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 제쳤다는 진짬뽕이 나가사키 뒷골목서 탄생한 뒷얘기

글 | 김태형 주간조선 기자

2015년 6월 어느 날 해질 무렵 일본 나가사키의 한 골목길. 한국인 3명이 나타나 마치 도둑처럼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잠시 후 이들은 한 짬뽕집 뒤편의 음식물 보관박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 명은 망을 보고 두 명은 음식물을 해체했다. 이들이 이 골목길에서 음식물 보관박스를 뒤진 것은 두 번째였다.

새벽에도 한 차례 음식물을 뒤집어엎었지만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이들은 한 번만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악취를 참고 음식물 보관박스를 헤집었다. 순간 더러운 상자들과 기름때가 묻은 식재료 사이에서 뭔가 단단한 것이 잡혔다. 바로 국물을 우리고 버린 닭 뼈였다. 음식물 때문에 손이며 옷은 엉망이 됐지만 닭 뼈를 든 이들의 입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제 대박만 남았다.’ 똑같은 생각이 3인방의 머리를 스쳤다. 그들이 음식물 보관박스 속에서 그토록 찾고 싶었던 건 바로 ‘1등 짬뽕집’의 맛의 비결. 이제 구체적으로 닭의 어느 부위를 사용했는지도 추정할 수 있게 됐다. 일본 나가사키의 1등 짬뽕집의 개운한 육수 맛의 비법은 ‘닭’이었다. 한국인 3인은 바로 오뚜기의 연구원들이다.

지난 1월 11일 경기도 평택의 오뚜기 라면연구소를 찾아 연구원 4명을 만났다. 진짬뽕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은 총 5명이지만, 그중 1명은 휴가를 간 상태였다. 이들은 ‘진짬뽕’을 만든 주역인 개발연구팀원들이다. 이들에게서 회심(會心)의 라면, 진짬뽕의 탄생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일본 규슈의 나가사키현은 짬뽕, 카스텔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 오뚜기 개발팀 연구원들은 일본에서 6일 동안 머무르며 인터넷에서 1위라고 손꼽히는 나가사키의 짬뽕집을 수차례 찾아가 손님으로 가장해 맛을 보고 연구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짧은 시간 안에 맛의 비법을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에 요리사에게 직접 묻기도 했다. 성문현 선임연구원은 “비법이 무엇인지 대놓고 묻기도 했으나, 우리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입을 열지 않았다”면서 “짬뽕집이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가게 뒤편 음식물을 다 뒤져가며 비법을 찾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결국 개운한 육수 맛의 비결이 닭육수를 사용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것도 닭머리를 제외한 뼈를 주재료로 우려낸 것이었다. 국내로 돌아온 연구팀은 전국의 소문난 짬뽕 전문점 88곳을 찾아 모두 먹어보기로 결심한다. 강원도에서는 강릉 교동반점, 경상도에서는 대구 진흥반점이다. 서울에서는 홍대 초마, 대치동 홍운장, 영등포 송죽장이다. 전라도에서는 군산 복성루, 제주도의 짬뽕상회 등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짬뽕만큼은 프리미엄시장에서 우리가 승기를 잡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었다. 진짬뽕을 출시하기 위해 4개월 동안 연구팀 5명은 개발에 매달렸다. 그 결과 탄생한 게 진짬뽕이다.” 진짬뽕을 개발한 김규태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보통 새로운 라면이 개발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10개월 정도다. 이 기간의 절반도 안 되는 4개월 만에 ‘진짬뽕’을 출시할 수 있었던 건 주말도 반납한 연구원들의 열정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하루 세끼를 모두 짬뽕으로 해결했다. 짬뽕이 질릴 법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먹으면 먹을수록 신이 났다. 대박의 짬뽕 맛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들이 가본 전국의 짬뽕 전문점은 각기 개성이 뚜렷했다. 소문대로 한결같이 맛은 좋았지만, 국민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을 대중적인 맛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88곳의 짬뽕집 가운데 연구원들의 선택을 받은 단 한 곳은 경기도 파주의 M짬뽕집이다. ‘진짬뽕’에 적용할 만한 가장 대중적인 맛을 가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M짬뽕집에서 국물만 따로 포장해 와 냉동실에 얼려놓고 다시 끓여 먹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 맛을 어떻게 라면으로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실제 중화요리 전문점에서 짬뽕을 조리하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 결과 ‘불맛’이 짬뽕 맛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원두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기존 라면에 없던 불맛을 재현하기 위해, 중화요리에 사용하는 웍(반구형의 프라이팬)을 사와 연구실에서 수없이 짬뽕을 만들어봤다. 무거운 웍을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요리해야 했기 때문에 근육통까지 생겼다. 보통 2주에 한 번 갈아입는 작업복을 2일 만에 갈아입기가 일쑤였다.”

