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의혓바닥>. 백화점과 나

어제, 짜투리시간이 남아서 근처의 백화점에 갔다. 전날 친구들에게 요새 유행하는 야상패딩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들은 차였다.전지현이 유행시킨 털이 북실북실 달린 야상이 올겨울 잇 아이템이라나 뭐라나. 겨울 겉옷을산지는 사년도 더 됐는데, 대체 유행하는 옷이 어떤 스타일인지 눈요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간 걸음이었다. 백화점이란 곳은 나를 묘하게 주눅들게 하는 이상한 곳이다. 누가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섣불리 매장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지도 못한다. (나만 그런가?) 텍을 뒤집어 본 순간, 그 물건이 어차피 오르지도 못할 나무라는 결론을 느끼기가 괴로운 것일 수도 있다. 사랑받기를 차단당해 버릇했던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제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매장을 허성허성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야상패딩이 있길래 택을 뒤집어보았다.세상에... 1800,000원. 미쳤구만... 다른 매장으로 들어간다. 괜찮은 물건이 있다. "이건 얼마에요?" 모기만한 목소리로 애써 태연한 척 물어보았더니, 직원은 동네 껌값얘기하듯이 대답한다. "30프로 디씨해서 89만원이에요. 물건 잘 나왔어요. 라쿤털도 풍성하구요. " 눈도 못 마주치고, 녜에...잘봤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뒤돌아 나온다. 그렇다. 나는 비싼 옷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얘기하는 청승맞은 인간이다. 옷한 벌에 89만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었던 적은 태어나서 평생 한 번도 없다. 나 같은 사람이 대부분이라면 백화점은 일찌감치 파산했을 것이다. 몇백만원하는명품도 껌처럼 살 수 있는 사람들과 나의 사이가 하늘과 땅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차차, 딱 한번 미친 척 하고 80만원짜리 가죽자켓을 산 적이 있었다. 월급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예쁘고 싶었던 사회초년병 시절이었다. 한달에 팔만원씩 10개월을 갚아나가는데 살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좋은 옷은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채 3년도 못 입고 낡아서가 아니라 유행이 지나서 입을 수가 없었다. 옷도늙는다더니, 구닥다리가 되어 가는 값비싼 옷을 보는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쓰렸다. 저런 감정을 느낄 때면(자주 느꼈다는 얘기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오발탄'의한 구절이 자꾸만 머리 속을 맴돈다.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주인공에겐 몫돈이 좀처럼 모이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사면 구멍이 나지 않는, 비싼 나이롱 양말을 살 수가없다. 푼돈을 줘도 살 수 있는 면양말을 사서 (지금의 논리로따지지 말자. 그때는 면이 좋고 나이롱이 나쁜 섬유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다) 조금만 신어도 구멍이 나는 양말을 계속해서 기워 신어야 한다. 나이롱양말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가난은 어쩔 수 없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잔인한 굴레인 것이다. 그 시절 그 소설이 마음에 콕 박혔던 것은, 나에게도 가난이 쓸데없이 나를 주눅들게 하는 구질구질한 굴레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기실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한 벌에 10만원이 넘는 (삼십년전이니 진정 큰 돈이었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가 더 예쁜지, 게스청바지가 더 예쁜지 하는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이죽거렸다. '청바지가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그렇게 비싸.' 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경제적포지셔닝이 다른 나는 의도하지 않아도 아웃사이더였다. 애써 속물적인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 척하며 현학적인이야기와 예술가의 이야기로 나름 포지셔닝을 달리했다. 하지만, 한창예민한 여중생이 예쁜 청바지가 입고 싶지 않고, 가난이 부끄럽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또한 사랑받지 못할 바에야 사랑따윈 필요없다고 외치는 허세일 뿐이었다. 앞동에바이올린을 전공하던 처지가 비슷한 친구가 없었다면 나는 비뚤어졌을지도 모른다. 없는 살림에 레슨비도 비싼 바이올린을전공하던 0영이는 좌석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이면 옆에 앉아 이렇게 얘기했다. "아니, 나는이해할 수가 없어. 가난하지 않더라도 말이야. 같은 값에옷을 열 개를 살 수 있는데, 그럼 마음대로 골라입을 수도 있고, 그게 더 실속있는 거 아냐? 친구한테 그렇게 얘기했더니 나보고 참 낙천적이라고 얘기하더라, 나원참." 0영이의 엄마는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0영이가 입을 흰색 블라우스와 까만색 긴 치마를 고르느라 동대문시장을 이잡듯 뒤지는 검소한 아줌마였다. 아니, 검소한 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검소한 것이 아니라 검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으니까. 다른 아이들이모두 양복점에 가서 드레스를 맞출 때, 0영이는 엄마가 재봉틀로 줄여주신 검은색 치마를 입고 공연을했다. 가난이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은 대단히 중요했다.비참함이 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0영이는밝은 아이였고, 밝은 기운은 나까지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보니, 대학에 가자마자 미친듯이 레슨 아르바이트를 하던 0영이는요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이제 가난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다.(그렇다고 풍족하지는 않지만말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가난에 주눅든 아이가 산다. 가난에 주눅든 아이는 비굴해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남에게신세지는 것을 지나치게 수치스러워 한다. 여전히 백화점에 가는 것을 불편해하고, 비싼 옷을 선뜻 사지 못한다. 검소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더 우선한다고 생각하며 산다. 혜민스님이나법륜스님의 말씀을 듣고 진짜로 초연해진 것은 아니다. 사실은 초연한 척 하는 것이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더 싫다. 여름에 옷을 사는 것은 이렇게까지 부담스럽진 않다. 하지만 겨울은쥐약이다. 이래저래 올 겨울은 싫은 이유만 한가득이다.

짧은 글을 씁니다.
Follow
4.7 Star App Store Review!
Cpl.dev***uke
The Communities are great you rarely see anyone get in to an argument :)
king***ing
Love Love LOVE
Downl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