히죠.

작품을 보면 소위 당시의 '밸 사방(학식있는 여인)'의 이미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어요. 그림을 확대해서 보시면 책상 위에 있는 장서는 그녀가 편찬에 참여하고 판매를 허용하게 만든 계몽주의의 상징 백과사전이 있고, 그외의 다른 책들과 손에 든 악보를 통해 그녀가 지식과 예술에 조예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죠.

어렸을 때부터의 체계적인 수업으로 인해 교양과 우아함이 몸에 배었고, 미모 또한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The Marquise de Pompadour>, 1757, Francois Boucher (French), 35세

리본과 레이스, 장미가 수놓아진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부셰의 작품은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중에서도 대중적 인기가 높은 작품입니다. 여전히 그녀의 손에서는 책이 떠나지 않고 있고, 협탁에는 평지와 깃털 펜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이네요.

베르사이유 입성 11년차 시절로 국정 운영에 전성기를 보내고 있을 때로.. 국정의 실세로서 왕의 집무실 바로 옆에서 대기하며 많은 일을 처리했다고 하네요. 조금 색이 튀는 듯한 볼터치도 당시에 유행했던 스타일이래요. 우리가 보기엔 좀 촌스러워 보이긴 하지만요 ^^* 어두운 배경 속에 있는 그리스풍 조각상은 큐피드상인데 이는 퐁파두르 부인을 미의 여신 비너스로 상징하기 위함으로 보이네요.

비너스로 상징한다는 것에서 참 아이러니한 것이... 24세에 루이 15세의 정부로 간택되고.. 약 10년 가까이.. 정확하게는 아마 그녀 나이 30세 시절부터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고 하네요. 35세 당시면 몸이 많이 안 좋을 때였을텐데 엄청난 화장으로 커버했다고 합니다.

왕실 의료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많은 내용을 팩트에 근거해서 살펴 볼수 있는데, 그녀는 지극히 아름답고 지적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불감증이었다고 하네요. 루이 15세는 알아주는 정력왕에 수많은 여성편력으로 사생아만 30명이 넘었다고 하고요.

단순히 왕의 여자로서 육체적인 매력만이 무기가 아니었던 그녀였기에 수많은 정적들, 그리고 새로이 등장하는 젊고 아리따운 왕의 여자 후보들과의 암투가 있었겠고... 매일 밤 연회.. 그리고 20대 중후반의 대부분을 루이 15세의 왕성함을 상대하다보니 건강이 좋을래야 좋을 수는 없었던 것 같네요.

비데의 창시자는 퐁파두르 부인이라는 게 정설

<The Marquise de Pompadour>, 1759, Francois Boucher (French), 38세

권력의 정점에 오래있었고.. 그에 따라 적들이 많았던만큼...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비평도 많이 있었겠죠. 그녀는 43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는데요.. 그녀의 묘비명에 쓸 문구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적어놓은 악평가도 있었다고 하네요.



"20년은 처녀로,

15년은 창녀로,

7년간은 뚜쟁이였던 여인,

여기에 잠들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던 결혼 전... 그리고 왕의 여자가 되어 침대에서 함께 한 15년, 그리고 공식 애인 자리에서 물러나 왕의 조력자로 국정을 운영하며 왕의 새로운 여인들을 물색해 제공했던 7년...

위의 작품에 보면 그녀의 손에는 더이상 책이 들려있지 않고 대신 부채를 들고 있죠. 더이상의 지적인 활동은 포기했다는 의미일까요.. 그녀의 왕성했던 지적인 욕구와 예술혼은 건강의 악화와 함께 어느 정도 시들어 간것으로 보이네요.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그녀의 자세도 어딘가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이구요. 그녀는 30세가 넘어가면서 왕과의 잠자리는 더이상 하지 않았지만 루이 15세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자 친구요 국정의 조력자로 죽는 날까지 남았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의 여자로서의 1차적인 의무(?)인 잠자리를 하지 않음에도 국정의 실세로 그 권좌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요. 대신 그녀는 궁 안에 각처에서 데려온 미녀들을 모아놓고 왕에게 고르게 하여 매일 밤 젊고 매력적인 미녀를 대령하는 '뚜쟁이'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악평이 나오게 된거죠..

<Madame de Pompadour at her Tambour Frame>, 1763-1764, Francois-Hubert Drouais (French), 42~43세

이제는 퐁파두르 부인과 이별할 시간이 왔네요. 드루에의 작품으로 자수틀 앞에서 수를 놓고 있는 장면을 그렸어요. 이 작품은 그녀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 됩니다. 불과 몇 년 새에 그녀는 몸도 불었고, 머리도 희었고, 턱도 이중턱이 됐어요 ㅠㅜ

갑자기 늙어버린 것의 배경에는 그녀가 혁신적으로 추진했던 오스트리아와의 외교정책.. 그 결과로 결국 7년 전쟁에서 패하게 되어 프랑스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되었기 때문일 거에요. 결국 원래 건강이 안 좋던 그녀에게 이런 스트레스가 너무 컸었는지 이 작품을 완성하고 얼마 안되어 마담 드 퐁파두르는 유명을 달리하게 되죠.

루이 15세의 영원한 사랑이었고, 수많은 예술가와 계몽주의자들의 뮤즈였던 마담 드 퐁파두르... 그녀의 삶에는 분명 빛과 그림자가 있었죠. 예술을 육성하고 후원한 행위 자체가 자신의 취향에 따른 거대한 사치로 국비를 낭비했다는 평가도 있구요.. 그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일테니 어쩔수 없는 운명이겠죠.

저는 문화의 애호자이자 학구적 열의와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던 그녀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싶어요. 아 그리고... 건강관리와 운동의 중요성도... 동안 미모도 건강이 흔들리고 스트레스 받으면 한방에 훅간다는 진리... 심각하게 로코코 시대와 그 시대를 풍미한 여성의 얘기를 끌어오다가 마무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 끝내게 되네요. 혹시 마담 드 퐁파두르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들을 참조하시기 바라요. 네이버 캐스트엔 꽤 괜찮은 칼럼들이 많이 있답니다.



마담 드 퐁파두르 - 삶과 사랑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0&contents_id=4438)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은 여인 - 마담 드 퐁파두르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56)

마담 드 퐁파두르 - 계몽 사상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0&contents_id=4425)

마담 드 퐁파두르 - 벨 사방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0&contents_id=4332)

"명화와 의학의 만남" - 퐁파두르 부인의 흥망, 문국진 著

- 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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