웍은 보통 프라이팬과는 달리 반구형으로 측면이 매우 가파르고 깊은 모양이 특징이다. 열전도율이 높은 탄소강이나 주철로 만들고 바닥 두께는 3㎜ 정도로 얇다. 열을 가하면 700~800℃까지 온도가 올라간다. 여기에 기름을 붓고 파와 마늘, 야채와 고춧가루를 함께 볶으면 불의 맛과 향이 발생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연구원들은 웍을 사용해 중화요리 특유의 ‘불맛’을 라면에 적용하기 위해 연구했다. 일반 가스레인지로는 웍을 달구기가 어려워 LPG 압축버너를 사와 실제 중국집과 같은 환경을 조성했다. 이렇게 연구원들은 육수와 불맛의 비결을 알아낸 뒤 진한 해물맛을 내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 지난 1월 11일 경기도 평택의 오뚜기 라면연구소에서 만난 ‘진짬뽕’ 개발팀 연구원들. 왼쪽부터 성문현·김규태·김민수·이원두 연구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건더기수프 7g의 효과

진짬뽕을 먹다 보면 큼직큼직한 건더기가 씹힌다. 짬뽕의 대표적인 재료인 오징어부터 청경채, 목이버섯에 이르기까지 8종의 건더기가 들어가 있다. 건더기수프 무게만 7g이다. 얼핏 보면 매우 적어 보이지만 라면업계에서는 파격적인 무게다. 경쟁사 농심의 ‘맛짬뽕’의 건더기수프가 4.1g이다. 프리미엄 라면이 아닌 농심의 신라면이 1.5g, 오뚜기의 진라면 2.2g, 삼양의 삼양라면이 1.8g임을 감안하면 7g이 상대적으로 매우 많은 양임을 알 수 있다. 인터넷의 각종 블로그나 페이스북에서는 진짬뽕의 건더기가 푸짐하다는 각종 후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진짬뽕은 다른 프리미엄 짬뽕라면과는 다르게 액상수프를 사용한다. 고추장 같은 질감의 액상수프를 사용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중국집에서 맛보는 짬뽕에 가까운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액상수프로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김규태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초기에는 분말 형태의 수프로 기획했다가 레토르트 형태의 수프로 출시하려고 했다.

레토르트 형태가 짬뽕의 맛을 가장 잘 재현할 수 있었지만 특성상 건더기 같은 경우 식감이 물러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무엇보다도 라면 단가가 2000원을 훌쩍 넘기는 문제점도 있었다.” 라면 가격도 합리적이면서 맛도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액상수프였던 것이다. 액상수프가 고추장과 같은 형태를 보이는 건 해물 농축액과 고춧가루를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진짬뽕의 또 다른 성공비결은 ‘면발’이다. 연구원들은 기존 라면보다 면폭이 두꺼운 ‘태면(太麵)’을 개발했다. ‘태면’은 3㎜의 두껍고 넓은 면을 사용했다. 겉은 부드럽고 속은 쫄깃쫄깃한 게 특징이다. 한국인이 라면을 먹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6분이다. 이 안에 불지 않는 면을 개발하는 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태면을 개발한 김민수 선임연구원의 설명이다. “보통 다른 라면의 면은 단면이 원형인 데 반해 태면은 단면이 네모난 게 특징이다. 네모난 단면의 면에서 좀 더 압축한 형태가 원형이다.

그래서 원형보다는 네모난 단면이 더 빨리 퍼지는 게 단점이지만 태면은 6분 안에 불지 않도록 특별한 공법을 사용했다. 면발만 먹어도 맛있도록 다시마의 감칠맛이 함유된 것도 특징이다.” 진짬뽕의 맛의 비결은 크게 네 가지였다. 고온에서 야채를 볶으면 발생하는 불맛, 직접 닭을 끓여 추출한 시원하고 진한 육수, 풍부한 건더기와 잘 불지 않고 쫄깃쫄깃한 태면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10월 15일 오뚜기는 ‘진짬뽕’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히트였다. 진짬뽕은 출시 2개월 만에 판매량이 2000만개를 돌파하면서 대박 상품의 반열에 우뚝 올라섰다. 출시 50여일 만에 판매량이 1000만개를 돌파하더니 SNS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10여일 만에 1000만개가 급속도로 팔려나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네 작은 슈퍼마켓에서는 물량이 부족해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지경이다.

업계에서는 진짬뽕 현상을 2014년 후반에 돌풍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 현상과 흡사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짝 인기일 거라는 우려와 달리 진짬뽕의 인기는 올해에 들어서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1월 12일 기준으로 판매량은 3800만개를 돌파했다. 하루 평균 70만~80만개가 팔리는 점을 감안하면 1월 18일을 기점으로 4000만개 돌파까지 예상된다. 오뚜기 측에 따르면 대형마트에서 ‘진짬뽕’을 맛본 소비자들이 덩달아 ‘진라면’까지 사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이 정도면 ‘진짬뽕’이 오뚜기의 효자상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오뚜기의 이원두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진짬뽕이 출시된 이후 시장조사를 위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식품관을 찾았다. 이 백화점 식품관은 평소 라면 매출이 높은 편이 아니라서 라면 판매코너는 다른 백화점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진짬뽕’을 진열해 놓으면 놓는 대로 다 팔려나가 물량이 없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놀란 건 과거에 자사 제품이 그랬던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짬뽕’의 소비자가격은 1500원. 일반 라면이 800원대임을 감안하면 무려 두 배에 가까운 가격이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헝그리정신의 상징이었던 라면은 이제 프리미엄 라면이라는 높은 가격대의 또 다른 시장을 만들고 있다. 사실 프리미엄 라면 시장은 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앞서 농심이 지난해 4월 ‘짜왕’을 통해 프리미엄 라면 시장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짜왕’은 출시 후 2개월 동안 1600만여개가 판매되며, 라면 한 개당 1300원대가 넘는 프리미엄 라면 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 당시 오뚜기도 뒤늦게 ‘진짜장’이라는 프리미엄 라면을 출시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이에 오뚜기는 지난해 6월 프리미엄 짬뽕을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드림팀을 구성해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4개월간의 연구개발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진짬뽕’이다. 이제 프리미엄 라면 시장에서 짬뽕을 메뉴로 한 제2차 대전이 시작됐다. 경쟁업체인 농심·삼양·팔도의 제품들보다 약 한 달가량 앞서 출시된 ‘진짬뽕’은 시장을 선점함과 동시에 소비자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중이다.

진짬뽕의 인기에 탄력을 받은 오뚜기의 주가도 덩달아 상승 중이다. 진짬뽕이 출시되기 전날인 지난해 10월 14일 오뚜기의 주가는 102만6000원이었다. 지난 1월 13일 주가는 125만8000원으로 세 달 만에 22% 이상 올랐다. 오뚜기의 라면시장 점유율은 2014년 18.3%에서 2015년 20.2%로 1.9%가량 높아졌다. 증권계의 애널리스트들도 오뚜기의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지난해 상반기 오뚜기 목표주가를 65만~89만원으로 제시했지만, 진짬뽕이 출시돼 인기를 끌자 지난해 하반기 목표주가를 99만~140만원까지 높인 상황이다. 그만큼 오뚜기 ‘진짬뽕’은 “오뚜기 임직원들의 영혼을 갈아넣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의 총력을 기울인 제품이라고 자부한다.

과거 꼬꼬면의 실패를 교훈 삼아

과거 출시 2개월 만에 2000만개 이상을 판매한 라면은 ‘진짬뽕’말고도 한 제품이 더 있다. 바로 하얀 국물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팔도 ‘꼬꼬면’이다. 실제 꼬꼬면과 나가사키짬뽕으로 대표되는 하얀 국물 라면은 2011년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약 6개월여 만에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들더니 지금은 찾는 소비자가 대폭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지금 불고 있는 짬뽕라면의 인기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연구원들은 ‘진짬뽕’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새롭게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찾느라 바쁘다고 했다. 김규태 책임연구원은 “매일 오전 8시30분에 출근하자마자 라면 시식을 하고 품평회를 한다”면서 “안주하지 않고 보완사항을 찾아 계속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장기적인 판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오뚜기의 대표 라면 상품인 ‘진라면’은 10년이 넘도록 꾸준하게 맛을 업그레이드하며 변화를 줬다고 한다.

소비자가 이 같은 맛의 변화를 쉽게 눈치채기는 어렵겠지만 꾸준히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짬뽕라면이 스테디셀러 제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높다. 짜장·짬뽕 등의 중화요리는 이미 일상화된 음식이기 때문에 꾸준한 인기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간한 ‘2015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76개의 라면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위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들이 라면을 좋아한다는 얘기다. 올해 역시 라면시장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이제 라면업계는 프리미엄이라는 또 다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1969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47년째를 맞이하는 오뚜기는 그동안 라면보다는 카레, 케첩, 3분 즉석요리 등으로 더 알려진 회사다.

오뚜기는 2013년 이후 라면업계 삼양을 추월한 뒤 농심에 이은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은 라면시장에서 과반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농심에 비하면 뒤처져 있지만 ‘진짬뽕’을 무기로 한 오뚜기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소비자에게 오뚜기 라면의 브랜드 파워를 각인시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프리미엄 라면 시장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앞으로 오뚜기의 계획은 어떨지 궁금했다. ‘진짬뽕’ 개발을 주도한 김규태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올해 안에 또 다른 프리미엄 라면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번엔 짬뽕이었지만, 또 다른 새로운 메뉴가 될 것이다. 기존의 제품은 지켜나가면서 프리미엄 라면 시장을 이끌어 갈 오뚜기의 활약을 지켜봐 달라.”

※ 원문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3&nNewsNumb=20160119308&nidx=19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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